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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를 주무르는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모든 것(1)
2002-08-02

손가락 하나로 할리우드를 재패한 사나이

“Two Thumbs up!” 이것은 복음이다. 할리우드 제작자에게 이보다 감미로운 축사는 없다. 영화평론가 진 시스켈과 로저 에버트의 말다툼에서 대미를 장식한 것은 언제나 엄지손가락의 향방이었다. 둘의 엄지손가락이 동시에 올라가면 그 영화는 성공을 보장받는 셈이었다. 1975년부터 1999년까지 24년이나 계속된,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 영향력이 크다는 TV영화비평 프로그램 <시스켈과 에버트>는 99년 시스켈이 죽고나서 <에버트와 로퍼>로 바뀌었지만 대중적 인기는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35년간 <시카고 선타임스>에 영화평을 쓰고 있는 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로저 에버트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평론가다. 가장 권위있는 평론가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지방마다 발행되는 신문이 다르고 영화잡지 구매층이 TV시청자 수를 능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전국에 방영되는 TV프로그램에 20년 이상 출연중인 그의 인지도를 능가할 평론가는 없다. 에버트의 인기는 인터넷에서도 상당하다. <시카고 선타임스> 홈페이지에 마련된 에버트의 사이트(www.suntimes.com/ebert)는 신작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장소다. 신작영화에 대한 평, 2주에 1번씩 업데이트되는 ‘위대한 영화들’ 시리즈, Q&A, 인터뷰와 영화제 기사 등 에버트의 글은 ‘정말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이 쓰나?’ 싶을 만큼 방대하다. 게다가 에버트의 평은 제휴관계를 맺은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 등 여러 나라 250여개 신문에 실리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영화관련 책을 15권 썼고 시카고대학에서 DVD로 영화를 분석하는 강의도 하고 있다. 하지만 에버트 자신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가 한 신문의 영화면을 35년간 지켜왔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어떤 평론가도 이보다 오래 한 일간지의 영화면에 머문 적이 없다.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아 머문 제37회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에서 만났을 때 에버트가 거듭 강조한 것도 자신이 ‘신문장이’라는 점이다. 수동 타자기로 기사를 써서 풀로 편집하고 연필로 표시하며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요란한 소음을 내는 윤전기를 거쳐 신문이 나오는 30년 전 신문사의 풍경을 사랑하는 그는 영화평론가 이전에 일간지 기자로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다. 아마 <시스켈과 에버트>가 장수프로그램으로 성공한 이유 중 하나도 두 사람이 영화평의 깊이나 아카데믹한 측면보다 좀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려는 일간지 기자의 정신을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청자들은 ‘홀쭉이와 뚱뚱이’ 콤비처럼 뚜렷이 구분되는 외모에, 한마디라도 지지 않으려는 적극성이 겸비된 영화논쟁을 영화선택의 길잡이 이전에 기품을 잃지 않으면서도 흥미로운 TV토크쇼로서 즐길 수 있었다.

퓰리처상 수상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영화평론가로서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1975년 그는 <시카고 선타임스>에 그간 실었던 10개의 영화평으로 이 상을 받았다. 에버트는 어릴 적부터 영화감독이나 영화평론가를 꿈꿨던 사람은 아니다. 1942년 일리노이주의 어바나에서 태어난 그는 15살 때 어바나 지역신문의 스포츠면 기자로 일할 정도로 신문기자가 되겠다는 열망이 대단했다. 일리노이대학를 거쳐 시카고대학을 졸업한 뒤 첫 직장이 <시카고 선타임스> 기자였다. 1966년 입사해 6개월이 지났을 때 이 신문의 영화면 담당자가 은퇴하는 일이 생겼고 그때부터 영화평을 맡았다. 오슨 웰스의 <시민케인>과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를 ‘내 인생의 영화’로 꼽는 그는 60년대 말,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지지한 만큼 러스 메이어의 <인형의 계곡>에 관심을 표했다.

커다란 가슴을 가진 여자들이 반나체로 등장해 유약한 남성을 조롱하는 러스 메이어의 영화는 엄격한 평론가들의 주목을 끌기엔 지나치게 선정적인 영화처럼 보였지만 에버트는 그를 ‘위대한 오리지널 미국 감독’이라고 봤다. 그는 러스 메이어의 친구가 됐고 1970년 <인형의 계곡>의 속편인 <인형의 계곡 너머>의 시나리오를 썼다. 메이저 스튜디오의 영화제작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던 이때 경험을 에버트는 “영화평을 쓰는 데 유용한 교육”이었다고 회고한다. 섹스코미디로서 러스 메이어 영화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그는 1970년 시사주간지 <타임>의 리처드 콜리스가 <인형의 계곡 너머>를 그해 베스트영화 10편 중 하나로 꼽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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