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폴 뉴먼 주연의 <허슬러>(1961)를 만든 영화감독으로 잘 알려진 로버트 로센은 종종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에이브러햄 폴론스키와 함께 거론되곤 하는 인물이다(로센과 폴론스키는 <육체와 영혼>(1947)이라는 영화에서 각각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 함께 작업한 적도 있었다). 이 둘은 모두 반공 히스테리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에 호된 곤욕을 치른 이들이었다.
폴론스키 같은 경우는 반미행위조사위원회(HUAC)에 협조하기를 거부하면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뒤 무려 21년 동안이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영화를 만들 수가 없었고,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로센은 자신의 ‘빨갱이’ 전력을 인정하고 공산주의 동조자들의 이름을 대는 쓰라린 경험을 겪은 뒤에야 영화작업을 재개할 수가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좌익사상의 영향을 받았고 그래서 이같은 격심한 고통을 경험했던 두 사람은 빨갱이 사냥의 광풍에 휘말리기에 앞서 미국사회에 대한 냉철한 비판력이 돋보이는 자신들의 대표작을 내놓았다는 점에서도 닮은 데가 있다. 그 대표작이란 폴론스키의 경우에는 <악의 힘>(1948)이고 로센에게는 <올 더 킹즈 맨>이다. 그러니까 지금 소개하는 <올 더 킹즈 맨>은, 비유하자면 로센의 <악의 힘>이라고 볼 수 있는 영화인 것이다.
영화는 신문기자인 잭 버든(존 아일랜드)이 편집장으로부터 취재 임무를 맡게 되면서 시작한다. 그가 취재할 윌리 스탁(브로드릭 크로퍼드)은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부패한 시정(市政)에 맞서 홀로 꼿꼿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인물이다. 부실하게 지어진 학교 건물이 끝내 무너지면서 여러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은 윌리의 외로운 투쟁에 동조하기 시작한다. 정치인들의 비열한 책략에 의해 그는 주지사 선거에 나서지만 결국 근소한 표 차이로 패배하고 만다. 이후로 4년 뒤, 우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윌리의 면모를 보게 된다. 그 사이 그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사악한 거래도 마다하지 않는 마키아벨리적 인물이 되어 있었다. 또한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아주 힘센 정치인이 되어 있었다.
<올 더 킹즈 맨>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면 아마 그것은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1939)나 혹은 그것을 포함한 프랭크 카프라의 몇몇 인민주의영화들일 것이다. <올 더 킹즈 맨>의 주인공 윌리는 사실 카프라의 ‘스미스씨’와 공유 지점이 많은 인물이다. 스미스처럼 윌리도 순박한 시골뜨기(hick)이고 그런 만큼 인민들에게 과연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인민주의자이며 그리고 진실을 향한 외롭고도 고된 싸움에 기꺼이 몸을 맡기는 용감한 이상주의자이다. 그러나 로버트 로센 판의 이 또 다른 ‘스미스씨’는 일단 ‘이기는 법’을 알게 되고 또 그것을 제대로 활용해 승리와 권력의 맛을 보게 되자 카프라적 캐릭터의 네거티브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 되고 만다. 이를테면 그는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거래를 하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모사가(謀士家)로 변신해버렸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힘을 지극히 사적인 목적에 이용하는 뻔뻔한 면모도 자주 보여준다.
지난 역사에서도 현재에도 쉽사리 목격할 수 있는, 힘있는 정치들인의 타락이라는 극히 ‘자연스런’ 현상을, 윌리라고 해서 이겨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순진한 이상주의자에서 사악한 현실주의자로 변해가는 이 인물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어쩌면 카프라의 ‘스미스씨’도 뒤에 권력에 다가갔더라면 윌리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지 않았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올 더 킹즈 맨>은 ‘스미스씨’ 그 이후, 혹은 카프라가 감히 보여주려 하지 않았던 이면의 ‘스미스씨’에 카메라를 들이댄 영화처럼 보인다.
패트리시아 킹 핸슨이라는 평론가는 <올 더 킹즈 맨>을 두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정치영화들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지만 따지고보면 이 영화가 그 정도의 극찬을 받아야 할 걸작인지는 사실 의문이다. 이를테면 여기서 매혹의 중심이 되는 윌리라는 복잡한 인물에 대해 영화는 그저 관찰만 할 뿐 어떤 식의 해석도 내리지 못하고 있으며 그와 그의 ‘전락’을 둘러싼 메커니즘에 대해 어떤 코멘트도 자제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올 더 킹즈 맨>은 지적인 정치영화라기보다는 그저 신랄한 정치영화라고 말하는 게 옳을 듯싶다. 그렇다고 탄탄한 시나리오와 주·조연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특히 돋보이는 이 영화가 1940년대에 나온 미국적 리얼리즘영화의 대표작임을 부인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All the King´s Men1949년, 흑백감독 로버트 로센출연 브로드릭 크로퍼드, 존 아일랜드자막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중국어, 타이어오디오 모노화면포맷 1.33:1 풀 스크린출시사 콜럼비아
홍성남/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