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논쟁’에 대한 흥미는 이제 많이 줄어들었다. ‘익명성을 이용한 감정의 배설일 뿐 생산적 토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지배적 여론이고, 나 역시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여론을 따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가끔은 ‘왜 논쟁이 반드시 생산적이고 건전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유심히 관찰하면 논쟁을 ‘생산적이고 건전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들고 점잖은(=젊지 않은!) 사람들이라서 그게 또 하나의 엄숙주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그런 이야기는 ‘꼰대가 하는 잔소리’ 이상으로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 나 역시 저런 ‘꼰대’의 대열에 합류하는 모양이다. 다름 아니라 지난번 쓴 글에서 요즘 젊은이들에 대해 ‘퉁명스럽고 무례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에 인색하다’고 표현한 것에 대해 항의를 받은 것이다. 몇몇 항의는 꽤 격렬했고. 급기야는 ‘꼰대 같다’, ‘진보를 가장한 보수’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그런 욕을 듣는 데는 이골이 났지만, 이제까지 내가 해왔던 일이 무효가 되는 기분이 썩 좋을 리는 없었다. 내세울 것은 없지만 30대에 접어든 이후에도 ‘인디(펜던트)’가 어쩌니 ‘얼터너티브’가 어쩌니 하면서 ‘젊은 애들 노는 데 끼어서’ 뭔가 해보려고 했던 일 말이다. 그런 삶이 입으로는 ‘1980년대’, ‘진보’ 운운하면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지만 실제로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살아가는 대다수 중년세대(!)의 삶보다 래디컬하다는 알량한 자부심도 이제 더이상 견지하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까놓고 말하겠다. 별말 아니라 어느 때부턴가 ‘요즘 애들’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무례해서? 그것만은 아니다. 요즘 젊은 애들은 단지 무례한 것이 아니라 ‘무례하면서도 세속적’이기 때문이다. 즉, 지금 나는 젊은 애들 보고 ‘싸가지’나 ‘버르장머리’가 없다면서 인상 찌푸리고 호통치고 있는 건 아니다. 싸가지나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은 나쁘지 않은데, 별로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맛이 없고 독자적인 정신세계가 확실치 않다는 이야기다. 내가 보기에 지금의 20대 이하의 세대는 ‘주류’에 민감하고, ‘권위’에 약하고, ‘시스템’에 순응적이고, ‘미디어’를 맹신한다. 이건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속성이겠지만 ‘젊은 애들까지도…’라는 아쉬움은 떨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 역시 모순적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 보고 “니네는 왜 우리가 젊었을 때처럼 반항적이지도 않냐. 반항 좀 해라”라고 ‘훈계’하는 셈이니까…. 이런 이야기는 ‘요즘 애들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따라서 보수적이다’라는 진보적 중년의 생각이나 별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대는 젊음을 둘러싼 세대간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일까. ‘젊음’이라는 게 단지 자연적 나이가 아니라 ‘새롭고 모던하다’라는 문화적 개념이라면 말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려고 했는데 또 하나 찔리는 게 있다. 다름 아니라 ‘지 새끼는 끔찍이 위하면서 남의 새끼들 보고는 싸가지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이 요즘 30∼40대 세대의 특징이고 나도 별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에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는 예의바르고 매너있게 행동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기밖에 모르는 것도 굳이 젊은 애들을 탓할 것 없이 한국인의 전반적 특징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동방무례지국’ 현상은 나이를 불문하고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결론 내릴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라고 결론내리는 것만큼 ‘꼰대 같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어쩌면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어떤 기대가 남아서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즉, 어차피 무례하다는 말을 들을 바에는 ‘당신들도 무례하기는 마찬가지다’라는 식의 소극적 반응보다는, 보수도 싫고 진보도 싫고, 남한도 북한도 다 싫다고 주장하면서 불경(不敬)의 태도를 또렷한 논리로 제시해주기를 바라는 기대…. 하지만 어떠한 기성의 규칙과 관습을 부정하는 ‘일반적 불경’의 태도란 것도 이상주의적인 것 같아서 말이 입 밖으로 잘 나오질 않는다. 혹시 이런 이상주의마저 기성세대의 흘러간 유행가 같은 것일지도 모르니까.
* 내가 ‘일반적 불경’이라고 표현한 태도를 담은 글은 인터넷의 몇몇 게시판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개인의 주장을 넘어선 세대의 자의식이나 집단적 목소리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전반적으로 흥미는 반감되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건투를 빈다. 신현준/ 청년문화비평가, http://homey.w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