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애드 제작사 광고방 감독 김장오
톱클래스 여배우 가운데 1, 2위를 다투는 심은하와 이영애가 프리미엄 냉장고 광고에서 맞붙었다. 이영애가 국내 여성 스타의 최고액을 경신하며
지펠쪽과 계약을 맺었을 때 4억5천만원이란 공식적인 모델료(실제 금액은 다소 차이가 날 수 있음)의 덩치도 화젯거리였지만 무엇보다 심은하의
도전자로 나선다는 측면이 흥미를 자아냈다. LG디오스 광고에서 ‘여자라서 행복해요’란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설파해 온 심은하는 예컨대 프리미엄
냉장고 분야에서만큼은 기득권을 쥐고 있는 대표모델에 해당한다.
론칭 당시 선점을 한 쪽은 지펠이었다. 디오스보다 한발 앞서 광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디오스 광고와 달리 삼성전자란 기업명을 숨긴 채
브랜드만을 앞세운 전략을 구사한 지펠 광고는 중량감있는 모델인 최명길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디오스 광고의 기세에 다소 밀리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따라서 이번 지펠쪽의 모델교체는 심은하의 라이벌급인 이영애를 내세워 대반격에 나서겠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모델교체 소식으로
서서히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한 프리미엄 냉장고의 광고전이 마침내 ‘땡’하고 공을 울렸다.
두 광고의 광고전이 구미를 당긴 이유는 심은하와 이영애 가운데 누가 더 예쁘게 나올 것인가라는 점이 물론 눈을 부릅뜨게 만들거니와 심은하의
행복한 여자상에 맞서는 이영애의 ‘히든 카드’가 무엇일까라는 사항도 제법 궁금증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심은하와 이영애는 이미 커피 광고에서
이미지 경쟁을 벌인 바 있다. ‘남자의 사랑을 받는 여왕님’ 심은하(동서식품 모카골드 CF)와 ‘패션쇼를 호령하는 디자이너’ 이영애(테이스터스초이스
CF)는 동시에 ‘부드러운 커피 맛’을 강조했다. 제품 컨셉은 유사했지만 활용한 모델의 이미지는 반대였는데 소비자의 대체적인 평가는 심은하의
우위론쪽에 기울었다. 때문에 심은하에게 한번 분패한 이영애가 냉장고 CF에서 어떤 이미지 카드를 들고 나올 것인가는 호기심을 북돋울 만했다.
아쉬운 사항은 냉장고 광고를 통한 심은하와 이영애의 대리전이 한 차례로 끝난다는 점. 지펠호에 막 승차한 이영애와 달리 재계약을 맺지 않은
심은하는 현재 광고를 끝으로 디오스호에서 하차할 예정이다. 어쨌든 일주일 정도의 시차로 심은하의 마지막 디오스 광고가 먼저 전파를 탔고
이영애의 첫 지펠 광고가 뒤를 따랐다.
심은하는 예상대로 전작의 연장선에서 디오스 광고가 놓여 있는 고급스러운 집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전편에선 근사한 욕실에서 한가롭게 거품
목욕을 즐기더니 이번엔 퐁듀라는 스위스 요리를 직접 만들고 음미하는 모습을 선보인다. 스토리로 유추했을 때 그는 누군가(남편 혹은 애인)를
집에 초대한 모양이다. 행복감과 설렘이 듬뿍 담긴 표정으로 멋진 요리를 준비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는 시간만큼
여자에게 행복한 순간은 없다’는 진부하리만큼 보수적인 가치가 시각적 만족감을 주는 고급스러운 영상과 심은하라는 스타파워에 힘입어 소비자의
감성에 매끄럽게 침투한다. 마지막 광고라서였을까. 심은하는 이번에 특히 ‘여자라서 행복해요’란 일관된 대사 사이에 강조어를 삽입했다. ‘여자라서
너무 행복해요’라고.
지펠 제작연도 2001년 광고주 삼성전자 제품명 지펠 대행사 제일기획제작사 심 감독 송황
그렇다면 지펠 광고는 어떤 승부수를 들고 나왔을까? 지펠 광고 역시 프리미엄이라는 제품의 태생적 가치에서 기초해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행복의
관계가 절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영애 역시 심은하 못지않게 행복한 여성으로 나온다. 심은하가 요리를 준비한 채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면 반대로 이영애는 남자의 환상적인 깜짝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어두운 집에 들어서는 드레스 차림의 이영애. 그가 문을 열자 갑자기
남편이 집안 가득 배치해 놓은 2천여개의 촛불이 한꺼번에 빛을 발한다. 남편의 사랑스러운 깜짝쇼에 감동한 여인의 입가에는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는 미소가 피어난다. 남편의 품에 한달음으로 달려가 안기는 이영애의 한마디. ‘지펠은 사랑입니다.’ 언뜻 ‘꿈의 공장’이란 역할을
수행하는 데 지펠의 설정이 한술 더 뜬 듯한 인상이다.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심은하의 대사 안에는 ‘디오스 냉장고를 가진 여자’란 전제를 함축하고 있다. 반면 지펠 광고는 ‘지펠은 사랑이다’라는
보다 노골적인 카피로 구매의 유혹을 보내고 있다.
‘고급 냉장고를 가졌다고 사랑과 행복이 절로 샘솟느냐’고 냉소적 반응을 퍼붓는다면 이들 광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고품격과 물질적 풍요에 대한 동경은 실재하는 것이고 이를 정공법으로 겨냥한 두 CF를 향해 ‘거짓말’이라며 환상의 강렬한 유혹을 떨쳐내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다만 각기 ‘왓 위민 원트’에 보다 더 근접하기 위해 치열하게 골몰했을 두 광고의 경쟁은 결과적으로 ‘닮은 꼴’의 동어반복에 그친 형국이다.
광고에서는 심은하에 비해 조금은 덜 보수적이고 순응적 이미지를 표출해 온 이영애. 이번에 그에게서 예기치 못한 도발적 한방이 나올 것이라
기대했다면 다소 김빠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