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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사용된 CG
2002-07-25

CG에도 서정미가 있다

100% 컴퓨터그래픽(이하 CG)로 만들어진 <토이 스토리>가 개봉되었던 지난 95년을 시작으로, CG와 애니메이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물론 그 훨씬 이전부터 CG를 이용한 다양한 단편애니메이션들이 선보였고 <미녀와 야수>와 같은 장편애니메이션들에서도 CG가 군데군데 사용되기는 했지만, <토이 스토리>의 충격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그뒤로 7년여가 흐른 지금, CG가 없이 만들어지는 장편애니메이션이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 사실. 굳이 <슈렉>이나 <아이스 에이지> 같은 100% CG애니메이션들을 들먹이지 않아도, 극장에서 개봉되는 장편애니메이션치고 CG의 도움을 받지 않은 작품을 찾아보기란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규모 자본과 뛰어난 테크놀로지를 보유하고 있는 할리우드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한국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어버린 <큐빅스>나 <마리이야기>가 대변하듯이, 애니메이션과 CG의 결합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일상적인 게 되어버린 것. 그러나 그렇게 세상이 변했어도 끝까지 전통적인 셀애니메이션을 고집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색깔을 유지할 것 같은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있었으니,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의 지브리스튜디오가 그렇다. 적어도 지브리에서만큼은 굳이 CG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기법만으로도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장면을 표현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몇십년을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기법과 함께 살아온 두 거장이, 쉽게 CG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한켠에 있었던 것이 사실.

◀ 가장 어려운 CG장면으로 제작진이 꼽은 바닷물 장면.

▶ CG를 통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원숭이 모양의 조각상과 배경을 만들어내는 모습. 완성되어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원숭이 모양의 조각상.

그러나 이번에 개봉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그런 막연한 믿음에 확실하게 종지부를 찍어줬다. 그냥 스쳐가듯 세어본 것만도 수십개의 장면에서 CG가 쓰인 것이 분명했고, 기차를 타고 주인공들이 여행하는 장면에서 보여지는 차창 밖 풍경은 아예 전형적인 3D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킬 정도였으니 말이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현재 지브리스튜디오에서 CG를 담당하고 있는 인력은 20여명 수준. 전체 직원이 150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며, 결코 작은 인원이 아닌 셈이다. 그 20명 중 10명 정도가 화면에 선을 그리고 색을 입히는 작업인 ink & paint 분야를 담당하고 있고, 나머지 10명 중 반 정도가 3D 분야에, 또 다른 반 정도가 각종 비주얼 요소들을 최종으로 합성하는 작업에 투여되고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CG는 지브리 내부에서 그 20여명이 독자적으로 작업한 결과다. 전체 1400여개 신 중에서 100여개의 신에 사용된 CG작업에 걸린 시간은 2∼3년 정도. CG팀을 관장하고 있는 가타마 미쓰노리는, 그중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바다의 표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작업을 가장 어려웠던 것으로 지목했다. 그 작업을 위해 소프트이미지사의 기존 3D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를 사용했음은 물론,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냈을 정도다. 주목할 점은 가타마가 한 인터뷰에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들을 도입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혀, 향후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에 CG가 더욱 많이 사용될 것임을 간접적으로 밝혔다는 사실이다. 평소 지브리와 CG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던 이들에게는 충격적일 정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듯.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지브리가 CG를 사용한 첫 번째 작품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브리가 CG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지난 95년으로, 1997년 <원령공주>에서 첫 번째로 그 결과를 선보였기 때문. 국내에서는 극장에서 개봉되지 않아 알고 있는 이들이 제한되어 있지만, <원령공주>에도 약 100장면, 시간으로 15분 정도에 CG가 삽입된 장면들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중 10분 정도가 단순한 ink & paint였고 5분 정도만 CG임을 눈치챌 수 있는 장면들이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주인공 아시타가의 팔목에 나타나는 뱀과 같은 촉수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장면이었다. 또 다른 예는 빠른 속도로 배경이 움직이는 장면들로, CG가 아니면 도저히 표현하기 힘든 속도감이 잘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지브리가 <원령공주>에서 CG를 사용한 과정

▶ 100% CG로 만들어진 <이웃의 야마다군>

이렇게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기법과 CG의 활용에서 자신감을 얻는 지브리는, 다음 작품이었던 다카하타 이사오의 <이웃의 야마다군>에서 아예 전체를 CG로 만드는 대단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 수채화풍으로 <이웃의 야마다군>을 표현하고 싶다는 다카하타의 요구에, 제작진들이 대놓을 수 있는 대안은 2D CG로 원화를 만든 뒤 최종적으로 수채화풍의 색감을 입히는 방법뿐이었던 것. 다행히 결과는 관객의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엄청난 흥행성적으로 이어졌고, 이를 통해 지브리는 CG의 활용에 대한 완전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선보인 CG는 그러한 두번의 경험을 통해 쌓인 자신감에 기반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 여전히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CG가 사용되는 것이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작품에 무리없이 녹아들어 표현의 한계를 깨뜨리는 역할을 해준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지브리가 할리우드와는 전혀 다른 3D CG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날을 기대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Nausicaa.net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페이지

: http://www.nausicaa.net/miyazaki/sen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한글 공식 홈페이지

: http://www.senn.co.kr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쓰인 CG

: http://www.softimage.com/Community/Xsi/Mag/Cs/VOLUME_2/Issue_1/Ghibli.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