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는 <나쁜 남자>가 비디오로 출시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영화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이유는 단순하다. 자기네 집에는 식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래봤자 부모님과 동생 한명이 전부지만 숫자에 관계없이 그들은 안방과 거실을 포진하고 있어 그녀에게 은근한 심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거다. 친구는 <나쁜 남자>의 (어른들 보기에 남우세스러운) 포스터와 카피를 예로 들며 자기는 도저히 집에서 그 영화를 볼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나는 친구가 이상한 편견을 갖고 있다거나 <나쁜 남자>에 대해서 왜곡된 해석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불가사의한 것은 아무런 말없이, 힐끔 쳐다보는 눈빛만으로도,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식들을 민망하고 소심하게 만드는 가족이라는 존재이다. 영화에서 야한 장면이 나올 때 가족 앞에서 진심으로 당당하고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니, 사실은 “야한 장면”이 아니라 심오한 의미와 영상미를 갖춘 신이라 하더라도 가족의 존재가 그 장면들을 야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거다. 자신이 야한 장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볼 나이가 되고도 남았다는 사실은 가족 앞에서는 언제나 “들켜버리는 듯한” 기분을 불러일으키곤 하니까. <유리>를 보고 레포트를 쓰는 정당한(!) 숙제를 할 때도 아빠의 존재 때문에 낯을 들 수가 없었다는 친구가 <나쁜 남자>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쯤 되면 꽤 정당해 보인다.손원평/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