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치고 ‘블리자드’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워크래프트>와 <디아블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게임 <스타크래프트>를 만든 회사지만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뛰어난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회사지만, 영혼을 담은 걸작을 만들 수는 없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억지로 갖다붙이자면,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회사지 스탠리 큐브릭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에 나온 <워크래프트3> 역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의견이 달랐다. 요즘 패키지 게임업계는 게임산업이 형성된 이래 최악의 불황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지경이다. 시장에 숨통을 틔워줄 대작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온라인이고 오프라인이고 패키지 게임 유통망은 오랜만에 자금이 순환될 것을 기다리며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스타크래프트> 중계가 슬슬 시들해지기 시작한 게임방송들 역시 <워크래프트3>의 성공을 바라는 데는 패키지 시장 못지않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제일 애가 타는 건 PC방이다. <스타크래프트>로 태동한 PC방은 <디아블로2>로 르네상스기를 맞았다. 지금은 여러 온라인 게임들이 공존하며 근근이 꾸려나가고 있다. 대형 스타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바람이 이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PC방 입장에서야 매달 사용료를 물어야 하는 온라인 게임보다는 한번 패키지만 사면 그 다음에는 돈 나갈 일 없는 패키지 게임이 훨씬 낫다. 이처럼 모든 업계 관계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성공을 바라는 게임이 과연 또 있었던가?
그리고 <워크래프트3>가 나왔다. 몇 가지 지적할 게 없는 건 아니지만 블리자드표답게 완성도 높은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건 스토리다. RPG도 아닌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스토리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상상도 못했다. 는 배우들의 명연기가 훌륭했고 특히 여주인공 타냐에게 홀딱 반하기도 했으며 <배틀 렐름>의 시나리오 역시 욕망에 사로잡힌 권력자의 이야기를 꽤나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하지만 <워크래프트3>의 싱글 플레이만큼 스토리와 게임 진행, 동영상과 폴리곤 캐릭터의 연출이 환상적으로 맞물린 게임은 지금껏 없었다.
3D 활용방식에서도 블리자드의 개발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2D에 비해 3D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몇몇 불운한 태생의 게이머들에게는 어지럼증을 불러일으킨다는 약점도 있다. <배틀 렐름>이 3D면서도 시점을 고정하고 지형을 평평하게 해서 고저차를 준 것은 3D가 가지는 어지러움이나 사각지대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름의 성과는 있었지만 3D다운 느낌을 많이 잃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워크래프트3>는 <배틀 렐름>의 방식을 가져다 쓰면서도, 전체적으로 볼록한 느낌을 주어 3D 기분을 완벽하게 살려내고 있다. 고생이야 했지만 그 결과 단순히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뿐 아니라, 지형을 이용하는 3D 실시간 전략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목빼고 기다렸던 사람들보다는 뜨악하던 내 입맛에 더 맞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빠른 러시와 멀티 등 <스타크래프트> 하면 떠오르는 전략들은 <워크래프트3>에서는 유효하지 않다. <워크래프트3>의 새로운 시스템이 <스타크래프트>에 익숙한 PC방 유저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좀더 지나봐야 알 일이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에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도전해볼 일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e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