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며칠 전 친구가 오밤중에 전화를 해서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내 친구지만 이 지경으로 가증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는 할말을 잃을 뿐이다. 연애의 정수란 배신과 무책임이라는, 흔들림 없는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인간형으로 살아온 그의 입에서 이런 금기의 언어가 튀어나오다니…. 유유상종이라고, 인간됨됨이에서 별다른 차별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 <봄날을 간다>를 봤던 철없는 시절만 해도 “너 총맞았니?”라는 한마디 말로 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2년 동안 부단히 인격을 갈고 닦은 덕에 “인생이 부조리해”라고 있어 보이는, 실은 아무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은 말로 친구를 위로할 수 있었다.
이 기회를 통해 허진호 감독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싶다. 작가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봄날은 간다> 시사회장에서 일으켰던 작은, 불미스러운 행동에 대해서. 영화를 보며 정착하지 못하는 은수의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좌절하는 상우의 고통에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던 나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상우의 대사 한마디에 푸하고 웃음을 떠뜨렸다. 인격의 황폐함으로 따지면 앞의 친구와 자웅을 겨루는, 옆자리의 직장동료도 동시에 같은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그건 좀 오버야, 곤란해.” 낄낄거리며 즐거워했고, 순간 주변 사람들은 영롱한 눈물 한방울 눈가에 맺힌 채로 우리를 사정없이 노려봤다. 혼자 있을 때는 상하좌우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지만 함께 있을 때는 두려울 게 없는 사이였던 우리는 계속 상우를 씹었고,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식성이 어떻게 변하니?” “인간성이 어떻게 변하니?”따위의 조야한 패러디를 만들며 한동안 즐겁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물론 <봄날은 간다>와는 아무런 관련없는 이별이었다. 지루했고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하면서 끝나는 관계였다. 그럼에도 상대방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황스러워졌다. 공백의 시간이 한달이 넘자 나는 패닉상태에 이르렀고, 갈수록 흐릿해지는 정신상태에서 단 한마디 말만이 또렷하게 되풀이될 뿐이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건 부시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내 마음은 너를 잊어도 내 입은 아직 너를 잊지 못하는 걸. 그로부터 약 한달 동안 내 친구들은 살벌한 본심과 무관하게 나의 콜을 받으면 먹던 밥숟가락을 내던지고 달려와 나의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타령을 들어야 했다.
사랑은 변한다. 사랑이 변한다는 게 사실이라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우문은 어떤 상황에서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 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남녀들이, 또는 남남들이, 여여들이, 여름철 방제등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연애에 뛰어들지는 않겠지. 어차피 변할 건데 하면서…. 상우도, 은수도 평상시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상태였다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따위의 닭살스러운 코멘트를 날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둘이 만든 울타리에서 누군가는 먼저 떠나게 돼 있고, 미처 짐을 싸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상당시간 서성거려야 하는 사람에게 달리 무슨 말이 떠오를 수 있을까 싶다.
내 친구, 나와 마찬가지로 한달 정도 지나면 새로 시작한 작업에 대해서 생기발랄하게 떠들어댈 것이다. 낄낄거리며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잘난 척하다가 언젠가 또 반복하겠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누가 말리겠는가. 참으로 ‘뻔한’이 대사는 그래서 당분간 내가 꼽는 한국영화 최고의 명대사로 남을 것 같다. 김은형/ <한겨레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