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량특집의 계절이 돌아왔다. 어렸을 때는 여름에 대한 기대감이 여기서 시작했다. 공포영화들을 볼 때면 짜릿함과 무서움뿐만 아니라, 옆에 앉아 있는 가족의 존재에 대해서도 새삼 고마움을 느끼기까지 했다. 혼자 잠자리에 누워 있자면 화장실은 왜 그리 가고 싶던지! 여든아홉번의 고민 끝에 겨우 화장실에 가면 왠지 거울 속의 내 모습 뒤에 아까 봤던 영화의 미친 살인마가 있을 것만 같고, 문을 닫아버리면 문이 열리지 않아 손톱으로 문을 긁다가 죽어버린 해부실 여학생 이야기가 떠오를 뿐.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방법은 영화 시작 전 혹은 영화가 끝난 뒤 올라가는 크레딧에 나온 배우와 스탭들의 진짜 이름을 소리내어 읽어보는 것이었다. ‘그래… 저들도 다 진짜 사람인 거야. 주인공은 연기를 한 것뿐이고 카메라 뒤쪽엔 감독도 있고 화장 고쳐주는 사람도 있어. 다 뻥이라구!!’
이런 세뇌 덕분인지 이제는 더이상 공포영화가 무섭지 않다. 비디오숍의 공포영화 코너엘 가도 제일 먼저 보는 건 뒷껍데기에 쓰인 감독과 배우의 이름이고 영화를 보면서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다가 비명소리를 지르고 있을 배우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며 촬영현장에서 있었을 많은 에피소드들을 생각하면 더이상 영화가 영화로 보이지 않기 시작한다. 매우 현실적인 상상력으로 원초적인 공포를 이겨버린 건 글쎄 고마운 일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이 무서운 곳이란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기도 하고.손원평/ 자유기고가 thumbnail@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