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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엔프라니 등 자전적 이야기로 포장한 광고
2002-07-18

그 거짓말 진짜야?

제작연도 2002년 광고주 아시아나 대행사 상암기획

‘속았다?’ 광고의 거짓말이 새삼 도마에 올랐다. 설왕설래를 야기한 사례는 아시아나항공사 CF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산’이란 17살의 ‘까까머리’ 축구선수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이 광고는 월드컵 시류와 맞물려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란 문구로 일탈의 욕망을 기분좋게 자극한 현대카드 광고 못지않게 이 CF의 ‘떠나세요’란 마지막 메시지도 제법 귓전을 솔깃하게 만들었다. 특히 “영국에서의 첫골보다 더 가슴 벅찰 때는 세계 무대로 처음 떠나는 아시아나 비행기 안이었습니다”라는 CF 속 이산 선수의 내레이션은 비행기란 교통수단에 향긋한 감성적 향기를 불어넣으며 호소력을 배가했다. 때가 때이니만큼 외국 프로리그에서 활동중인 축구선수를 모델로 기용한 것은 시의적절한 선택으로 보였다.

그런데 자전적인 스토리 같았던 이 선수의 얘기가 진짜가 아니었단다. 이른바 ‘트루 라이즈’(true lies)였던 것이다. 실제 그는 벅찬 가슴을 안고 세계 무대로 처음 떠날 때 아시아나가 아니라 대한항공을 탔다. 이 선수가 영국으로 간 해는 1997년인데 당시는 아시아나가 유럽노선의 취항을 중단한 시절이었다. 이 선수는 모 언론과 인터뷰에서 아무렇지 않게 “실은 저, 대한항공 타고 갔어요”라고 말했고, 짐작과는 다른 새로운 사실로 인해 논란이 촉발됐다. 대한항공 광고를 담당하는 한 광고대행사 AE는 제보형식으로 아시아나 광고의 메시지가 사실에서 벗어나 있음을 적시한 문건을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광고계에는 광고 메시지의 진실성 수위를 놓고 이러쿵저렁쿵 말들이 오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약간의 배신감을 맛본 게 사실이다. 출근할 때마다 라디오 CM을 통해 이산 선수의 증언을 반복해 들으면서 ‘고 광고, 참 잘 만들었네’라며 호감을 표시해온 터라 ‘발칙하게 잘도 속였군’ 하며 잠시 분기탱천하는 시늉을 냈다. 그러나 한발짝 떨어져 생각해보면 과연 정색해서 반응할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광고의 감쪽같은 거짓말은 도처에 널려 있는 다반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광고라는 게 꼼꼼하게 진위를 파고들면 물음표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화장품 광고만 예로 들어도 그렇다. 화장품 CF엔 대부분 조각처럼 잘생긴 유명스타가 등장해 자신의 미모가 마치 해당 화장품을 사용한 덕분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따지고보면 이는 진실에서 떨어져 있다. 실생활에서도 그 모델이 그 화장품을 정말 선호하는지, 또 콕콕 집어 그 화장품만을 사용해 미모를 관리하는지 알 수 없다. 진심이 어느 정도 이상은 가미돼 있겠지만 모델은 짜여진 각본대로 성실히 좋은 척, 최고인 척 연기할 뿐이다. 광고를 제작하는 쪽도 얼마만큼 자사브랜드에 충성도를 갖고 있는가를 따져 모델을 선택하지 않는다. 광고 컨셉과 모델의 이미지가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가, 모델의 몸값이 제작비와 비교해 적정한가 등을 고려할 따름이다. 광고에서 사실에 100% 밀착한 것은 브랜드와 브랜드의 기본적인 특성뿐인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매체의 속성에 밝은 소비자가 수두룩한 세상에 광고 속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흔치 않을 것이다. 상품 구매를 유도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일련의 포장과정을 관습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발적으로 거리두기를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누가 얼마나 기발하게 소비자를 속이며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느냐가 광고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제작연도 2001년 광고주 (주)엔프라니 제품명 엔프라니 대행사 제일기획

그럼에도 가끔은 양해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아시아나 광고처럼 ‘쇼’를 전제로 삼지 않는 실제 모델의 그럴듯한 거짓말을 담았거나, 지난해 참신한 화장품 광고로 주목 받는 엔프라니 광고같이 메시지를 아주 실감나게 구체화했을 때 반발이 일어난다. ‘스물일곱,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라는 카피로 타깃 여성의 심리를 절묘하고도 절절하게 꿰뚫은 엔프라니 광고는 수작이란 칭송을 들었지만 일각에서는 눈총도 받았다. 27살 여성을 대변한 신애라는 여성모델이 82년생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이답지 않게 젊음을 뽐내는 미모의 모델을 향해 감정을 깊숙이 개입한 일부 여성은 허탈감을 맛본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쪽은 “세계 무대에 도전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광고적인 설정이었다”며 소비자를 의도적으로 기만하겠다는 의도가 없었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광고의 포장술을 어느 선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는 일언지하에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광고에 좀더 커다란 표현의 자유란 날개를 달아준다면 전략을 위한 선의의 전술에 모두 오케이 사인을 보내야겠지만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장르와 동격으로 광고의 모든 장치를 간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터이다. 광고는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데서 그치는 감상거리가 아니라 상품을 매개로 파는 쪽과 사는 쪽이 줄다리기를 벌이는 현실적인 상업매체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는 소비자의 감성과 사고를 좀더 섬세하게 고려하는 고단수의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있다.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