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lander 2001년, 감독 벤 스틸러 출연 벤 스틸러, 오언 C. 윌슨, 밀라 요보비치, 윌 페렐, 크리스틴 테일러 장르 코미디 (파라마운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미트 페어런트>의 웃기는 배우 벤 스틸러의 감독 데뷔작은, 꽤 진지한 드라마 <청춘 스케치>였다. 미국 X세대의 초상을 리얼하게 그려낸 <청춘 스케치>에서 벤 스틸러는, 성공을 위하여 여자친구의 꿈까지 희생시키는 여피족의 연기도 했다. 나이브한 ‘패배자’ 에단 호크와는 대비되는, 약삭빠르고 속물적인 인간. 하지만 벤 스틸러의 출발은 애초에 코미디언이었고, 지금도 변함없다. <청춘 스케치> 이후 출연한 영화들에서도 잘난 척하지만 바보인 광대 역을 주로 맡았다. 그런데도 벤 스틸러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여피족’이 다시 떠오른다. 너무 영리한 덕에, 즐겁게 사람들을 속이며 바보 연기를 하는 엘리트가.
‘쥬랜더’는 벤 스틸러가 96년 VH1 패션 어워드 시상식에 참가하면서 만들어낸 캐릭터다. 패션산업을 풍자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머리가 비고 잘난 척하는 남자모델. <쥬랜더>는 그 쥬랜더를 주인공으로, 패션산업의 숨겨진 이면을 폭로하는 코미디다. 물론 사실과는 거의 부합하지 않으니, 그리 진지해질 필요는 없다. 말레이시아에서 아동의 노동착취를 전면 거부하고 나서자 패션업계는 전전긍긍한다. 더이상 제3세계에서 저임금의 노동착취를 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패션업계의 지도자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남자모델을 이용하여 방해물을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X파일>의 듀코브니가 직접 출연하여 밝히는 패션업계의 비밀은, 링컨과 케네디 등 정치적 암살의 배후에는 늘 패션업계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모델은 육체는 튼튼하지만 머리가 비었고, 어디에나 갈 수 있기 때문에 암살자로 용이하다.
3년 연속 ‘올해의 모델’상을 독점한 데릭 쥬랜더가 바로 그, 멍청하고 잘생긴(?) 남자모델이다. 4연패에 도전하는 시상식장에서, 라이벌인 헨젤에게 ‘올해의 모델’상이 돌아간 것도 모르고 무대에 오른 쥬랜더는 망신을 당한다. ‘멍청한 모델’의 전형이라는 비난을 받은 쥬랜더는 충격을 받고 은퇴한다. 하지만 패션업계의 거물 무가트는 다시 쥬랜더를 불러들여 말레이시아 총리를 암살하기 위한 세뇌를 한다. <쥬랜더>를 보면 벤 스틸러를 ‘할리우드의 주성치’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모델 친구들과 함께 주유소에서 벌이는 기름 싸움이나 헨젤과 함께 컴퓨터 파일을 찾기 위해 뼈다귀를 들고 설치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패러디 장면 등은 압권이다. 웃음이 필요할 때, 머리를 비우고 보아야 할 영화.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