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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판 무혈혁명
2002-07-10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축구판 무혈혁명(soccer version of velvet revolution). 6월30일자 <뉴욕타임스>가 2002년 6월 한국의 모습을 스케치한 표현이다. ‘얼터너티브’한 성향의 스캇 버거슨(Scott Burgeson)도 혁명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한국사회의 분위기의 급격한 변화를 관찰한 글을 썼다. 웬 ‘혁명’? 혹시 “수많은 군중의 함성과 열광은 15년 전의 6월항쟁을 연상시킨다”라는 견해와 비슷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인가. ‘외국인’들은 무엇을 보고 한국의 2002년 6월을 혁명이라고 ‘착각’한 것일까. 이건 나같이 거리에 나가지 않고 월드컵을 ‘가족화합의 장’으로 만든 사람은 제대로 알기 힘들 것이다(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서로 다른 성(姓)을 가진 세 여자와 축구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엄마, 마누라, 딸 말이다). 그저 다른 지면에 글을 썼다가 현장에 다녀온 사람들이 전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들의 말을 믿는다면 그날 밤거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시간 동안 급격한 문화적 변화를 체험한 모양이다. 그저 미쳐 날뛰면서 놀았을 뿐이지만 그게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온다면 혁명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낡은 정치권력의 타도와 새로운 정치권력의 건설’이라는 혁명의 고전적 정의를 ‘새로운 욕망의 사회적 구조화’라고 바꾸거나 다른 용어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생각해보니 6월의 거리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환한 미소를 띠고 친밀감을 보이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사람들의 섹슈얼리티가 ‘양성적이고 유아적으로’ 변한 것 같았다(섹슈얼리티라는 말만 들으면 칙칙한 상상을 하는 사람은 이 글을 그만 읽고, 자기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바란다). 특히 퉁명스럽고 무례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에 인색하던 젊은이들의 평소의 모습은 친절하고 우호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들이 한국팀의 경기가 열린 날 모두 거리에 나갔는지, 거리에 나가서 무엇을 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다른 곳에 내가 쓴 글의 독자들의 반응을 취합해서 옮기자면 그날의 거리에는 “애국심과 에로스, 모성애와 시민의식으로 합쳐지고 갈라지는” 묘한 분위기가 존재했다고 한다. “길거리 응원이 끝나면 환락의 밤이 이어졌다”는 견해는 그날의 열광적이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대한 과장법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이런 시간 동안 발현된 섹슈얼리티가 무조건 해방적인 것인지는 따져봐야겠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전례없이 ‘퀴어’(queer)했다는 것이 나의 아름다운 환상이다. 하긴 이건 비단 밤거리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평소에 스킨십이 드물던 사람과 어린아이처럼 껴안고, 찧고 까불던 행동은 이런 섹슈얼리티의 가정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월드컵이 끝나고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 대한민국 사회의 못난 꼴을 바로잡기 위한 싸움의 와중에서 우리는 잠시 그대들(선수들)을 잊을 것이다”라는 유시민의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그건 미쳐 날뛰어 노는 행위에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혁명적’ 변화를 중성화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보다 더 꼴통 같은(=‘스퀘어’한) 주장은 얼마든지 있다. 다름 아니라 연평도 해전으로 월드컵 후유증(?)을 잠재워 버리는 ‘그 언론’의 논평이다. 그들은 “월드컵에서 보여준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국가발전으로 어쩌고…” 하는 부류들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월드컵이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거리를 나서니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로 툭툭 치고 갈 길을 재촉한다.

그래서 나는 2002년 6월이 1987년 6월의 재현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2002년 12월이 1987년 12월의 재판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느낌은 감출 수 없다. 아무당의 아무개가 당선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누가 되든 ‘죽 쒀서 개 준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혁명’이란 언제나 홀연히 찾아와서 미완으로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한국의 2002년 6월은 별것 아니었고 단지 ‘외신의 호들갑’이었을 뿐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 글 자체가 제대로 즐겨보지 못한 자의 푸념일까.

** ‘무혈혁명’이란 지난 7월1일 한국 국영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소개하면서 선택한 번역어입니다.신현준/ 청년문화 연구가 http://homey.w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