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 영화는 지방관객이 서울의 2배이고 예술영화는 그 반대다.” 서울과 지방의 관객성향을 비교할 때 흔히 하는 얘기다. 실제로 올해 설에 개봉한 성룡 주연의 <엑시덴탈 스파이>는 서울관객이 약 16만5천명이었던 반면 전국관객은 62만여명. 지방관객이 서울관객의 3배에 달했다. 성룡 영화를 자주 수입·배급한 한 관계자는 “성룡 주연의 영화인 경우 평균적으로 지방이 서울의 2배에서 2.5배가량 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퍼즐처럼 복잡해서 머리 쓰는 재미로 보는 <메멘토> 같은 영화는 어떨까? <메멘토>를 수입·배급한 씨네월드는 “대학생이 많이 찾는 강남과 신촌지역에서 잘된다”고 말했다. 종로, 중구나 영등포지역 극장에서 동원하는 관객 수가 강남이나 신촌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는 얘기. 지방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 광주에서 <메멘토>를 본 사람은 부산이나 대구의 절반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메멘토> 관객의 서울 대 지방 비율은 1 대 1 정도지만 젊고 유행에 민감한 관객이 많은 곳이 아니면 반응이 안 좋다. 씨네월드 관계자는 “가끔 눈에 띄는 30∼40대 관객 가운데 극장 문을 나서면서 영화를 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전한다.
아직 통합전산망이 없어 관객 통계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지역별 차이를 자주 실감한다. 메가박스의 황병국 차장은 “20대 오피스 레이디가 많은 곳이어서 멜로드라마, 로맨틱코미디가 강세”라고 말한다. 예로 들 수 있는 영화는 <썸원 라이크 유>나 <브리짓 존스의 일기> 같은 영화들. 할리우드 스타가 나오는 달콤한 영화를 찾는 관객이 종로권 극장보다 월등히 많다는 것이다. 전국관객 동원에서 기대에 못 미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이웃집 토토로>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도 메가박스에서 선전했다. 이중 <이웃집 토토로>는 메가박스, 센트럴6시네마 등 강남의 멀티플렉스를 찾은 관객이 녹색극장 등 신촌지역 극장을 찾은 관객보다 월등히 많았다. “상대적으로 한국영화보다 외화가 잘되는 극장”이라는 게 메가박스의 특징 중 하나. <엽기적인 그녀>나 <친구>처럼 초대형 흥행작인 경우는 메가박스의 관객 수가 앞서지만 <선물>이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처럼 중급 흥행작은 서울극장이 메가박스보다 조금 앞선다. 개봉하는 한국영화가 무조건 서울극장부터 확보하려고 하는 데는 이런 관객성향도 작용하는 셈이다. 메가박스가 회원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 극장을 찾는 연령층은 20대가 68%, 10대 12%, 30대 18%, 40대 이상 2% 정도다. 주관객층이 대학생, 미혼 직장남녀라는 게 한눈에 드러나는 수치이다.
CGV강변11은 메가박스처럼 뚜렷한 특징을 보여주지 않는다. CGV 관계자는 “전국 평균치에 가까운 관람형태를 보여준다는 게 오히려 특징”이라고 말한다. CGV강변11의 관객 수 변화가 전국 관객 수 변화와 비슷한 추세를 보이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분당에 있는 CGV야탑8과 CGV오리10의 관객 성향이다. 관계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강세이며 한국영화도 초대형 흥행작 위주로 소비된다”고 말한다. 소득수준이 높은 베드타운에선 다양한 영화가 고루 잘되는 게 아니라 특정 영화에 집중적으로 관객이 몰린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무조건 영화보는 횟수가 늘지는 않는다. 레포츠 등 다른 여가 수단이 영화를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 해석이다.
지난해 12월 영화진흥위원회가 리서치플러스연구소에 의뢰해 작성한 관객성향 조사자료를 보면 서울의 권역별 관객 구성비는 종로, 중구권 27.9%, 강남권 19.8%, 신촌 9.4%, 강변CGV 9.3% 등이다. 여전히 종로, 중구권의 비중이 크지만 1999년 47%를 넘었던 것에 비해 현저히 줄었고 메가박스 등장 이후 강남권의 비중은 급격히 올라갔다.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웬만한 대도시에 멀티플렉스가 들어선 올해는 어떨까? 정확한 집계는 연말이 지나야 가능하겠지만 서울관객의 비중이 줄고 지방관객의 비중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실제로 시네마서비스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신라의 달밤>과 <엽기적인 그녀>, 두 영화 모두 서울관객은 전국관객의 36%를 차지했다. 과거 서울 대 지방의 관객 비율을 1 대 1로 봤던 것과 상당히 달라진 수치.
멀티플렉스 건설열기가 뜨거운 지금, 지역별, 극장별 관객취향을 면밀히 분석해보는 것도 지금의 영화산업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잡는 데 필요한 일일 것이다.
남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