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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s’ Talk] [Masters’ Talk] “관객이 자기 자신마저 잊어버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 <오디세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➁
배동미 사진 최성열 2026-08-18

박찬욱 <어쩔수가없다>가 저의 최신작인데 그 작품을 처음 원작 소설을 읽은 지 20년이 됐고, 20년 만에 영화로 개봉했습니다. 그 작품은 원래 미국영화로 만들 생각이었거든요. 오랫동안 각색하다가 결국 모든 것이 잘 돌아가지 않아서 한국영화로 바꾸게 됐어요.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한국영화로 만들게 된 것이 나한테는 더 좋은 일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어요. 마찬가지로 과거 영화 <트로이> 속 전쟁을 연출하려고 했을 때에 비해 최근에 만든 <오디세이>가 더 좋고 더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느끼셨길 바랍니다. 제가 처음부터 갖고 있던 <어쩔수가없다>의 이미지는 행복한 가정의 초상이었습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심지어 개들까지 하나의 가족이 돼 최상의 행복을 느끼는 가장의 모습으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협주곡이 들려온다는 구상이었죠. 그것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이미지였고 20년 만에 영화를 만들 때도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한데 이 영화는 목마로 시작해서 목마로 끝나잖아요. 그런 결정은 어떻게 생각한 건가요?

크리스토퍼 놀런 먼저 <어쩔수가없다>가 한국영화가 된 것은 결과적으로 가장 좋은 방향이었다는 데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른 맥락에서 만들어진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미국적인 이야기를 한국이라는 맥락 안에 배치한 결과, 훨씬 더 생생하고 살아 있는 작품이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도 정말 좋았습니다. 저 역시 일이란 때론 가장 좋은 방향으로 풀린다고 믿습니다. 이 영화 <오디세이>를 만들 수 있어 기뻤습니다. 비로소 영화로 만들 수 있게 됐을 때, 저 자신이 준비되어 있다고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이미지에 관한 감독님의 질문에 답변을 드리자면, 목마가 가진 상징성이 매우 중요해지면서, 관객에게 중요한 건 무엇인가에 관해 고찰하게 됐습니다. 어떤 이미지가 관객의 기억 속에 남는가, 그 이미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이미지는 관객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트로이 목마는 흘러가는 회상의 대상일 뿐 주요 요소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트로이와 트로이의 몰락을 설계한 인물 오디세우스에 관한 이야기를 보러온 관객에게 트로이 목마는 마음속에 남는 영화적 상징, 시각적 상징이 될 수 있으리라 봤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과 끝을 그 이미지로 장식하는 것이 제겐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 이미지가 관객의 마음속에 묵직하게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찬욱 영화를 볼 때도, 보고 나서도 감독님은 왜 목마의 이미지를 시작과 끝으로 삼았을까 생각했어요. 얼마나 중요한 결정이에요. 그래서 어쩌면 트로이 목마에 모든 것이 담겨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결국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목마란 선물을 공격 무기로 사용했고, 어찌 보면 비겁한 트릭에 대한 죄의식이 호메로스의 스토리와는 완전히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 죄의식을 중시하는 것이 감독님의 <오디세이>의 핵심적인 포인트여서 영화의 시작과 끝으로 삼았구나 해석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저도 감독님의 해석에 동의합니다. <오디세이아>를 각색하고 해석해온 여정 역시 트로이 목마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그리고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이 현대 관객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지에 관한 고찰이었습니다. 호메로스의 원작 서사시가 3천년이란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문화와 세대를 매혹시킬 수 있었던 건 그 안에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원초적인 요소들이 있고 각 세대가 이 서사시 안에서 매번 새로운 해석을 발견합니다. 어떤 면에서 <오디세이아>는 매우 단순한 시이지만, 해석하는 과정이 뒤따르기에 다양한 방향으로 끌어당겨질 수 있는 거죠. 각색이라는 것 자체의 영화 작업에서 제가 받을 수 있는 크나큰 만족감 중 하나였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서사시를 바라보고 현대적인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일이요.

박찬욱 그렇죠. 호메로스도 당대 관점에서 오래된 이야기를 쓴 것이고, 이런 오래된 이야기들은 시대를 바꿔가면서 계속해서 그 시대의 눈으로 각색되고 변주됩니다. 오래된 이야기의 가치가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영화로 옮기는 것이 21세기에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이 영화의 각색을 두고 원작을 훼손했다는 식의 비판은 정말 아무 가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저도 동의합니다. 영화감독으로서 작품을 해석하는 건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대가를 받는 이유이자 우리의 일이죠. 영화감독은 이야기를 가져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 관객이 공감 가능한 진리를 발견해내야 합니다. 이 작업은 분명 특권이지만 동시에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고 봅니다.

박찬욱 같은 감독으로서 목마 안에 갇힌 상태에서 칼들이 막 들어오고 한 사람이 칼에 찔리고 빠르게 칼이 뽑히는 순간 재빨리 칼날에 묻은 피를 닦아내는 연출의 디테일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짜릿했어요. 이렇게 웅장하고 오래된 이야기를 해석해서 만들면서도 작은 디테일로 재치를 잃지 않는 감독님의 센스가 정말 놀라웠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사람들이 목마 안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또 어떻게 서로를 도와주었을까 하는 것들을 탐구하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감독님이 말씀해주신 그런 디테일은 관객들이 나중에 많이 기억하게 되는 포인트이고, 감독님 작품에서도 그런 디테일들이 많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 작은 디테일은 거대한 이야기에 대비되지만 훨씬 더 인간적이고,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유대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관객들은 큰 요소보다 작은 디테일들을 더 오래 기억하곤 합니다.

박찬욱 그렇죠. 또 하나 제가 정말 짜릿하게 느꼈던 순간은 오디세우스가 활을 쏘기 전에 먼저 시위를 한번 퉁하고 튕겨서 소리를 내서 경고하는 장면인데요. 그 설정은 원작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작은 행동으로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좋은 설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활시위가 퉁 튕기는 음향효과를 음악의 일부로 사용하는데, 그런 연출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효과음을 음악에 일부러 끌어들여서 포용하는 것. <오디세이>는 그런 연출의 가장 훌륭한 사례라고 봤습니다. 정말 재밌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저 역시 오랫동안 음악과 음향효과가 통합된 연출을 정말 좋아해왔습니다. 특히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영화들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요. 예를 들어, <옛날 옛적 서부에서>에서 하모니카를 사용하는 방식을 보면, 디제시스 음악과 논디제시스 음악, 그리고 음향 효과가 서로 구분되지 않은 채 하나로 얽히죠. 그런 사운드디자인이 제게 무척 중요했는데, 박찬욱 감독님의 귀에 그것이 효과적으로 들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황홀하고 기쁘네요. 사실 루드비그 예란손 음악감독과 저는 그 음향 연출에 긴 시간과 노력을 들였습니다. 루드비그 음악감독이 리라를 이용해 하나의 선율을 만들고, 활시위를 퉁기는 소리를 넣어 마치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 듯한 느낌을 주었죠. 박 감독님이 이 영화의 사운드디자인에 관해 이야기해주시는 게 놀랍지는 않습니다. 사운드디자인에 관심이 크다는 것을 <헤어질 결심>을 통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경찰서 취조실에서 서래와 해준이 스시를 함께 먹는 장면의 사운드디자인은 식감이 느껴질 정도인데요. (웃음) 마치 ASMR처럼 들렸습니다. 그런 사운드디자인은 관객을 인물들과 아주 가깝게 느끼도록 만들죠. <아가씨>도 마찬가지로 사운드디자인이 훌륭했습니다. 그래서 오디세우스가 활시위를 튕기는 순간이 박 감독님에게도 의미 있게 다가갔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쁘네요.

박찬욱 <오디세이아>를 각색하는 과정도 또 하나의 긴 여정이었을 텐데, 원작에 등장하는 올림포스의 12명의 주신들을 아테나 빼놓고는 하나도 등장시키지 않았잖아요. 아테나조차 원작에서처럼 모든 것을 조종하는 초인간적인 능력의 소유자로 묘사하기보다 조언을 해주고 걱정해주는 존재로 묘사됐습니다. 처음부터 신들을 등장시키지 않겠다고 판단했나요? 아니면 각색 과정 중에 떠올렸나요?

크리스토퍼 놀런 수개월간 각색의 방향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에 떠올린 아이디어였습니다. 좀 복잡한 과정이 있었는데요. 전 이 영화가 환상적인 요소를 받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키클롭스와 세이렌, 스킬라, 카리브디스를 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신들에 관해서는 분명히 짚어내지 못하겠더군요. 그러면서 인간 캐릭터들의 관점에서 괴물들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신들도 캐릭터의 관점으로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인간 캐릭터 없이 신들끼리의 상호작용은 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청동기시대 사람들 앞에 신들은 어떻게 나타났을까에 관해 생각하게 되면서, 그땐 과학 이전의 시기였기 때문에 신의 증거는 어디에나 있었으리란 사실도 깨달았죠.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은 신이 인간에게 말을 거는 것이고, 천둥과 번개도 신의 말이며 바람과 파도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을 카메라로 잘 담아내고 싶었고, 자연 세계가 등장인물들에게 말을 거는 방식을 잘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영화 주제, 즉 신들이 인간에게 허름한 모습으로 변장해서 나타난다는 점을 중요하게 전하고자 했어요.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그는 변장한 신일 수 있으니’라는 제우스의 법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래서 신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존재로 묘사하는 게 아니라 땅에 발 붙이고 있는 자의 시각에서 보여주리라 결심했습니다.

박찬욱 정말 심오한 아이디어인 것 같아요. 감동적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도 그런 면을 자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디세이>를 신들이 지배하는 세계, 신들이 조종하고 그들이 인간들을 좌지우지하고 신들의 예언에 의해 모든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 그런 세계가 끝나고 인간이 자기 책임을 자각하면서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열어가는 영화라고 봤습니다. 신들이 모든 걸 조종한다고 했을 때 인간은 큰 책임을 느낄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전 그 장면을 눈여겨봤어요. 마지막에 아테나 여신이 오디세우스의 옆에 앉아 있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면 가버리고 없잖아요. 문이 열려 있고 아테나 여신이 그리로 나간 듯 암시하는 짧은 숏이 있습니다. 드라마 전개를 위해서라면 굳이 없어도 되는 숏은 그런 의도로 읽혔습니다. 이제 신이 자기들의 역할을 끝내고 떠나버리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암시하는 숏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아주 흥미로운 해석입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구체적인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었지만, 감독님의 생각과 해석을 듣다 보니 ‘책임을 느끼지 않는 캐릭터’란 말씀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저는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캐릭터는 더이상 현대 관객에게 흥미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관객은 캐릭터들이 자기 행동에 따른 결과를 감당하고 고민하길 원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아테나의 경우 오디세우스의 의식, 자기 죄의식이 투영된 존재로 표현했습니다. 어쩌면 오디세우스의 입장에선 모든 일이 신들의 탓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을 테죠. 하지만 감독님의 말씀하신 것처럼, 이 영화는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선택과 행동의 주체임을 직면하게 만듭니다. 저는 그래야 현대 관객에게 훨씬 더 공감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박찬욱 각색에서 정말 감탄했던 또 하나의 요소는 아테나를 묘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트로이 함락 때 아테나를 모시는 신전의 무녀를 아테나와 같은 모습으로 표현했는데요. 회상 장면에서 아테네 조각상의 목을 자르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무녀의 목을 자르는 장면을 대신합니다. 인간의 목을 자르는 끔찍한 모습을 굳이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폭력을 잘 묘사하는 연출도 좋았지만 또 무녀가 아테나의 얼굴로 오디세우스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죄의식을 다른 배우의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정말 뛰어난 각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사합니다. 제게 무척 중요한 대목이었는데요. 관객 입장에서 아주 구체적이면서도 즉각 알아볼 수 있는 오디세우스의 죄의식에 대한 상징이 필요했습니다. 배우 젠데이아가 함께해주겠다고 해서 아주 행운이었는데요. 아테나는 작은 비중임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의미를 지녀야 하는 역할입니다. 이야기의 여러 순간에 등장하지만 관객이 언제나 아테나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감독님도 동의하시겠지만, 작은 비중이지만 관객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마음을 완전히 빼앗는 캐릭터를 연출자들은 원하죠. 저는 <오펜하이머> 때 배우 라미 말렉과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요. 작은 역이지만 그가 들어올 때, 나갈 때, 배경을 스칠 때마다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관객은 그 인물이 이야기의 결말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지 깨닫게 됩니다.

<오펜하이머>

박찬욱 또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할 때 자막을 넣었잖아요. “명백한 마법의 시대가 있었다.” 그 자막이 왜 필요했나요. 마법의 시대란 건 그냥 영화를 따라가도 알 수 있고, 또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모두가 아니까 당연히 관객도 그럴 거라고 예상할 텐데요. 더군다나 거기서 ‘명백한’(Apparent)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인 의도는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어린 시절 제게 아주 큰 영향을 준 영화적 경험 중 하나는 조지 루커스 감독의 <스타워즈> 시리즈입니다. <스타워즈>는 “아주 먼 옛날, 머나먼 은하계에서…”라는 자막으로 시작하죠. 어린아이였던 제게 그 문장은 그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곧바로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프레임 속에 빠지게 만들었고, 영화 속 이미지에 몰입하게 했죠. 이번 영화에서도 그런 영화적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관객 자신을 잊어버릴 만큼 영화가 제시하는 고유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죠. 관객을 돕기 위해서 그 문장을 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명백한이란 형용사는, 현실적인 톤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면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마법이 왜 존재하는지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온 표현 같습니다. 저는 청동기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는데요. 그들 주변은 온통 마법이었을 겁니다. 설명할 수 없는 현상과 그들이 보고 경험하는 것들, 삶이라는 미스터리에 관해 나름의 설명을 만들어냈을 테죠. 그 설명들은 때론 상상에 기반한 것이었고, 옳을 수도 있고, 틀린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자막을 통해 그와 관련한 생각을 영화 시작에서부터 관객의 머릿속에 심어두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만들고 나서 관객들과 만나고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마법 같은 이야기들과 관점이 오늘날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날 우리도 의심 없이 믿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고,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청동기시대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박찬욱 맞아요.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할 시간이 된 것 같은데요. 이건 정말 개인적인 질문인데, 저는 각본을 쓸 때 항상 누군가와 함께 쓰거든요. 그들의 재능이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혼자서 쓰면 게을러지기도 하고, ‘이게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생각은 어떨까’ 싶어서 항상 다른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공동 작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감독님 혼자 쓰셨더라고요. 그런 일은 어떤가요? 혼자 쓰는 작업, 충분히 할 만한가요?

크리스토퍼 놀런 저는 시나리오를 함께 쓰기도 하고 혼자서 쓰기도 합니다. 프로젝트마다 다 다르죠. 이번처럼 원작을 각색할 땐, 호메로스가 일종의 협업자가 되어주고 아주 훌륭한 출발점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참고로 <오펜하이머>를 각색할 때도 같은 느낌이었는데요. 카이 버드와 마틴 J. 셔윈이 쓴 훌륭한 책을 각색한 작품이라 그들이 협업자처럼 느껴졌죠. 물론 제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종 같이 작업하는 동생 조너선의 경우, 제가 자주 물어보고 의견도 참고하곤 하는데, 요즘은 그가 너무 바빠서 함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웃음) 혼자 글을 쓰다보면 너무 외롭고 고립되어 말 그대로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그럴 땐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의견을 들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혼자 쓰는 장점도 있죠. 어떤 방식으로 작업할지 매우 세밀하게 홀로 결정할 수 있고 자기에게 잘 맞는 리듬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작업 방식에 스스로를 맞출 필요도 없고요. 결국 공동 집필과 단독 집필 모두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세계의 장점을 모두 누리고 있는 것 같네요. 아내이자 프로듀서인 에마, 동생 조너선은 언제든 의견을 물을 수 있고 도움을 줄 사람들이니까요. 저는 홀로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에도 온전히 혼자만은 아닙니다.

박찬욱 아쉽지만 여기서 대화를 마쳐야 될 것 같습니다. 시차 적응 잘하시면서 남은 홍보 일정을 무사히 마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게으름 부리지 말고 빨리 다음 영화를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큰 영광이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정말 존경해왔고 좋아했던 감독님이기 때문에 제 영화에 대해 여러 말씀을 해주셔서 정말로 큰 영광이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펜하이머> 속 라미 말렉과 <오디세이> 속 젠데이아

<오펜하이머>

배우 라미 말렉은 메인 예고편에도 등장하지 않으며 출연 분량을 전부 합치면 총 2분47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 청문회 장면에서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데이비드 L. 힐(라미 말렉)은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에게 줄곧 무시를 당하지만 청문회에서 과학자로서 신념에 따라 오펜하이머를 지지하며 정치인들이 벌이는 정치적 행위의 불공정함을 지적한다. 말렉은 짧은 출연 분량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과학을 무분별하게 도구화해선 안된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한다. 배우 젠데이아(아테나 역)의 <오디세이> 속 출연 분량 역시 5분 미만으로 길지 않지만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선명하고 통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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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유니버설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