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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고 게임 상점 탐방기
2002-07-04

유혹적인, 감동적인

지난주 일본을 방문했다. 제일 재미있었던 게 아키하바라다. 우리나라의 용산 같은 곳으로, 남들은 주로 전자제품을 사지만 내 목표는 중고 게임 소프트웨어상점이었다. 우선은 가격이 저렴한 게 유혹적이었지만,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게임을 살 수 있다는 것도 중요했다. 인터넷에서 미리 정보를 수집해 상점 리스트를 뽑고 교통편도 알아봤다.

개인의 산발적 거래가 대다수인 한국과는 달리 일본 중고 게임 시장은 상당히 체계화되어 있다. 가게마다 판매가격은 물론 매입가격까지 명시되어 있어서 터무니없이 후려치는 용산의 이른바 ‘용팔이’들과는 대조적이다. 가격은 기본적으로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어떤 게임은 나온 지 몇년이나 지났는데 오히려 출시가격보다도 높게 팔리고 있고, 또 어떤 것은 불과 한달도 안 되었는데 벌써 반값 이하로 떨어져 있기도 한다. 중고시장 가격은 게임의 인기도를 보여주는 일종의 척도로 사용될 수도 있다. 같은 게임이라도 보존상태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것도 합리적이다.

매장에 들어서자 일단 심호흡부터 했다. 못 구해서 애태우던 게임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쇼핑이란 게 다 그렇지만, 싸다고 넋나가다 보면 꼭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무작정 사들여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긴다. 옆에서 말릴 친구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큰일날 뻔했다.

벼르던 <리플레인 러브> 한정판을 1134엔에, 역시 한정판인 쉔무를 609엔에 구입했다. 한국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렌탈 히어로>와 는 똑같이 1869엔이다. 1344엔이란 가격표가 붙어 있던 <풍래의 시렌2>는 약간 고민 끝에 집어들었다. 뜻밖의 수확은 스퀘어에서 낸 <성검전설>과 <사가 프론티어2> 밀레니엄 컬렉션이다. 각각 피겨와 오르골, 찻잔과 티셔츠를 부록으로 해 특별 패키지로 낸 것인데, 일본 잡지에 실린 광고를 보고 무척 가지고 싶어했던 걸 이번에 손에 넣었다. 재미있는 것은 똑같이 3990엔에 나왔는데 지금은 각각 2499엔, 1764엔에 팔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성검전설> 팬이 <사가 프론티어>보다 더 많은 것인지, 아니면 더 유복한 건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사가 프론티어>쪽이 부록은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러게임 은 189엔이란 획기적인 가격이었다. 오래된 게임이다보니 그래픽이 조잡해서 괴물보다도 주인공 얼굴이 더 겁나지만 뛰어난 게임은 세월이 흐른다고 빛이 바래지 않는다.

내 쪽에선 일어를 읽을 수는 있어도 말은 못하고, 반대로 점원들은 영어를 거의 한마디도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구매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똑같은 게임인데 가격표가 다르게 붙어 있는 걸 가져가서 문의했더니 괴로워하다가 비싼 쪽의 가격표를 고쳐 주기도 했다. 아쉬움이라면 <렌탈 히어로>를 사고나서 옆집에 갔더니 300엔이나 싸게 팔고 있었던 것이다. 발품을 좀 팔았으면 게임을 하나 더 살 수 있었다는 좌절감에 지금도 위가 아프다.

아키하바라 중고 상점보다 더 싸게 게임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있긴 하다. 주말이면 도심공원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이다. 이곳에선 슈퍼 패미컴이나 패미컴 팩은 균일가 100∼200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새턴, 드림캐스트 소프트도 500엔 정도에 살 수 있다. 드림캐스트용 <바이오해저드: 코드명 베로니카> <스트리트파이터3: W임팩트> <버추어 파이터 3tb>을 1500엔에 사왔다. 일본까지 가서 소비세 5%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벼룩시장의 좋은 점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