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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으로 유쾌한 시트콤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
2002-07-03

몸을 입어라, 마음도 맞으리라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Third Rock from the Sun)MBC 드라마넷월∼금 오전 7시토·일(재방송) 오전 8시, 오후2시, 오후 10시

지금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를 보며 느끼는 것이, 그 친구는 우리나라보다 그 나라가 훨씬 더 몸에 맞는 것 같다. 내 입장에선 참 아쉬운 일이지만 그 친구는 그 나라에 있을 때 더 그 친구답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기사 생전 처음 보는 남의 나라가 너무도 좋아서 자기 영혼의 동반자로까지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 나라가 몸에 너무 맞아서 영혼도 맞는 것이다.

머나먼 은하계. 자줏빛 튜브의 외계인들 다섯이 지구를 탐사하러 온다(한명은 대기권 진입에서 실종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양에서 세 번째 행성’ 지구를 조사하러 미국 표준치인 오하이오의 펜들턴에 하루 동안 조사를 하기로 하는데, 워낙 지구가 마음에 들고 알고 싶은 게 많아서 체류 기간을 연장한다. 그러나 몸을 입는다고 인간을 아는 게 아닌 법! 이들은 인간의 행동양식에 적응하느라 온갖 고생에 해프닝을 일으킨다. 외계인들이 6년 동안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 바로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이다.

‘3류’ 대학교 물리학 교수로 위장한 외계인 사령관 딕, 그리고 딕이 홀라당 반해버린 인류학 교수 메리 올브라이트. 이 시트콤을 만든 사람들이 정말로 물리학과 인류학을 공부한 것이 아닐까? 뭐든지 평균치여야 한다는 것 때문에 오하이오 중소도시에 정착한 이 외계인들은 결과적으로 반대이야기를 해준다. 평균치는 진실도 아니고 사실도 아니다. 모든 것의 총합은 존재해도 그 중간치가 대표가 되지 않는다. 물리학과 인류학의 환상적인 결합이 내놓은 문화유전자 MEME의 칵테일이 아니런가.

모든 시트콤의 규칙대로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 역시 말이 안 되는 설정을 먼저 장치해놓는다. 동전던지기로 지구인의 몸을 입다보니 제일 연장자가 꼬마가 되고 제일 터프한 군인이 여자가 되는 상황은 재미있지만 식상할 수도 있다. 진짜 내공은 그 다음에 드러나는 법. 안 맞는 몸을 입어서 벌어지는 해프닝은 단지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예절, 사고방식 등이 얼마나 연약하며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 통렬하게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 통렬함은 즐겁고 신난다. 가면 갈수록 외계인들은 어쩌다가 입은 지구인의 몸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는 사실에 당혹해버린다. 그러나 이 당혹감을 외계인들은 너무나 단순하게 돌파한다 - 바로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까지 즐거워진다.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은 정말 몇 안 되게 ‘국제적’이나 ‘연령 불변’의 유머를 발휘한다. 상당수 미국 시트콤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미국적 조크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야 받아들일 수 있는데,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은 단지 인간이라면, 사회적 존재라면 누구나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를 기본 베이스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방식을 유머로 끼워넣는다.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조건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은 시트콤으로서 최고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명민한 작가들뿐만이 아니라 대본을 받쳐주는 배우들이 있다. 나오는 배우들은 그야말로 최강이다. 연기파 배우 존 리스고는 천방지축 딕 역을 거의 신들린 듯이 연기한다. 에미상 골든 글로브상 시상식 때 후보 지명만 해도 자지러질 듯이 환호성이 일어났던 것이 당연하다. 해리 역의 프렌치 스튜어트는 그야말로 보물과 다름없다. 아무리 멀쩡한 말도 해리를 한번 통과하면 부조리극 대사가 되어버리고 만다. 키는 딕의 반만 하던 타미, 조셉 고든 래빗은 그 어린 나이에도 리스고와 동등하게 연기를 하고 있다. 빵빵한 몸매만큼이나 한터프한 보안담당 샐리, 크리스틴 존스턴의 매력은 하늘을 찌른다. 딕 덕분에 천국과 지옥을 하루에도 수십번 왔다갔다하는 메리 올브라이트 역의 제인 커틴 역시 어떠한 상황에서도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멀쩡하게 대처하는 능력은 환상적이다. “메리, 당신이 그리울 거예요. 온몸 구석구석, 특히 ‘거기’요. 당신은 ‘메리 월드’고 난 그런 메리 월드를 사랑해요!” 이런 대사를 애정을 담뿍 담아서 하는 딕이나, 이 대사에 민망해하면서도 기뻐하는 메리나 정말 한쌍의 바퀴벌레다.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은 시즌 6을 마지막으로 아쉬운 작별을 했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Fly me to the Moon>과 함께 이들은 우주로 떠난다.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박수 칠 때 떠나라, 박수 받으며 떠나라, 이다. 절정에서 손 흔들고 떠난 솔로몬 가족들. 이들은 정말로 완전한 인간, 완전한 시트콤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 글은 남승희의 <나는 미소년이 좋다>에 수록된 ‘몸을 입어라, 마음을 얻으리라’에서 99% 아이디어를 얻어 썼음을 밝힙니다.)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