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 인생에 그리 중요한 영화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보았던 모든 영화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인생 깊숙이 박혀 있어 나는 그 내상을 모르고 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릴 때 영화란 친구와 마주앉아 쉼없는 노가리를 까듯이 그렇게 시간을 죽이는 데 사용됐지,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게 만드는 기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교복 안에 갇히고 학교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던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가 영화관에 가는 일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때는 매주 텔레비전 앞에서 ‘명화극장’ 시그날뮤직만 들어도 왠지 기분이 들뜨고, 명절날 역시나 같은 영화를 또 틀어주어도 기쁘기 한량없었던, 그런 지루한 시절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 지루함 사이사이를 꽉 채워주던 것 중 하나가 역시나 영화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 영화는 확실하게 ‘소중한 시절’을 잘 흘러 보내게 한 중요한 ‘것들’ 중 하나였다.
시험기간이 되면, 그 짧은 오전수업(시험) 끝에 오는, 햇살 좋은 거리를 쏘다닐 수 있는 좋은 시간 때문에 괜히 마음이 설레곤 했다. 당연히 그 시간에는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막 돌아다니기 좋을 만한 곳이 없었던 까닭에 영화관에 가는 일이 흔한 일정이 되곤 했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그날도 시험이 끝나고 친구 놈을 꼬드겨서 아시아극장에 갔는데, 알랭 들롱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그 영화를 보기로 작정했던 것 같다. 그때는 당연하고도 물론이지만 우리는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영화관 앞에서 얻는 스틸 사진의 멋스러움에 결정을 내리곤 했었다. 아! 이소룡의 영화를 빼고는 말이다. 그 영화가 머릿속에 박혀서는 며칠 몇날을 두고 나에게 약한 두통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태양은 가득히>를 보며 ‘태양이 가득히’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전율을 느꼈던 건, 머릿속의 기억이 아니라 내 몸 구석에 나른한 살떨림으로 남아 있다. 완전범죄(한참 지난 뒤에야 알았지만)라고 믿어버린 알랭 들롱의 미끈한 육체 앞으로 시커먼 자루 하나가 요트에 끌려 나오는 마지막 장면은(여기서 영화가 끝나다니 하고 대단히 놀라워하면서 지루한 설명으로 끝맺음하는 방화를 비웃었던 기억이 있다) 왠지 모를 서글픔으로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그 영화의 분위기와 부분 묘사에 완전히 압도당했는데, 알랭 들롱의 반짝이는 원형 목걸이랄지 그가 펜을 쥐는 손의 모양 또는 상반신을 벗고 누워 있던 침대의 형태(쇠창살 같은 형태의 그 금속성), 그리고 양말 없이 신는 남성용 단화의 멋스러움 등이 사춘기 소년의 불두덩을 바짝 죄었던 여주인공의 누드 상반신보다 더 오래 잔상으로 남아 있었던 것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다.
이 영화 이전에도 보았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지중해의 낯간지러운 햇살과 돈푼깨나 있는 젊은 남자의 세상 움켜쥐기에도 어느 정도 흥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속물근성은, 이 영화를 보면서 알량한 열서너살의 청춘에 세포를 모두 열어젖히고 막연한 환상을 구체적으로 새겼던 나를 굳이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게 만들었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가 주는 야릇함의 흥분은 결코 이성(여자주인공)에게 닿아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성에 눈을 뜨게 했던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과 흐트러진 하얀 침대 시트(친구의 죽음을 알리는 알랭 들롱의 말을 듣고 몸을 돌려 슬퍼하는 침상의 여주인공이 나오는 그 장면)는 동일한 성적 자극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었다. 도무지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일찌감치 싫증을 냈던 것 같다. 또한 감독(그땐, 나에게 감독이 중요하지 않았다. 전혀!)의 의도나 진의를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동성애 취향은 아니지만(아니, 아직 이 나이에도 내 안에 숨어 있는 동성애 취향을 모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미끌거리는 알랭 들롱의 각지고 번들거리는 상반신을, 그의 열린 동공과 매끈한 요트의 등을 바라보던 나에게 영화를 요것저것 뜯어내고 알았다고 하는 일은 하찮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그 영화는 중삐리의 오후를 홀라당 빼앗아버리고 이후에도 내 몸 안에서 곧잘 시간을 훔쳐내곤 했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