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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s’ Talk] 계속 관객이 의심하고 질문하게 하고 싶었어요,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X <아가씨> 김태리 배우 ➁
배동미 사진 최성열 2025-10-17

<헤어질 결심>의 안개와 대비되는 <어쩔수가없다> 속 태양

김태리 <헤어질 결심>은 안개, 연기가 자욱하게 내내 깔려 있었어요.

박찬욱 몽롱하죠.

김태리 <어쩔수가없다>는 태양과 빛이 인상적이에요. 만수가 태양 빛을 피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해요. 태양의 의미가 궁금했어요.

박찬욱 한 예리 한다.

김태리 뭐랄까, 미장센이 너무 예쁘니까 넘어가지만 세상에 무슨 경찰서 화장실이 그렇게 아름답고 구조적으로 지어졌어요? 말이 안되잖아요! <아가씨>때도 확고한 미적 감각으로 이해를 했지만….

박찬욱 <아가씨>는 맞아요. 코우즈키(조진웅)가 확고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잖아요. 자신의 안목을 과시하고 취향을 극한으로 추구하고 그렇게 꾸민 건데 <헤어질 결심><어쩔수가없다>엔 그런 게 없어요.

김태리 그건 감독님 생각인 것 같아요. 때깔이 다르다니까요! 굉장히 계획적이고 세밀하게 만들어진 장인의 영역이 있다고요. 류성희 미술감독님의!

박찬욱 그냥 추하지 않게만 한 거예요.

김태리 잘 지어진 집처럼 모든 것이 픽션 아래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계속해서 나오는 태양 빛은 픽션 너머 존재하는 것일까 생각됐어요.

박찬욱 운명의 어떤 가혹한 힘? 신이라고까지는 말하고 싶지는 않고 만약에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태양이 그런 걸 상징하죠.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죠. 자본주의사회라는 시스템도 거역하기 힘들죠. 피하기도 어렵고 도망갈 수 없는 힘의 가혹함, 강력함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만수 집 체납 경고장을 받을 때 강한 역광을 받죠. 그런 잔인한 힘이에요. 은행의 힘이죠. 나중에는 아들 시원(김우승) 이 만수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며 햇빛을 가려줘요. 그때가 만수 입장에서는 전환점이죠. 자기가 나쁜 짓을 하고 있는데 죄책감도 강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어요. 두번의 살인에 성공하고 나서 다시 남자가 된 것 같고 가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들에게 거짓으로 증언하라고 강요하죠. 그게 교육적으로 나쁘다는 생각도 못한 채로 일단 애를 감옥 가게는 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그것이 성공한 것에 대해 되게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아내도 왠지 잘 해결한 남편을 보면서 다시 신뢰를 회복한 것 같아요. 그렇게 이 가정이 다시 잘 뭉쳐지고 있지만, 실은 만수의 범죄, 아들에게 강요한 거짓증언 같은 비교육적인 것에 기초한 화목한 가정이란 거죠. 어쨌든 그 순간이 만수에게 제일 행복한 순간이에요. 아들이 햇빛을 가려주고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고, 만수도 아들에게 담배를 주고. 만수가 아버지 노릇하느라 아들에게 담배를 돌려주면서 아들이 지붕에 올라가서 만수의 비밀을 내려다보게 된 거 아니에요.

김태리 그래서 행운에 관해 생각해보게 돼요. 영화가 만수에게 행운을 줬다가 뺏었다가 줬다가 뺏었다가 계속 그러는 거예요. (웃음) 이 남자가 운이 좋은 사람인지 운이 나쁜 사람인지 종국에는 모르게 만드는 거죠.

박찬욱 작게 보면 운이 좋아서 풀려나가겠지만 크게 봤을 때는 결과가 인간성은 망가졌고 이 가족도 회복되기 힘들 만큼 파괴됐죠.

김태리 감독님이 이 작업에서 제일 중요시한 게 거리감 같더라고요. 만수는 눈앞에 술을 두고도 사과주스를 시켜먹을 만큼 정신력이 어마어마해요.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들게 금주를 해왔는지를 꽤 길게 보여준단 말이죠.

박찬욱 아무도 안 보는데도 사과주스를 마시죠. 얼음 넣어서 위스키 기분 내고 있기는 해요. (웃음)

김태리 술을 자제하는 행동 자체가 안쓰러운 한편 언젠간 술을 먹겠지 하는 생각이 들고, 결국 만수가 술을 먹을 때 해방감이 있어요. 음주 이후 행동들에 대해 안쓰럽고요. 그러나 결괏값을 보면 또 끔찍해요.

박찬욱 엎치락뒤치락하죠, 계속 끝없이. 만수가 술을 멀리하는 노력은 계속 성공했어요. 아무도 안 보는 술집에 가서도 안 마시니까요. 마지막에 선출이 주는 술은 만수가 임무를 성취하려면 마실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자신도 합리화해요. 만수는 내심 좋죠. 부끄럽지 않게 마신다는 쾌감도 있죠.

김태리 저는 한편의 이야기를 몰입해서 본 것 같은데 몇몇 관객들은 이 인물의 정당성이 충분치 않아서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나왔다고 해요. 여러 인터뷰를 통해 감독님은 오히려 그게 목적이었다고 말씀하시고요.

김태리 저는 한편의 이야기를 몰입해서 본 것 같은데 몇몇 관객들은 이 인물의 정당성이 충분치 않아서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나왔다고 해요. 여러 인터뷰를 통해 감독님은 오히려 그게 목적이었다고 말씀하시고요.박찬욱 내가 이 영화에서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어떤 사람에겐 제일 싫은 요소일 때가 많더라고요. 관객도 그렇지만, 투자사나 미국 스튜디오와 대화해보면 시나리오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고,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빼라고 할 때도 있어요. 어쩜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럴 만한 것도 같아요. 연출자는 용감하고 새로워서 좋지만 새로운 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적응이 안되는 관객도 있을 수 있는 거죠. 예를 들어 모든 관객이 ‘그래, 저런 상황이라면 나라도 뭐든지 하겠어’라고 생각할 만큼 만수를 궁지로 몰아넣는 상황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에요. 딸이 너무 아파서 장기이식이 필요하다거나, 빚이 많아 당장 은행에서 빨간 딱지 붙이러 오고 쫓겨날 형편이라거나. 그런 방식으로도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지만 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계속 관객으로 하여금 의심하고 질문하게 하고 싶었어요. ‘왜 저러나, 꼭 저렇게밖에 못하나? 반드시? 진짜 어쩔 수가 없나?’라고 질문하게끔 하고 싶었어요. 이병헌 배우가 워낙 호소력 있게 연기하니까 순간순간 넘어가잖아요. 다만 카메라와의 거리, 편집의 타이밍은 호소력이 넘쳐나지 않도록 했어요.

“<어쩔수가없다>에는 진정한 사랑들이 넘쳐나요”

김태리 <어쩔수가없다>에 ‘트루 러브’가 많아요. 삐뚤어지지 않은 진정한 사랑들이 엄청나게 넘쳐나요. 일단 반려견 시투, 리투를 향한 아이들의 사랑은 너무 ‘찐사랑’이죠. 만수를 알코올중독에서 재기시키고 계속해서 응원하고 이 가정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미리의 사랑, 아무리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영상통화를 받는 만수의 사랑, 범모와 아라는 말할 것도 없이 너무 사랑하죠.

박찬욱 나도 그게 웃겨요. 만수가 어떤 상황에서도 전화는 받아요.

김태리 장르적 측면에서는 미리의 타락을 기대하게 되는 바가 있어요. 영화를 보는 동안 저 여자 뭔가 있겠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영화는 미리가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고, 선을 넘지 않는다 설득하잖아요. 물론 미리가 여성성을 무기로 사용하고, 오진호(유연석)씨의 호감을 분명히 사용하고 있지만 굉장히 단단한 사람이라는 걸 계속 보여준단 말이죠. 엔딩에 이르면 미리만의 ‘선택 버튼’이 눌리지 않았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관객으로서 눈앞에서 미리가 버튼을 누르는 순간을 보고 싶지 않을까 생각되더라고요.

박찬욱 너무 분명하게 하면 여운이 남지 않을 것 같아서 양쪽에 다 단서들을 만들어놓고 관객 취향에 따라서 선택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미리가 집을 팔지 않겠다며 “사과나무를 심었는데 어떻게 파냐?”라고 말해요. 같은 대사를 두고 정성껏 가꾼 우리 집과 우리 가정을 깨지 않겠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 집주인이 우연히 사과나무를 팠는데 시체가 나오면 어떡하나, 그래서 못 판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어요.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단서들이 여기저기 있어요. 나는 그게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김태리 두 선택을 동등하게 놓고 보기에는 마지막에 리원이(최소율)가 하는 연주가 미리를 이 집에 붙여놓는 순간이지 않았을까요. 만수도 애타게 듣고 싶은 연주를 리원이가 마지막에 보여주잖아요.

박찬욱 리원이가 아빠 출근 다음에야 연주하죠. 다른 식구들에게는 첼로 실력을 공개했는데 아빠만 연주를 못 들었으니까 가족에서 쫓겨나다시피 배제된 만수라고 해석할 수도 있어요. 편집에서 빠진 장면이 있는데, 만수가 첫 출근을 하고 리원이가 첼로를 연주하기 전에 미리가 아들 시원이를 온실로 끌고 와서 “지금 떠난 저 남자, 사실 네 아빠가 아니다”라고 얘기해요. “만수씨가 너를 정말 예뻐해주기는 했지만”라면서요.

김태리 미리의 선택 버튼일 수 있는 장면이네요.

박찬욱 미리와 만수가 함께 시원이의 ‘출생의 비밀’을 같이 얘기하기로 했잖아요. 그런데 미리 혼자 알려주고 만수와 결별하고 독립을 준비하는 장면이죠. 처음 시나리오를 보여줬을 때 예진씨하고 병헌씨가 기겁하더라고요. ‘방금 떠난 저 남자’라는 표현이 너무 차갑고 너무 비정하다고. 우겨서 찍었지만 결국 편집 단계에서 뺏어요. 한 방향으로만 결론을 내린 것 같아서요.

김태리 감독님 동업자들이 많으시잖아요. 감독님은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시잖아요. 이번 작업에서 가장 즐거웠던 작업 파트가 있을까요?

박찬욱 영화 만드는 과정을 다 좋아해요. 시나리오부터 색보정까지 다 즐겨요. 우선 김우형 촬영감독과는 <리틀 드러머 걸>이란 시리즈를 함께했지만, 처음 만난 건 바로 이 작품을 찍기 위해서였거든요. 제목이 <도끼>였던 시절에 만나서 같이 헌팅도 다 했죠.

김태리 거기까지 갔었어요?

박찬욱 스토리보드도 다 했지만 필요한 예산이 모이지 않았어요. 김우형 촬영감독과 오랜 시간 기울인 노력이 헛수고가 됐다가 마침내 만들어지니까 일단 뿌듯했어요. 그리고 필름 촬영을 늘 하고 싶었는데 한국엔 필름현상소가 없어서 불가능하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현상소가 하나 생겼어요. 드디어 필름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겠다 싶어 필름으로 테스트했어요. 조명 작업을 한 다음 디지털카메라와 필름 카메라로 촬영해 현상해서 비교해봤어요. 역시 필름이 좋더라고요. 하지만 현상소에 사정이 생겨서 디지털카메라로 작업했어요. 그렇게 비교하니까 필름 룩이라는 게 뭔지 정확히 알게 됐죠. 남의 영화를 보면 정확히 알 수가 없거든요. 필름 작업으로 얻은 데이터를 기초로 해서 <어쩔수가없다>의 색보정을 했고, 필름 룩을 구현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했는데 흡족하게 완성한 것 같아요.

김태리 제가 준비한 인터뷰 끝났고요. 감독님, 즐거우셨어요?

박찬욱 준비 많이 했네요!

김태리 관객들이 이런 사운드를 꼭 들으셔야 하고, 감독님 말씀하신 ‘필름 때깔’을 확인하셔야 해요. 그래서 영화관에서 꼭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독님께서 마지막 말씀하고 끝날까요?

박찬욱 영화는 한번만 보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다 알고 보셔도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웃음)

김태리 배우가 관객을 대신하여 ‘화분의 의미’를 묻다

- 만수가 옥상에서 던지려고 했던 화분을 집으로 가져온 이유는 라이벌들을 죽이겠다는 의지였나. 화분을 들어 올렸을 때 물이 줄줄 새던 그 모습은 트레일러와 스틸로 쓰일 만큼 <어쩔수가없다>의 첫 이미지이기도 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처음엔 드는 게 아니었어요. 발밑에 화분이 한줄로 놓여 있어 만수가 발로 건드려보는 거였어요. 화분을 밀까 말까 발을 까딱까딱하는 게 병헌 배우의 아이디어였는데 편집됐죠. 그런 다음 화분 하나를 들어보고 더 큰 걸 들어보는 거예요. 그럼 관객이 궁금할 거 아니에요. 저거 언제 던지나, 던지기는 할까. 그때 물이 얼굴로 쫄쫄쫄쫄 흐르는 거죠. 만수의 눈물 같기도 하고, 처량하고 한심스럽게 보이잖아요. 만수를 가련하게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만수가 돈을 주고 화분을 사온 건 다짐이자 의지의 표현이에요. 화분을 보면서 마음이 약해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기 위해서요. 그렇게 고추가 심어진 화분을 보고 레드페퍼 페이퍼란 유령회사의 이름도 짓죠.”

김태리 배우가 관객을 대신하여 ‘리원이의 예언자적 면모’를 묻다

- 리원이가 악보를 점자처럼 그린 이유는 무엇인가. 시투, 리투의 집에서 눈물을 흘릴 때 리원이는 아빠의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리원이는 타인의 말을 따라 하는 앵무새 같지만 사실을 다 아는 듯한 예언자 같이 느껴졌다.

“실제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소녀 첼리스트가 있는데 그 친구가 악보를 그렇게 그려요. 알록달록한 점을 찍어서 색깔과 모양으로 한번 들은 음악을 악보화하고 그걸 보면서 연주도 할 수 있대요. 우리가 보기엔 추상화 같고, 어린 친구가 예쁘게 그린 그림 같은데, 베토벤의 교향곡 9번 악보더라고요. 그 악보를 영화 속에 여기저기 사용했어요. 시투, 리투하고 리원이는 같은 우비를 입고 있는데 우비에 인쇄된 패턴도 악보 이미지예요. 선생님 말씀으론 재능이 뛰어나다는데, 맨날 피치카토만 통통 튕기고 그림만 그리니 ‘쟤가 뭘 하나, 할 줄 알겠나’ 생각하던 관객이 성숙한 연주를 하는 첼리스트로 리원이를 재인식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이가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 같지만 잘 음미해보면 비범하게 다 알고 있는 듯 보이도록 구상했어요. 예언자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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