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떡볶이를 먹던 중 어쩌다가 근처 비디오숍을 찾는 호주인과 독일인의 가이드가 되고 말았다. 외국인과 함께 들어선 나를 보자 아저씨는 경계하는 빛이 역력했다. 하긴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불량 고객의 도움을 얻어 회원등록을 하려는 중이었으니….
간신히 등록을 마친 뒤에 호주 사람이 <더 홀>을 선택했으나 처음부터 한국영화를 무척이나 보고 싶어했던 독일인은 결국 카운터에서 너무도 당당하게 나에게 요구했다. “한국영화가 꼭 보고 싶은데 한국어도 못하고 자막처리된 것도 없다고 하니, 그럼 한국 에로영화라도 추천해보시오!”라고. 나는 그 민망한 내용을 아저씨께 꽤 정직하게 통역하는 수밖에 없었다. 황망한 표정을 지으신 아저씨는 곧 에로코너 앞에 서 계셨다. 얼떨결에 아저씨 옆에 선 내 눈에 들어차는 건, 외국인은 영원토록 이해할 수 없을 요상하고 희한한 뉘앙스의 제목들뿐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아저씨가 결정한 건… <뽕3>였다- 탁월한 선택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아저씨는 전화해서 ‘비.디.오’라고 외치면 반납 독촉인 줄 알라는 주의를 단단히 주신 뒤에도 여전히 불안한 눈빛이셨다.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어제도 <뽕3>는 여전히 대여중 표시와 함께 거꾸로 세워져 있다. 제발 다른 사람이 빌려간 것이기를…. 아저씨나 나나 침묵을 지키고는 있지만 나를 쳐다보는 아저씨의 수상하다는 눈빛은 정말 감당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란 말이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thumbnail@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