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의 마틴 크렙스(루퍼트 프렌드)는 거대 제약회사의 대표로, “의료 역사상 최고의 쾌거”를 이루려 한다. 획기적인 심장병 치료제를 개발하려면 인간의 접근이 철저히 금지된 공룡들의 터전인 생 위베르 섬에 들어가 공룡의 DNA를 채취해야 한다. 고난도 미션을 성공시키기 위해 마틴은 특수임무 요원 조라(스칼릿 조핸슨)와 고생물학자 헨리 박사(조너선 베일리)에게 접근한다. 루퍼트 프렌드는 영화 <오만과 편견>과 미국 드라마 <홈랜드>를 본 이들에게는 익숙한 얼굴이다. 속내가 읽히지 않는 그의 무표정은 이번 작품 속 복합적인 악역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7월2일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의 개봉을 맞아 개러스 에드워즈 감독과 주요 배우들이 방한했고, 루퍼트 프렌드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 초반 마틴처럼 젠틀하게 이야기를 시작한 그는 중반 무렵 주머니에서 ‘루퍼트 프렌드’라고 쓴 한국어 배지를 꺼내 보이며 웃었다. 팬이 선물해준 것이라며, 가슴에 배지를 달고 영화에 대한 애정을 천진하게 풀어나갔다.
-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이 극장에서 본 첫 영화였고,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처럼 되고 싶다는 꿈이 배우의 길로 이끌었다고. 그만큼 스필버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와도 같은 이번 영화의 출연이 각별했을 듯하다.
= 물론이다. 우선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은 내게 아주 중요한 영화다. 어릴 적 영국의 조용하고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그래서 늘 평범한 일상에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왔는데 이 작품이 상상했던 모든 걸 충족시켜주었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에서 공룡의 혈액 샘플을 구하는 여정이 인디아나 존스가 성배를 좇는 모험처럼 느껴져 정말 짜릿했다. 동료들과 함께 태국, 몰타, 런던, 뉴욕 등 세계 곳곳을 돌며 보낸 시간도 또 하나의 흥미진진한 모험이었다. 마틴 역에 캐스팅되던 순간도 생생히 기억한다. 뉴욕 집에서 쉬고 있던 어느 늦은 밤,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스칼릿 조핸슨과 함께 새 <쥬라기 월드> 영화에 출연하는 건 어때요?”라는 제안이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곁에 있던 사람과 샴페인을 터뜨리며 기쁨을 나누는 것이었다.
- 마틴은 심장병 치료제를 개발하겠다는 의지만 보면 인류애가 넘치는 것 같지만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만큼 냉혹하다. 다면적인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했나.
= 돈에 관심이 있는 사람 중에는 자신이 하는 일을 정당화할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마틴도 그런 인물이라고 봤다. 마틴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고귀한 명분을 내세우는데 그것이 정말 그의 진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돈을 좇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수적인 명분일지를 계속 고민했다. 신약 개발을 두고 팀원들의 입장은 뚜렷이 갈린다. 비즈니스맨인 마틴은 “돈도 벌고, 사람도 도울 수 있는 일”라고 말하지만 헨리 박사는 “이건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역할을 떠나 개인적으로는 헨리의 의견에 더 마음이 간다.
- 개러스 에드워즈 감독과는 어떤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나.
= 어드벤처물 속 정글에서 깨끗한 흰색 슈트를 입고 활보하는 인물에 늘 매력을 느껴왔다. 미국에서는 이런 사람을 ‘a fish out of water’라고 부르는데, 본래와 잘 어울리지 않는 곳에 놓인 사람을 뜻하는 표현이다. 마틴의 외적 이미지도 여기서 출발했다. 그는 과거 준군사 조직에서 일하는 동안 산전수전을 겪었고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초반 세팅에 관한 얘기를 감독님과 많이 나눴다. 논의 끝에 마틴은 뉴욕에서 아르마니 정장을 차려입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천달러짜리 와인을 시키는 사람인 동시에 정글에서는 작은 플라스크 물병 하나로도 생존할 수 있는 인물이 됐다.
- 마틴은 모험영화 초반, 팀을 꾸리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인물이다. 조라는 도심 한복판에서, 헨리는 박물관에서 팀 합류를 설득한다. 각각의 촬영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나.
= 두 시퀀스를 찍은 뉴욕과 런던 모두 내가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라 의미가 깊었다. 무엇보다 이 신들이 중요했던 이유는 조라와 헨리, 이 훌륭한 캐릭터들을 관객에게 처음 소개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스칼릿과는 원래 친한 사이라 마틴과 조라의 관계에서도 자연스러운 케미를 살리고 싶었다. 진지하게 거래하는 상황이지만 서로 웃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다. 조너선과의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마틴은 애초에 팀만 꾸리면 된다고 생각했다가 직접 섬에도 가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는데 그 당혹스러움을 표현하는 연기가 재밌었다. 이런 유머의 결이야말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스필버그 영화의 전통이기도 하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만 봐도 주인공이 위기 상황에서도 모자를 먼저 챙기는 위트가 있지 않나. 우리 영화에서도 이런 여유가 흘러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매 신에 임했다.
- 추후 합류하는 팀원 던컨(마허셜라 알리)의 선박이자 팀의 수중 베이스캠프와도 같은 에섹스호는 야외 수조에 설치된 세트였다고. 여기서 모사사우루스의 DNA를 채취하는 첫 번째 미션이 치러진다.
= 지금 다시 생각해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에섹스는 사실 여러 공간에서 찍었다. 우선 언급한 세트. 이곳은 정확히 말하자면 물이 없는 상태에서 짐볼 위에 올려진 움직이는 세트였다. 여기에 실제 바다에 떠 있는 배 한척과 런던의 그린스크린 스튜디오, 선박 내부를 따로 만든 세트까지 총 4곳이었다. 찍는 동안 어떻게 합쳐질지 무척 궁금했는데 나중에 결과물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하고 연신 감탄했다. 완벽히 하나의 통일된 시공간처럼 보이더라. 감독님이 어떤 마법을 부린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웃음)
- 타이타노사우루스가 스크린에 처음 등장했을 때, 내가 있던 상영관이 놀라움에 잠시 고요해졌다. 실제 공룡이 없는 현장에서는 어떻게 몰입했나. 타이타노사우루스를 처음 본 마틴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 거라고 짐작하며 연기했는지도 궁금하다.
= 이번 촬영을 통해 상상력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달았다. 빌딩만 한 고대 생명체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누구라도 경외심을 느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돈에 대한 집념으로 이 여정에 동참한 마틴조차도 말이다. 조너선의 연기가 감정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평생 공룡을 동경해온 헨리 박사가 타이타노사우루스의 다리를 처음 만지는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는데 감동적이었다. 이 순간 헨리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마틴의 감정도 더 깊이 표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