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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택-유오성의 <챔피언>에 묻고 싶은 여섯 가지 것들(2)
2002-06-21

친구야, 나 이제 지옥의 링에 오른다

드디어! 꼬마 유오성,

찾았습니다

<챔피언>의 배우는 과연 누구인가. 유오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무명이다. 그들은 과연 <친구>의 조연들을 능가할 것인가.

체육관 동료부터 아역까지 거의 대부분이 오디션을 통해 출연하게 되었다. 곽경택 감독은 오디션을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인데, 전쟁 나가기 전에 병사들의 능력을 꼼꼼히 체크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상업적으로 실패한 감독의 오디션엔 비중있는 조연들이 아예 참여를 안 하는 경우가 많고 오더라도 요구사항을 안 하려는 경우도 많다. <친구> 오디션할 때만 해도 <억수탕> <닥터K> 이후 작품이니까 오기로 했던 배우들이 많이 불참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재미있는 조연들이 많다. 김득구가 체육관 들어가기 전에는 버스 돌면서 관상책과 가정의례준칙보감을 붙여서 100원에 파는 보따리장수를 했다. 그때 터미널에서 김득구를 괴롭히던 단발머리 양아치 삼총사가 있다. 나중엔 똥바가지를 뒤집어쓰기도 하지만. 이 사람들은 모두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었는데 실제로 단발머리 가발을 씌워본 끝에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보기엔 양아치지만 그중 2명은 술, 담배도 안 하는 정말 순진한 사람들이다. 주먹은 세지만 한글도 못 써서 삐뚤빼뚤 겨우 써내려가는 박종팔 역의 김병서는 원래 충청도 사람인데 전라도 사투리를 써야 했고 질퍽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황준석 역을 한 지대환이란 친구는 부산 출신이다.

경미 역은 마지막까지 두명을 놓고 누굴 선택할까 제작진을 고민에 빠뜨리게 했다. 결국 이번 영화가 데뷔작인 신선한 인물이란 점에서 채민서가 점수를 더 얻었다. 게다가 실제 영화장면에는 안 나오지만 유오성과 겨넣은 까실까실한 베개에 턱을 괴고 이부자리에 나란히 누워 있는 투숏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았다. 옆에 실물 모형을 세워보기도 하고. 실제 경미 나이가 22살 어린 나이였는데 그런 풋풋함이 채민서와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김현치 관장 역은 유오성의 카리스마를 눌러줄 강하면서 큰 이미지를 원했다. 감독은 <노다지>로 유명했던 배우 윤승원을 생각해냈고 캐스팅이 확정되자 생전 써본 적 없는 부산사투리를 연습해야 했다. 무술감독인 정두홍이 맡은 이상봉 역시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 정두홍 감독만큼 강한 이미지를 찾기 어려웠고 그간 유오성의 트레이닝을 책임지면서 실제 이상봉과 저의 관계처럼 두 사람이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던 것이 큰 이유였다.

한눈에도 유오성!이라고 생각할 만큼 유오성의 외양을 쏙 빼닮은 아역을 찾기 위해선 연출부들이 2천여명 이상의 아이들을 보고 다녀야 했다. 게다가 이마에 ‘나 아역배우’라고 써 있는 아이를 피해다닌다는 것을 목표로 강원도 이곳저곳을 적합한 아이를 찾아 헤맸다. 학교강당에 아이들 쭉 세워놓고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조감독이 “드디여! 찾았습니다”며 한 아이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곽 감독에게 들이밀었고 결국 촬영들어가기 3일 전에 캐스팅을 끝낼 수 있었다.

어머니 양선녀 역의 김상분 할머니를 만난 사연도 기막히다. 하루는 곽 감독이 TV를 보다가 모란시장에 일품팔러 쭉 줄서 있는 할머니들을 봤다. 그러다 문득 “저 나이에 매일 아침 시장에 나와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있는 할머니라면 연기도 할 수 있을 거다”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다음날 모란시장에서 실제 김득구의 모친과 많이 닮은 할머니를 만날 수가 있었다. 의외로 그 분은 자식농사도 잘 지으신 분인데 돈이 없어서 일품을 파는 게 아니라 평생 일하던 사람이라 몸이 근질거려서 못 견디는 그런 분이었다. 보기엔 힘없는 할머니 같지만 미국 촬영 때는 고스톱으로 스탭들 주머니를 홀라당 털어가셨을 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다.

경미 외에는 누구도

울지 말아라

김득구의 죽음 이후가 어떻게 처리되었나. 당시 언론은 거대한 신파를 만들었다. 그것과 어떻게 대결했나.

일단 김득구가 14라운드에서 KO당하고 난 뒤 상황을 보여주지 않겠다는게 곽 감독의 가장 큰 결정이었다. 하지만 처음엔 욕심을 많이 부렸다. 초고에는 김득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말하자면 어머니도 김현치 관장도 경미도 모두들 대성통곡을 했다. 물론 그들 모두 마음으로 그 이상이었다는 것을 의심하진 않지만 영화도 똑같이 갈수는 없는 일이다. 그때 곽 감독은 중학교 때 교회에서 “떠돌이 회개는 하지마라”던 목사님 말씀이 생각이 났다고 한다. 말하자면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다 찾아다니면서 회개하는 건 지저분한 회개라는 것이다. 그런 죄들이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준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김득구의 죽음 역시 그렇지 않게 처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모든 슬픔을 터트리는 역할은 경미에게로 몰아주기로 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모인 전자대리점에서 뉴스에서 절망적인 소식을 접한 경미가 돌아서서 아기처럼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은 단 4번 만에 OK사인이 났다. 아마 혼자서 단단히 연습을 한 모양이었다. 처음엔 눈물이 나기까지 30분 정도 소요되었다는데 점점 그 시간이 짧아졌다. 배우는 자신의 몸을 악기화시켜야 한다는 말처럼. 어쨌든 경미 외에 누구도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각자의 드라마 속 포지션에 따라 슬픔을 표시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 감독의 생각이었다. 대신 관장에겐 삼키는 울음을 어머니에겐 멍한 표정만을 허락했다.

<친구>같은

흥행, 기대할 수 있을까?

곽경택 감독은 <챔피언>을 통해서 뭘 이루려 하나. <친구>에 버금가는 성공인가. 아니면 못다이룬 작가적 욕망인가.

김광민전을 앞둔 트레이닝 몽타주에서 흘러나오던 국악느낌의 음악 <간다>는 god가 불렀다. 그 노래를 만들기 위해 영화를 미리 본 박진영이 이렇게 말했다. “감독님, 저는 이 영화가 너무 어려울까봐 걱정했어요.” 보통 가수들은 음반이 하나 히트하면 ‘이제 내 색깔을 보여주고 싶다’며 무게를 잡는다거나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트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대부분 결과가 안 좋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곽 감독은 이게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겠다는 희한한 표정을 지었다. 곽 감독은 자고로 영화란 자기가 보기에 재미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기설득파’다. 물론 그 역시 언젠가 대중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때가 올 테지만 지금은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한다. 물론 갑자기 40대에 “마르크스에 미치는 일이나 광주에 관련된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솟구친다면 그럴 수도 있는 거”라면서.

<챔피언>은 과연 <친구>의 흥행을 따라잡을 것인가.

“물론 많은 이들 보는 것이 반갑지만 정말 볼 사람들만이라도 꼭 보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유오성) “면피는 했으면 좋겠고 진인사필름 차리느라 진 빚을 갚으면 더 좋겠고 흥행이 되면 정말 기쁘겠다”(곽경택)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프랑스도 아르헨티나도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하는 마당에…. 다만 극장주들은 6월28일 개봉하는 <챔피언> 프린트를 잡기 위해 줄을 이미 길게 늘어서 있다고 한다. 글 백은하 lucie@hani.co.kr · 디자인 이윤진 yjklimt@hani.co.kr

사진설명

곽경택 감독, 홍경표 촬영감독, 배우 유오성은 그 어떤 현장보다 뛰어난 팀워크를 자랑한다.친구를 얻고, 사랑을 찾고, 지도자의 인정을 받은 인간 김득구가 마지막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은 바로 거울 속의 자기 자신이다."우리에게 최후까지 싸울 용기와 의지가 있노라..!!" - 김득구의 일기 중에서▶ 곽경택-유오성의 <챔피언>에 묻고 싶은 여섯 가지 것들(1)

▶ 곽경택-유오성의 <챔피언>에 묻고 싶은 여섯 가지 것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