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애니메이션 축제인 2002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6월3일부터 8일까지 6일간의 일정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6회를 맞이한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매년 초여름, 스위스와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프랑스 호반의 도시 안시에서 열리는 애니메이션영화제. 오타와, 자그레브, 히로시마 등 4대 애니메이션페스티벌 중에서도 으뜸가는 전통을 지닌 축제로, 세계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이다. 특히 올해의 안시는, 이성강 감독의 <마리이야기>가 장편 그랑프리를 수상함으로써 한국 애니메이션사에 한획을 그은 순간으로도 기억될 만하다. 67년 첫 장편애니메이션 <홍길동>이 나온 이래 35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학생·졸업작품 부문 매진행렬
이번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스크린을 수놓은 작품은 33개국에서 출품된 500여편. 그중 <마리이야기>를 포함한 장편 경쟁부문 출품작이 5편, 단편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이 모두 52편이다. 지난해 400여편에서 100편 가까이 늘어난 출품작의 대부분이 단편임을 감안하면 올해 안시의 두드러진 특징은 단편부문 작품들의 증가, 특히 학생·졸업작품 부문의 강세라 할 수 있다. 비경쟁인 단편 파노라마 부문은 물론 경쟁부문에도 학생들의 출품이 늘어나 실질적으로 단편부문과 학생·졸업작품 부문에서 학생들의 작품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안시페스티벌 조직위원회쪽도 행사 개최 이래 처음으로 상영관 중 가장 규모가 큰 봉리유센터의 메인 상영관에서 학생·졸업작품 부문을 상영했을 정도다.단편 경쟁부문에서는 가난한 집에서 병을 앓고 있는 한 소년과 개의 이야기를 사실적인 캐릭터와 정교한 퍼펫애니메이션 기법으로 그린 수지 템플턴의 <개>, 라이브 액션과 3D 컴퓨터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해 제작된 <홈 로드 무비스> 등 다양한 경향의 영국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대거 선을 보였다. 한 프레임씩 촬영하며 움직임을 연출하는 오브제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두 의자의 비밀스런 사랑을 코믹하게 표현한 미국의 <루프 섹스>, 사랑하는 여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눈물겨운 이벤트를 연출하는 한 남자와 이를 외면하는 여자의 이야기인 에스토니아의 <바이첸베르그 스트리트>, 인간의 무자비한 살상을 견디다 못한 집 벌레들의 탈출기를 담은 러시아의 등은 기발한 상상력과 위트로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 작품들. 하지만 올해 단편 경쟁에서는 지난해 그랑프리를 수상한 마이클 두독 드 비트의 <아빠와 딸>처럼 관객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작품이 없어서 시상식 당일까지도 어떤 작품이 그랑프리를 받을 것인지 가늠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주요 행사장인 봉리유센터 내 메인 상영관에서 열린 폐막식.아기자기한 친밀감을 주는 술집처럼 꾸며진 무대에서 이성강 감독은 장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올해 강세를 보인 학생·졸업작품 부문은 연일 매진 행진을 이어가면서 관객의 시선을 끌었는데, 전반적으로 학생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기법의 정밀함과 연출력을 선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단편 경쟁과 파노라마, 학생·졸업작품에 출품된 작품 중 한국 감독 임아론의 <엔젤>, 가상세계의 기관사들이 펼치는 레이싱을 빠른 템포의 연출과 깔끔한 3D그래픽으로 처리한 일본 감독 사토시 도미오카의 <저스티스 러너스> 등 아시아권의 3D 컴퓨터애니메이션이 두드러졌다는 평을 받았다.
장편 경쟁부문에서는 이성강 감독의 <마리이야기>와 일본 감독 린 타로의 <메트로폴리스>, 룩셈부르크 감독 티에르 쉬엘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5편이 경합을 벌였다. 99년 <덤불속의 재>로 국내 작가로는 처음 안시의 단편 경쟁부문 본선에 진출한 이성강 감독은 3년 만에 첫 장편 <마리이야기>와 함께 다시 안시를 찾았다. 행사 첫날인 6월3일부터 공식 상영을 가진 <마리이야기>는 각국의 기자단과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조심스레 수상을 기대하게 했다. 재미있는 점은, 국내에서와는 달리 이미지와 전체적인 아트워크가 좋기도 하지만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스토리가 너무도 감동적이었다는 평이 많았다는 것이다. 5일 이성강 감독이 참석한 가운데 봉리유의 메인 상영관에서는 상영이 끝난 뒤 관객의 박수가 끊이지 않았으며, 눈물을 보이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린 타로가 연출한 <메트로폴리스>가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이긴 했지만, 안시의 심사위원단은 규모가 큰 일본의 대작 SF 대신 서정적인 내용의 <마리이야기>에 트로피를 안겨줬다. 폐막식에서 시상식 무대에 오른 이성강 감독은, “평안한 휴양도시인 안시에서 1주일간의 휴가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이렇게 그랑프리까지 받게 되어서 기쁘다”고 수상소감을 밝혔고, 함께 작업한 제작진에 공을 돌렸다.
단편 경쟁부문 - 에이드리언 로크만 감독의 <바코드>
가장 예측하기 힘들었던 단편 경쟁부문의 그랑프리는 네덜란드의 3D 컴퓨터애니메이션 에이드리언 로크만 감독의 <바코드>에 돌아갔다. 3D로 그려진 바?들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바코드>의 실험적인 영상은 주목할 만하나, 지루하다는 평도 적지 않았던 터라 시상식 이후 수상작 상영에서 관객에게 박수와 함께 야유를 받기도 했다. 그 외에 단편 데뷔작에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인기를 끌었던 <루프 섹스>, TV부문에서는 영국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의 대가 배리 퍼브스의 TV스페셜 <해밀턴 매트리스>가 수상했으며, TV시리즈 부문에서는 미국의 <사무라이 잭-에피소드7>, 파일럿 부문에서는 영국의 <요코! 야카모토! 토토!>가 수상했다. 주목받았던 학생·졸업작품 부문에서는 높은 산에 살고 있는 두 바위가 체험하는 세상의 모습을 스톱모션 기법으로 촬영한 독일의 <바위들>이 최고상을, 프랑스의 와 가 각각 심사위원 특별상과 주목할 만한 작품상을 수상해 학생부문에서 프랑스의 강세를 과시했다.
왼쪽부터 <개>, <부카슈키>, <바코드>
경쟁부문을 비롯한 공식 프로그램에서 최근 애니메이션의 경향을 짚어볼 수 있다면, 스페셜 프로그램에서는 지나온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올해는 안시페스티벌의 아트디렉터인 세르주 브롬베르그와 지난해 장편 그랑프리를 차지한 빌 플림턴 감독 등 6인의 프로그래머가 ‘웃음’을 소재로 선정한 작품들과 세계적인 작가 이리 트른카 감독의 작품을 중심으로 구체코슬로바키아의 애니메이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주옥같은 작품 11편이 마련됐다. 그 외에도 미국 20세기 폭스의 새로운 장편 <아이스 에이지>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최근작들이 상영돼 관객으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 2002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참관기(1)
▶ 2002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참관기(2)
▶ 이성강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