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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회사들의 가격인하 경쟁
2002-06-20

그들이 피눈물 흘리면 게이머는 즐겁다

비디오 게임기 시장 초창기에는 이렇다 할 가격경쟁이라는 게 없었다. 아타리가 지배하던 70년대에는 고가정책이 대세였다. 게임기 가격이 대락 3만엔 수준이었으니 당시 물가를 고려하면 엄청난 가격이다. 이 시절에 종지부를 찍은 게 닌텐도다. 83년 닌텐도는 1만4천엔이라는 놀라운 가격의 게임기 <패미컴>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패미컴>의 새로운 정책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패미컴>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게임기는 순식간에 몰락했고, 닌텐도는 이후 10년 이상 지속될 닌텐도 왕국의 초석을 수립했다.

<패미컴>의 등장 이후 가격경쟁이 일반화됐다. 비디오 게임기 시장 가격경쟁 정책은 다른 동네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새로운 게임기 A가 처음 시장에 선을 보인다. 마케팅 포인트는 가격보다는 성능에 맞춰진다. 기존 게임기보다 한 차원 뛰어난 기능을 자랑하며 어느 정도 고가를 유지한다. 얼마 뒤 경쟁 제품 B가 등장한다. 당연히 A보다 기술적으로 앞서 있다. 소비자들은 B에 몰린다. 이때쯤 A는 가격을 내린다. 게임기 시장 가격인하 정책은 꽤나 화끈한 게 특징이다. 30% 정도의 가격인하를 한번에 단행한다. B 입장에서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역시 눈물의 가격인하가 이루어진다. A 입장에서는 그동안 비싸게 팔았으니 후회는 없다. 지금까지의 이익을 감가상각 처리해서 대당 비용을 절감하는 셈인 것이다. 게임기 시장에서는 역시 선도 진입이 유리하다. 반면 새로 진입한 게임기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게임기의 성공은 런칭에서 첫 번째 가격인하까지 얼마나 팔아치우느냐에 좌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쁘게도 <플레이스테이션2> <엑스 박스> <게임 큐브>의 차세대 게임기 시장이 가격경쟁에 돌입했다. 본격화된 건 5월에 열린 E3를 전후해서다. 처음 포문을 연 건 <엑스 박스>다. <플레이스테이션2>는 <엑스 박스> 출시에 맞춰 김빼기 작전을 하지 않았다. 소니의 여유있는 태도에는 근거가 있었다. <엑스 박스>는 놀라울 정도로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세계 최대 게임기 시장인 일본에서는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도 잘 팔리지 않아 마이크로소프트가 다른 곳에서 벌어들인 돈을 홀라당 까먹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견디지 못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벤트로 가격을 3/5 정도로 일시적으로 인하했다. 그러자 당장 판매량이 2.5배로 늘어났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결단을 내렸다. 막대한 개발비와 초기 마케팅 비용 때문에 현재 가격으로도 판매할 때마다 100달러는 손해보는 형편이지만, 당장 살아남기 위해 정가를 3만4800엔에서 2만4800엔으로 1만엔이나 내릴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소니가 뒤통수를 쳤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발표 며칠 전 <플레이스테이션> 가격을 지금의 299달러에서 199달러로 100달러나 내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원래 저가를 내세웠던 닌텐도의 <게임 큐브> 역시 199달러에서 150달러로 가격인하에 동참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선 단단히 김이 새버린 셈이다. 그래서 지금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 박스>는 299달러에서 199달러로,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플레이스테이션2>는 299달러에서 199달러로, 닌텐도의 <게임 큐브>는 199달러에서 150달러로 본격적인 가격인하 경쟁체제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모두 남의 나라 이야기다. 아직 정식 발매가 이루어지지 않은 <엑스 박스>와 <게임 큐브>는 어찌될지 모르지만, 이미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2>에 대해 SCEK는 가격인하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설마 한국만 고가를 유지하진 않을 터이고, 결단의 시기는 과연 언제?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a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