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시리즈는 외계 행성에서 살 수 있을 만큼 과학기술이 진보했지만 첨단 무기가 아니라 칼로 싸움을 하는 등 기본적인 비주얼이 고대에 가까운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10191년,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인 신성한 환각제 스파이스가 유일하게 생산되는 아라키스 행성을 두고 제국의 수많은 세력이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것이 주된 골자다. 그렇다고 <듄> 시리즈를 정통 SF보다는 고대 서사시적 장르로 보고 논하는 것은 SF의 범주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받아들이는 일이다. AI와 컴퓨터에 의존하기를 거부하고 완전히 몰아내는 데 성공한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듄> 시리즈는 생물학·생태학적 측면에서 일부 하드 SF로도 즐길 수 있는 아이디어를 자랑한다. 기계화된 미래를 거부한 대신 새로운 기계 신체가 등장한 은하계, 제국 전쟁의 원인이 된 스파이스 멜란지와 중세 유럽 향신료의 공통점, 거대한 모래벌레의 비주얼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듄>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과학기술은 대부분 천재 과학자 이브라힘 본 홀츠만에 의해 탄생했다. 그는 자신의 뇌를 컴퓨터에 옮겨 우주선에 탑재한 뒤 아주 먼 우주까지 여행한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기술과 지식을 인류에게 전파한다. 그중 하나가 시공간을 양성자 단위로 접어 성간 여행을 가능케 하는 기술, ‘홀츠만 드라이브’다. 이 때문에 은하간 전쟁이 발발해 인류 문명이 재통합되고 황제의 중앙집권 통치가 가능한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와 생각하는 기계, 의식을 가진 기계를 대상으로 한 러다이트운동, 이른바 ‘버틀레리안 지하드’가 일어나면서 세계관에 큰 격변이 발생했다. <오렌지 가톨릭 성경>에서는 “인간의 정신을 본뜬 기계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라고 한다. 그렇게 단순한 모터로 가동하는 몇몇 기계를 제외한 모든 인공지능의 사용이 금지된다. 이후 컴퓨터가 수행하던 일은 논리적 사고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인간 컴퓨터 ‘멘타트’가 대신 하게 된다. <듄> 세계관의 기계 신체는 넓게는 트랜스 휴먼 담론에서 논의될 수 있다. 그리고 초능력자 집단 베네 게세리트에 의해 만들어진 슈퍼 멘타트가 바로 ‘퀴사츠 해더락’이며, 그는 “동시에 여러 장소에 존재할 수 있고 예언의 능력을 갖춘 메시아”다. 드니 빌뇌브가 영화화한 <듄> 시리즈는 원작 가운데 폴 아트레이데스(티모테 샬라메)가 메시아로 추앙받게 되는 과정을 각색했다.
버틀레리안 지하드 이후에는 시공간이 접혔을 때 목적지와 가능한 경로를 컴퓨터로 계산할 수 없다. 그 대신 미래를 예상함으로써 어떻게 우주를 항해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예지력을 갖게 만드는 신비로운 물질 스파이스 멜란지다. 우주 항해 시 모든 경우의 수를 예상하며 안전한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성간 여행 시스템을 지배하면 막강한 권력을 누릴 수 있다. 스파이스를 지배하는 자가 곧 은하를 지배할 수 있다는 대사가 등장하는 이유다. 이 설정은 유럽 열강의 향신료 쟁탈전이 다항해시대 더 나아가 제국주의를 부추긴 역사와 닮았다.
예지력은 물론 신체 능력 향상과 수명 연장까지 가능케 하는 스파이스는 모래송어가 모래벌레, 즉 샤이 훌루드(프레멘들이 모래벌레를 신성하게 일컫는 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아라키스 행성의 모래에는 마치 바닷속 플랑크톤과 닮은 모래 플랑크톤이 있다. 스파이스를 먹는 작은 미생물이다. 모래 플랑크톤이 성장하면 모래벌레의 유충인 모래송어(프레멘들은 ‘작은 창조자’라고 일컫음)가 된다. 모래송어는 표면의 물을 인지하면 위로 올라와 자신의 수정낭(편형동물이나 곤충류의 암컷에 있는 생식기관의 하나) 안에 가두고 지하의 다공성 지층으로 내려가 물을 보관한다. 모래벌레가 물에 취약하기 때문에 그 유충인 모래송어가 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물을 없애는 모래송어의 습성 때문에 아라키스 행성이 사막화됐다. 그리고 모래송어는 체내에서 물을 천연 스파이스 덩어리로 변화시켜 배설한다. 천연 스파이스 덩어리가 모래송어의 유기물질과 물과 섞이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이것이 누적되어 임계치를 넘어서면 폭발한다. 그렇게 모래 밖으로 나온 천연 스파이스 덩어리가 태양과 공기 중에 노출되면 인간이 섭취할 수 있는 스파이스 멜란지가 된다.
천연 스파이스 덩어리가 폭발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모래송어가 생을 마감하고 다른 모래 플랑크톤의 먹이가 된다. 이때 일부 살아남은 모래송어는 일정량 이상 수분을 품은 동족과 결합해 여러 마리가 서로를 피막으로 둘러싼 군체를 형성(생체 결합)한 하나의 유기체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레벌레는 6년간 동면을 거친 후에도 천연 스파이스 덩어리와 물, 다른 동족의 공격을 피하며 생존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남은 모래벌레는 폭 40m에서 200m, 길이 400m에서 최대 2km에 이르는 거대한 샤이 훌루드가 된다. 사막에서 이 정도 몸집의 척추동물이 영화에서 보는 움직임을 보여준다는 설정은 현실성과 거리가 멀지만 적어도 <듄> 세계관 안에서는 내적 완결성을 갖고 있다. 내부 소화기관은 알데히드와 산으로 구성되어 스파이스의 계피 향의 원천인 시남알데하이드(C9H8O)가 되고 엄청난 양의 산소를 배출할 수 있다. 모레벌레는 모래 속 스파이스를 섞으며 모래 플랑크톤의 먹이가 될 수 있도록 하고 모래송어를 낳는다. 이같은 순환 구조를 통해 모레벌레는 대기 조성을 유지하고 스파이스를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라키스 행성에서는 모레벌레가 출몰해 말썽을 일으켜도 이들을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신성시한다.
<듄> 시리즈의 액션 시퀀스는 ‘홀츠만 방어막’의 존재를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주선, 건물, 병사 등에 사용 가능한 방어막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물체의 속도를 0으로 만들어 공격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엔 최소 속도 설정이 필요하다. 속도 0인 물체까지 차단한다면 아예 호흡이 불가능해지고 정지한 지면까지 투사체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초속 6~9cm의 물체는 홀츠만 방어막을 투과할 수 있다. 그래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아주 느리게 접근해야 한다. 영화가 총기가 아닌 근접전, 육탄전, 검술 액션을 선보이는 이유다. 전기진동을 발산하는 홀츠만 방어막의 특성이 위협을 가져오기도 한다. 샤이 훌루드는 모래의 일정한 진동으로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이 때문에 홀츠만 방어막이 그들을 미쳐 날뛰게 할 수 있다. 샤이 훌루드가 존재하는 곳에서 방어막을 쓰는 것은 오히려 이들을 유인하는 자폭 행위가 될 수 있다. 미생물에서 시작해 은하 단위로 확장되는 <듄>의 방대하고 기묘한 세계관은 본편만큼이나 별도의 설정집을 독파하는 행위를 즐겁게 만든다. 지금까지 설명한 아라키스 행성의 생태 규칙은 <듄의 메시아>를 기반으로 한다고 알려진 후속작에서 더욱 흥미롭게 전개될 전망이다. <듄: 파트3> 제작을 목 빠지게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