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hs of Glory 1957년, 감독 스탠리 큐브릭 출연 커크 더글러스<EBS> 6월22일(토) 밤 10시
스탠리 큐브릭은 전쟁에 관한 영화를 즐겨 만들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3)는 핵무기를 다루는 블랙코미디였고 <메탈 쟈켓>(1987)은 베트남전이 무대인 전쟁영화였다. 핵과 전쟁, 권력층을 비꼬는 유머감각은 큐브릭이 가진 장기 중 하나다. 하지만 전쟁에 대한 큐브릭의 태도를 집약해 보여주는 건, <영광의 길>이 먼저다. 여기서 커크 더글러스가 연기하는 닥스 대령은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마주한다. 군대의 명령권자들이 얼마나 부패한 집단인지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속 닥스 대령은 “애국심이란 건달들 최후의 피난처”라고 잘라 말한다. <영광의 길>에선 그 대사가 비현실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험프리 콥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군의 총사령관은 고지 탈환을 명한다. 사단장은 무모한 작전임을 알지만 부하들을 희생하기로 결정한다. 닥스 대령이 작전을 수행하다가 끔찍한 희생을 낳는다.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한 군인들은 공격하기를 거부하고 장군은 부하들이 있는 참호를 향해 발포할 것을 명령한다.
<영광의 길>은 이후 여러 전쟁영화에 영향을 주었다. 그중 한편은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될 터이다. 전투장면은 영화사의 명장면이다. 대령의 지휘하에 병사들은 참호에서 나와 진흙탕을 뚫고 적진으로 돌격한다. 포탄이 터지고 병사들은 하나둘씩 쓰러져 땅에 몸을 눕힌다. 중요한 건 카메라의 움직임이다. 군인들이 앞으로 달려나갈 때 카메라는 관찰자적 위치에서 그들의 행동을 말없이 기록한다. 치열한 전투장면에서 카메라는 보는 이의 감정이입을 한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잦은 기교, 불필요한 시점숏을 남용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교해보면 <영광의 길>은 고전적이고 매우 냉철한 영화다.
큐브릭 감독의 완벽주의자 기질은 전설이 된 지 오래다. <영광의 길>에서도 자로 잰 듯한 공간의 분석은 보는 이의 기를 질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영화 초반부 프랑스 장성들이 회의하는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회의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평이한 장면임에도 여기서 인물의 움직임, 그들 시선의 교환, 그리고 대화의 내용에 따라 미묘하게 변하는 표정변화까지 카메라는 빈틈없이 포착한다. 참호 속을 움직이는 트래킹숏은 영화 교과서에서 자주 인용되는 대목이다. 어느 영화학자는 <영광의 길>에 관해 “큐브릭은 카메라를 날카로운 무기처럼 다룰 줄 아는 감독”이라고 평했다. 반전의 주제와 인간의 위악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전쟁터의 숨가쁜 상황을 공간적으로 재배치하는 것까지 큐브릭 감독은 노련한 연출력을 과시한다. 그는 영화가 제작자들 간섭으로 훼손되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전쟁영화의 걸작이 될 것이라 말했는데,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