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데더러 지음 노지양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나는 의식 있는 소비자이자 바람직한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그와 동시에 예술이라는 세계의 시민이고 싶었고 교양 없는 속물의 반대편에 서고 싶었다.” <괴물들>은 이 고민을,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에서 시작한다. 폴란스키의 영화들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폴란스키 영화에서는 버려도 되는 장면들 또한 단단하게 빛난다.” 고민. 폴란스키는 <차이나타운>을 만들었고, 13살 서맨사 게일리에게 약물을 먹여 성폭행을 했다. 이 모순 사이에서 ‘나’를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사랑하던 남자 예술가들에게 실망하고 배신당하는 경험을 해온, <뉴욕타임스> <파리 리뷰> 등의 매체에서 영화평론가, 출판평론가로 활동해온 클레어 데더러는 괴물의 목록을 작성하는 대신 “관객의 자서전”을 쓰기로 했다. 여기에는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저간의 심리에 대한 언급도 있다. “그 문제의 인물이 아직 생존하고 있어 그 작품을 소비할 때 그가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면 지지를 보류하거나 철회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지갑으로 투표권 행사를 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를 무료 스트리밍으로 보면 어떨까? 혹시 친구 집에서 보면 괜찮은 걸까?”
이 문제는 단순할 수 없다. 그래서 클레어 데더러는 책 한권을 할애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답만 원할 뿐이지만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사례가 있어서(이 책에서 로만 폴란스키 다음은 우디 앨런이 언급되며 ‘자녀를 유기한 엄마들’이라는 항목에서는 도리스 레싱과 조니 미첼이 거론된다) 예술가의 삶이 그의 작품과, 나아가 팬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괴물 천재”의 작품을 고려할 때 우리 중 많은 사람은 “스스로 윤리적 사고를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도덕적 감정을 품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학으로만 판단해야” 한다고 훈수 두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런 상황에서 <맨해튼>(영화에서 42살의 남자가 17살 여자와 섹스하는)을 보자면 미학과 작가가 정말 분리 가능한지에 대한 회의가 뒤따른다. 이 복잡함을, 수용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초반부를 지나고 나면 <괴물들>이 하려는 이야기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감탄하며 읽게 된다. 3장의 ‘팬. J. K. 롤링’, 6장의 ‘안티 몬스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10장의 ‘자녀를 유기한 엄마들. 도리스 레싱, 조니 미첼’을 놓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