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감독상 수상작 <버림받은 영혼들>의 감독 로베르토 미네르비니는 2015년 <경계의 저편>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네필상을 받은 이후 9년 만에 다시 부산을 찾았다. <버림받은 영혼들>은 1862년 남북전쟁 중 국경지대에 파견된 보병부대를 리얼리즘적 시선으로 관찰하는 극영화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서부극의 보편적인 전형에서 벗어나 전쟁에 가려져있던 개인의 일상성과 미시적인 역사를 복원한 이 영화는 미국의 역사가 지나온 질곡의 시간들과 전쟁의 모순을 첨예하게 포착한다. 스스로를 정치적인 사람이라 정의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이탈리아 출신의 로베르토 미네르비니 감독의 목소리에선 날 것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 첫 픽션 영화를 연출하는 과정에서 겪은 변화가 있다면.
한마디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더 복합적으로 또 풍성하게 바뀌었다. 나는 내 영화가 실험적이라고 생각한다. 구조적인 측면과 의미를 함께 결합시켜 나가는 작업의 묘미는 이번 여정에서 얻은 아름다움이었다. 영화 중반부에 한번 등장하는 총격 시퀀스를 기점으로 나뉘는 전후의 장면들은 같은 방식으로 만들었지만 ‘총격이라는 사건’ 때문에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 늑대가 사슴의 사체를 뜯어먹는 오프닝 시퀀스와 살아남은 군인들이 하늘을 응시하며 내리는 눈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엔딩 시퀀스의 대비가 흥미로웠다.
엔딩 시퀀스는 나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약 15년 전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었다. 어느 날, 정말 오랜만에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모든 것이 조용해지는 동시에 눈앞의 풍경이 아름답게 보였었다. 야생 동물을 담아내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늑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혼자 카메라를 들고 촬영했다. 촬영 순서상 가장 마지막에 찍은 것이다.
- 이탈리아 태생이라는 이방인의 정체성이 바탕이 되어 미국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을 가지게 된 것인가.
나는 정치적인 사람이다. 이건 국적에 관계없이 견지해온 태도이다. 유럽의 제국주의를 비롯한 정치적 상황들에 주목해왔고 언제나 사고의 명확함을 찾으려 노력을 한다. 영화 중 “나는 선과 악, 천국과 지옥, 예수와 사탄을 믿지 않는다. 나는 옳고 그름만을 믿는다.”는 대사가 있다. 인생은 ‘옳고 그름’ 의 연속이다. 우리는 옳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지거나 익숙해지면 안된다.
- 영화는 역사를 재현하는 것일까 재발견하는 것일까.재현과 재발견 모두 중요하다. 과거의 작업들을 통해서 두 영역을 충족시키는 작업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들면서 역사를 재발견하고, 반추하고 다시 환기시키는 과정을 겪어오고 있는 것 같다.
- 우리는 모두 다양한 역사적 문맥 아래에 있다. 한국 관람객들이 당신의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기를 바라는가.
영화를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관객들이 가진 각자의 이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다만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혹은 전쟁에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전쟁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가장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우리는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