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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경의 TVIEW] 지옥에서 온 판사
오수경 2024-10-04

‘살인지옥’ 재판관 유스티티아는 ‘거짓 지옥’에 가야 할 죄인을 실수로 처벌한다. 이 일로 인해 1년 안에 살인을 하고도 반성하지 않고 용서받지도 못한 죄인 10명을 지옥으로 보내야 하는 벌칙을 받고 판사 강빛나(박신혜)의 몸으로 살게 된다. 빛나의 전략은 이렇다. 지옥으로 보낼 살인자라는 확신이 들면 일부러 가벼운 판결을 내려 풀어준 뒤 ‘진짜 재판’을 해 지옥으로 보내는 것. 그래서 그의 판결은 “가해자에게 지나치게 온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드라마는 빛나의 판결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법이 얼마나 가해자에게 온정적인지,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지, 정의 구현에 무기력한지 보여준다. 그의 말대로 인간 세계는 “정의는 개나 줘버린” 상황이다. 그 와중에 악마인 빛나가 정의 구현을 하는 주체가 된다. 빛나는 끔찍한 교제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나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살해하고 아동학대까지 한 가해자 모두 자신이 한 일을 똑같이 겪게 하고 ‘게헨나’(지옥)라는 낙인을 찍어 지옥으로 보낸다. 이른바 ‘안티히어로’보다 더 절대적 힘을 가진 악마가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한 것이다. 악마가 정의롭게 여겨진다는 건 그만큼 현실이 ‘지옥’과 같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사이다’를 넘어 ‘사이다 원액’과 같은 쾌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 사이다의 뒷맛이 썩 개운하지 않다. “(가해자가) 법으로 처벌받지도 않고 죽어서 분해요. 배자영이 그렇게 죽어버린 탓에 유현수씨의 죽음에 대한 진실도, 지호가 학대당했다는 사실도 다시는 파헤칠 수 없게 됐으니까요”라는 형사 한다온(김재영)의 말처럼 악마의 판결은 공적 시스템이 작동할 가능성을 박탈해버린 건 아닐까 싶은 질문이 맴돌기 때문이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이 질문을 어떻게 풀어낼까?

check point

‘사이다’에 집중해서일까? 빛나가 피해자가 당한 폭력을 가해자들에게 ‘미러링’하며 처벌하는 과정은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피해자가 여성이나 아동이라는 점에서 그 장면들은 자극성을 넘어 유해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폭력을 폭력이라 말하기 위해, 죄를 죄라고 보여주기 위해 주먹이나 칼을 휘두를 필요는 없다. ‘직접’ 보여주지 않고도 드러낼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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