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라 경희대학교 프랑스어학과 교수
1500년 무렵 레오나르도 다빈치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부인의 정체에 대해선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스푸마토 기법을 고안하기 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읽고 노트했던 도서 목록이 발견된다면 학술 뉴스 레터에 실려 미술사학자들에게 전달되겠지만, 16세기 유럽의 귀부인이 다빈치에게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적은 편지가 발견된다면 그 소식은 일간지에 실리고, 일간지의 유튜브 영상 채널에 오늘의 세계 소식으로 제작될 것이다. 사람들은 유명한 초상화나 인물상을 볼 때면 누구를 앞에 두고 그린 것인지 묻곤 한다. 작가의 손을 거쳐 탄생한 작품의 삶, 세계, 가치는 모델의 삶, 세계, 가치와 동일하지 않지만 모델의 정체에 대한 사람들의 집요한 관심은 작품이 모델이라는 존재의 현존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한다.
루브르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연극 극단 사진사로 예술계에 입문한 프랑스 감독 아녜스 바르다는 여러 차례 카메라로 초상화를 그렸다. 첫 번째 장편영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5)에서 바르다는 이미 르네상스 시기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초상화 <우르비노 공작과 공작부인의 초상>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두 남녀주인공(필립 누아레, 실비아 몽포트)의 클로즈업숏을 구성한 바 있다. 뒤로는 황량한 지중해 풍경이 펼쳐지는 사각 프레임 안에 두 남녀가 마주 보고 서 있다. 두 인물은 관계의 파국을 시각적으로 입증하며 프레임의 양끝에 겨우 걸쳐 있다. (비스듬하게 돌려 앉는 대신) 우르비노 공작과 공작 부인처럼 또는 로마 시대 동전 속 왕족처럼 반듯하게 옆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두 인물은 바르다 스스로 밝힌 것처럼 “공백 상태의 표현성” 속에서 영화적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에서 바르다는 18세기 회화 속 네덜란드와 베니스의 도시 경관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프랑스 남부 어촌을 묘사한다. 이 영화는 이처럼 영화적이고 자연주의적 양상과 연극적이고 회화적인 양상 사이에서 거듭될 바르다의 영화적 실험을 예고한다. 주지하듯 바르다는 2000년 이후 여러 비엔날레와 미술관에서 영상작업과 설치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바르다는 자신이 아끼는 미술 작품과 장르를 영화 속에서 인용하는 동안 “불변하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회화와 영화를 뒤섞지 않고, 허세 없이 색채를 가지고 유희할 수 있다는 것”을 즐기는 영화감독이었다. 가령 바르다는 <행복>(1965)에서 인상주의적 빛과 색채를 통해 영화의 빛과 색을 조율할 뿐 아니라 전통적 사랑과 ‘모던 러브’라는 영화 주제를 시각화하기도 한다.
특히 바르다는 제인 버킨을 다룬 초상 영화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1988, 이하 <제인 B>)에서 영화와 회화의 관계뿐 아니라 작품과 작품의 모델, 영화와 영화배우 사이의 관계를 조명한다. 이 영화는 우선 영화와 카메라가 자신을 “투명하게, 익명의 인물로” 찍었으면 좋겠다는 친구에게 전하는 답장과 같다. 바르다의 편지는 유년 시절 들었던 한 풍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바르다가 들었던 풍문에 따르면 사람들이 적은 금액을 치르고 사들였던 “센강의 무명 여인”이라고 불리던 작은 인물 석고상은 센강에서 발견된 익사한 여성의 얼굴을 본떠 만들어진 것이다. 바르다는 아마도 이것이 ‘진정한’ 이미지일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곧장 풍문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센강의 물결 위에 여인의 얼굴 조각을 겹친 이미지가 출현한다. 그리고 이내 제인 버킨의 얼굴이 조각의 이미지를 대신한다. 물에서 솟아난 아름다움의 이미지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유명한 그림 <비너스의 탄생>을 환기한다. 보티첼리의 그림 역시 잔물결이 이는 바다 수면 위에 떠 있는 조개껍질과 비너스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센강에서 발견된 시신의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 본을 떴다는 소문에는 사실 그다지 신빙성이 없다. 신체는 물속에서 부풀고 훼손될 것이므로, 물속에서 이상적 아름다움을 가진 얼굴이 솟아오른다는 것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카메라를 통해 투명한 익명의 인물이 되고 싶다는 제인 버킨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제인 버킨은 10대 시절 이미 유명 매거진의 커버 사진을 장식했던 사진 모델이자 스타, 가수, 영화배우다. 바르다의 카메라 앞에 섰던 1987년, 제인 버킨은 마흔살에 접어들고 있었다. 바르다의 카메라 앞에서 제인 버킨은 카메라 또는 카메라 뒤에 선 인물과 시선을 교환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한다. 바르다가 진정한 이미지라고 부른 센강의 익명의 여인의 이미지는 한편으로 흘러가는 강물, 사라지는 망자의 얼굴과 대조되는 부동의 이미지, 여기 남아 있게 될 이미지다. 다른 한편으로 진정한 이미지는 언제나 거짓과 풍문의 이미지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과 풍문, 미디어와의 공모 속에서 만들어진다. 바르다는 이 영화에서 친구 제인 버킨의 스캔들, 소문, 미디어 이미지를 파헤쳐 진짜 제인 버킨, 제인 버킨 이미지의 ‘원본’을 찾는 대신 오히려 제인 버킨에게 <타잔> 속 제인부터 서부극 속 제인, 잔 다르크의 제인(잔(Jeanne)은 영어 이름 제인에 해당하는 프랑스 이름이다)까지 ‘여러’ 명의 제인을 수행하게(performing) 한다.
바르다가 제인 버킨과 함께 구성하는 활인화(지난 연재 참조) 역시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의 존재론적 유한성, 사회적 맥락, 정체성의 구성과 같은 주제를 반복해서 환기한다. 이 영화에서 바르다는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 벗은 마하> <옷 입은 마하>를 하나의 활인화로 옮겼다. 따라서 버킨은 이상적 아름다움의 표상인 비너스이자 동시에 세속적 여성성의 표상인 마야다. 게다가 버킨은 이 활인화에서 <우르비노의 비너스>의 후경에 등장하는 하인이기도 하다. 화가 혹은 카메라 앞에서 나신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비너스 뒤쪽 한켠에서 하인 혹은 제인 버킨은 시선을 ‘등진 채’ 궤짝을 살피고 있다. 다음 장면에서 버킨의 나신은 다른 나신의 여성으로 대체되고, 이내 파리 떼가 이 나신을 뒤덮는다. 파리 떼로 뒤덮인 누드는 금방 부패하고 말 아름다움의 유한성을 피력할 뿐 아니라 여성의 몸을 소비하는 상품 경제를 간단하게 비판한다.
제인 버킨은 바르다의 영화 속에서 불변의 피사체, (남성)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이상적 뮤즈로 조명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직접 ‘수행하는’ 배우로 존재한다. 무엇보다 바르다는 이 영화에서 초상 영화와 회화적 수단을 통해 모델과 배우의 의미를 묻고, 나아가 창작과 작품의 의미를 묻는다. 이 질문은 AI 생성 이미지와 딥페이크 이미지 시대에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