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동네의 문턱을 넘던 날이 기억난다. 성매매 집결지로 들어가는 입구는 여러 군데인데, 진입로마다 ‘미성년자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고 안쪽이 잘 보이지 않도록 반쯤 가림막을 쳐두었다. 일부 구간은 펜스와 오동나무로, 골목의 하늘은 빨간 천막으로 가려두었다. 곧 초여름으로 접어들 시기라 땀이 좀 났는데 그늘진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시원한 공기가 좋았다. 나도 통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못 되는지 문턱을 넘을 때 살짝 긴장이 됐다. “손님이 많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어깨를 치며 다녀야 할 정도”로 혼잡한 골목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길이 좁기도 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그저 앞만 보고 직진해야 할 것 같은 좁다란 골목이었다. 긴장한 탓인지 어느 순간 내 움직임이 의식되면서 걷는 행위가 좀 부자연스러워졌고, 주변이 궁금하긴 한데 그렇다고 여기저기 둘러보는 건 실례일 듯해 자꾸 방황하는 시선을 최대한 앞쪽이나 아래에 붙들어두며 걸었다. 빨간 천막에 난 구멍에서 떨어진 한낮의 빛줄기가 바닥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땅을 보고 걷기에 좋았다.
그렇게 땅을 보고 걷다 고양이 밥그릇을 발견했다. 아앗, 이렇게 반가울 수가! 고양이를 대놓고 챙겨주는 동네라니. 낯섦은 순식간에 친밀감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고양이를 돌보는, 흔히 ‘캣맘’(언제부턴가 고양이를 돌보는 여성에 대한 혐오적인 시선도 담긴 단어가 되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현실을 더 잘 드러내는 단어라고 생각해 그대로 가져왔다)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고양이를 돌본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에 자주 맞닥뜨린다는 걸. 그래서 난 캣맘들에게 유대감을 느낀다. 지금보다 캣맘 활동에 열중하던 시절에는 골목을 걸을 때마다 구석구석의 고양이들이 내 레이더망에 들어왔다. 덕분에 낮고 구석진 곳을 촬영하는 데 훈련이 되었다! 비인간동물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도 시작은 고양이였다. 그만큼 난 고양이에 애틋하다. 그러니 집결지 골목에서 고양이 급식소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구석구석 고양이들이 보였다. 빨간 천막 위에도 고양이 그림자가 서성거렸다. 누군가는 “비 오는 날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고양이 뼈가 떨어졌다”는 말을 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낡은 건물이 많다 보니 비가 새는 천장 구멍으로 오래전에 죽은 고양이의 뼈가 그만 떨어진 것이다. 폐업한 업소에 갇혀 탈출하지 못한 채 죽은 고양이도 많다고 했다.
어느 순간 나는 ‘고양이 아가씨’로 불리고 있었다. 고양이 덕분에 몇몇 사람들과도 친해졌다. 어느 식당 앞에 턱시도 고양이가 앉아 있는 걸 쳐다보고 있는데 마침 밥을 챙겨주려고 나왔다가 나에게 말을 걸어준 분, 구내염이 심한 고양이를 위해 약을 지어다 주면서 친해진 분, 업소 안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손을 타지 않아서 병원에 못 데려가고 있다기에 노하우를 전수하다 친해진 분, 고양이 똥을 치우고 있는데 같이 좀 도와드리겠다고 말을 걸었다가 친해진 분. 그리고 한명 더. 이유 없이 끌리는 사람이 있는데, 이분이 그렇다. 집결지 골목의 맨 끝에는 폐업한 업소들이 오래 방치돼 있다. 쓰레기 더미가 가득하다. 사람들은 거기다 쓰레기를 더 함부로 갖다 버리고(대체 왜?) 그 양은 점점 늘어간다. 이곳을 거처 삼아 몇몇 고양이들이 지내고 있다. 다른 동네에서 고양이들을 챙기러 일부러 찾아오는 이 캣맘은 바퀴 달린 가방에 고양이 음식을 담아 다니며 모든 과정을 깔끔하고 흐트러짐 없이 착착 해낸다. 야무지게 일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어쩐지 힘이 난다.
이 호기심 많은 내향형 인간은 현장에 마음 붙일 한 존재만 있으면 그 옆에 꼭 붙어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 그렇게 고양이 핑계로, 고양이 덕분에,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 처음에는 차가워 보였던 이곳 주민들과도 조금씩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레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동네 생태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도 듣는다. 이제는 집결지의 안팎 경계가 구분되지 않을 만큼 편하다. 이곳의 냄새, 색깔, 모양 모든 것이.
사실 고양이 때문에 작업을 시작할지 망설이기도 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다. 재개발될 것이 분명한 이 동네에서 사람들이 떠나고 철거가 시작되어도 고양이들은 떠나지 않는다. 철거 중에 다치거나 죽는 고양이가 생기면 어쩌나. 고양이들과 고양이 때문에 힘들 내 마음도 걱정되었다. “정드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아냐”던 엄마의 말이 꼬리처럼 나를 따라다니는데, 정든 골목이 사라지는 것도 정든 주민들이 떠나는 것도 슬프고, 무엇보다 무너져가는 곳에서 떠나지 못하는 고양이들이 다치고 죽을까봐 걱정된다. ‘삐끼이모’라 불리는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여기가 예전에는 규모가 훨씬 더 컸어. 그러다 주변에 큰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계속 줄어들었잖아. 저기 주상복합아파트 보이지? 저거 들어설 때도 고양이들이 많이 파묻혔어.”
올해 초, 이 동네에서 식당을 하던 이모님은 갑자기 굴러들어온 아픈 고양이까지 끌어안고 이주를 했다. 고양이 이름은 ‘한이’다. 한이는 한 업소 안에서 지내다가 골목으로 나왔다. 업주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운영이 어려워졌고 빚이 점점 늘어나자 갑자기 들이닥친 빚쟁이들이 쫓아낸 여러 고양이들 중 하나였다. 한이와 또 다른 고양이만은 몇 날 며칠을 그 업소 앞에서 울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이는 어찌저찌 몇백 미터 떨어진 식당까지 찾아왔다. 심한 구내염을 앓고 있었다. 나는 식당 이모님을 도와 발치 수술을 시켰고 한이는 지금 이사한 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 이 동네는 인간들의 이야기만큼이나 고양이들 저마다의 다채로운 사연이 전설처럼 떠돌아다닌다.
아, 누군가는 대체 네 작업은 진행되고 있는 거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몇년 동안 흔히 정식 촬영이라고 할 만한 촬영은 못했다. 원한다고 바로 카메라를 댈 수 없는 작업도 있다. 그러니 이렇게 만들면 되겠다, 하고 계시가 찾아오기를. 모든 건 다 때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