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에 커다란 곰 인형이 매달려 있었다. 성매매 집결지에서 주택가로 이어지는 골목의 입구였다. 순간 뭘 잘못 봤나 싶었는데 정말 곰 인형이 내 눈높이에 매달려 있었다. 검은 전선으로 여러 번 감아 묶어둔 것이었다. 긴 시간 비바람을 맞고 볕에 노출된 곰 인형의 털은 해지고 바랬는데, 심지어 고개까지 푹 숙이고 있어서 더 측은하게 느껴졌다. 길가에 버려진 인형만 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이 쓰여 시선이 머무는데, 행인이 많은 골목길 한가운데에 곰 인형을 이런 식으로 묶어둔다? 이게 무슨 악취미인가. 대체 왜?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건가? 뒤로 물러나 잠시 지켜봤고,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갔다. 다들 전봇대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마 익숙해서 그럴 거라 생각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고.
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두려웠다. 인형을 묶어둔 사람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 일었다. 사람들이 꾸준히 지나다니는 길에서 튀는 행동을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혹시 인형 눈에 CCTV가 박힌 것은 아닐까? 그건 아니었다. 그럼 전봇대 위에? 그것도 아닌 듯했다. 거리가 한산한 틈을 타 줄을 당겨보았는데 하다 보니 용기가 나서 더 세차게 흔들어보았다. 쉽게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눈에 띈 이상 그냥 두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며칠 뒤 칼을 챙겨서는 그곳을 다시 찾았다. 주변을 배회하며 살피다가 행인들의 발길이 끊기자마자 전봇대 앞으로 달려가 빠르게 전선을 끊고는 인형을 안고 다른 골목으로 냅다 뛰었다. 이게 뭐라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도 해냈다. 그런데 이 인형을 어떡하지? 매번 마음만 앞서고 앞일을 예측하는 능력이 부족한 나는 막상 인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일단 급한 대로 주변의 쓰레기봉투들이 모여 있는 곳에 두고 떠났다. 시간이 흘러 현장을 다시 찾았고…. 그 자리에 그 인형이 또 묶여 있었다. 당시 내가 미처 치우지 않은 전선으로 더 꽁꽁 묶인 채.
이번에는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허망하고 슬프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다 인형을 다시 이 전봇대로 끌어들이는 ‘보이지 않는 힘’을, 인간의 의지라고만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을 막연히 떠올렸다. 생각은 이 동네에 작용하는 인력과 척력으로까지 이어졌다. 떠났다가 돌아오고, 또 떠났다가도 돌아와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느 장소든 그렇지만 성매매 집결지에도 수십년간 터를 잡고 사는, 그게 가능한 사람들이 있고 불안정하게 머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업소의 종사자들은 주로 후자다.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많은 업주들이 아가씨라 불리는 종사자들에게 “돈 많이 벌고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는 말을 한다. 어쨌거나 이곳은 일이 고되고(쉽게 돈 번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통념상 인식도 안 좋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두고 나갔는데 다시 돌아온다면 ‘바깥 세계’에서의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라고 여겨진다. 반대로 바깥 세계라는 곳이 그 개인을 붙들어두지 못하는 것이기도 할 테고. 누군가는 취약해서 여기로 다시 돌아오고, 누군가는 여기서 일할 만큼 강인하다. 우리는 누구나 강하고, 누구나 약하다.
이곳 집결지의 좁은 골목을 걸어다니다 보면 벽, 전봇대, 업소 유리창에 온갖 광고와 경고가 적힌 전단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중 내 눈길을 끌었던 글귀가 하나 있다. “당신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든 어떠한 일을 하든 간에 당신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입니다.” 공중화장실에 붙어 있을 법한 흔한 문구라 평소 같으면 보는 둥 마는 둥 했을 것이다. 하지만 펜스와 오동나무로 분리되고, 주변을 높게 둘러싼 아파트 주민들의 항의에 하늘까지 천막으로 다 가려둔 이 ‘안쪽 세계’에서 정성스럽게 손글씨로 쓴 자존감 높여주는 이 글귀를 읽고 있자니 어쩐지 나도 위로받는 것 같았다. 지긋지긋하다고 서로 욕하면서도 비슷한 일을 하며 비슷한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끼리만 알아줄 수 있는 게 있다. 이 장소에서만 받을 수 있는 위로가 있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알게 된 누군가는 언젠가 술에 취해 “현실이 중요해.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게 제일 중요해”라고 중얼거렸는데 그 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맞아, 맞아. 나도 그래 하면서. 중요한 건, 그리고 꼭 필요한 건 지금 내 현실을 이해해주는 사람들. 나를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울타리는 꼭 있을 것. 내 고양이의 소중한 이빨을 이 동네 지붕에는 던질 수 없다던 사람도 이곳을 떠나야 하는 밤에는 외로워지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을 사회문제라고 규정했을 때 일반화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지만 그 과정에서 압축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성매매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들. 복잡한 것을 어떻게 복잡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그래서 인형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하면,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날을 잡아 친구까지 대동해서 갔다. 이전보다 더 꽁꽁 묶인 전선을 칼로 끊어 우리는 인형을 들고, 전선도 들고, 전보다 더 먼 곳으로 달아났다. 곰 인형은 대형 쓰레기봉투에 꽉꽉 구겨진 채로 담겨 쓰레기차에 실려 갔다. 진짜 해냈다! 안도감도 잠시, 뒤이어 긴 찜찜함이 밀려왔다. 내 고집과 의지로 이렇게까지 했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싶은 마음. 곰 인형에 이입하는 건 내 마음의 문제인 거고, 어떻게 보면 남의 동네에 대한 지나친 개입일 수도 있다. 사실 막상 곰 인형을 쓰레기차에 실어 보내고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그건 과연 곰 인형에 더 좋은 일이었을까? 그래도 곰 인형이 형벌을 받듯 매달려 있는 것보다는 나았을까? 그런 기괴한 풍경이 사라진 것이 동네에 더 나은 영향을 끼치기는 했을까? 그렇게 묶어뒀던 자는 반성을 할까? 이 모든 게 장난일 뿐인데 내가 너무 진지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