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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클래식 부문에 초청된 '영화 청년, 동호' 김량 감독, 걸어다니는 영화 인생에 대한 기록
글·사진 조현나 2024-05-29

공무원으로 경력을 시작한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이하 전 위원장)이 영화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영화 청년, 동호>는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 설립자이자 한국영화계의 많은 변화를 이끌어낸 김동호 전 위원장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임권택, 이창동, 신수원 감독, 배우 조인성 등 김동호 전 위원장과 합을 맞췄던 영화계 동료 및 선후배 또한 그의 역사를 되짚는 여정에 함께하며 각자의 기억을 들려준다. 다큐멘터리 <경계에서 꿈꾸는 집> <영원한 거주자> <바다로 가자>에 이어 연출을 맡은 김량 감독은 칸영화제에서의 프리미어 상영을 마친 뒤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관해 들려주었다.

- 경쟁부문 초청작이 아님에도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상영 전 직접 <영화 청년, 동호>를 소개했고 김동호 전 위원장과 김량 감독도 각자의 소감을 전했다. 덕분에 작품 공개 전부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 즐거운 밤이었다. 칸에 초청된 것 자체가 엄청난 영광이다. 그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증언 위주로 만들기보다 영화의 시간성과 공간성, 가령 과거와 현재를 잇는 교차편집이나 공간이 만들어내는 에너지 같은 걸 중요하게 생각해왔는데 그런 철학이 담긴 다큐멘터리가 가치를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

- 네 번째 장편인데 인물 다큐멘터리는 이번이 처음이다.

= 김동호 전 위원장이 아니었다면 굳이 인물 다큐멘터리를 시도하지 않았을 것 같다. 여러모로 내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1993년에 대학생이었는데 당시 독재 시기를 지나올 때라 모든 게 제약이 많았다.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영화는 공개되지 않거나 특정 장면이 삭제된 채로 개봉하곤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검열, 삭제 없이 작품을 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신선한 충격이었고 언론 기사를 통해 김동호 위원장님의 성함을 처음 접했다. 그때 그분의 성함이 머리속에 각인되었고 이후 2008년 도빌 아시아 국제영화제에서 우연히 만나뵙게 됐다. 영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건 강수연 배우가 세상을 떠난 뒤다. 김동호 전 위원장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왜 이런 분들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가 없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 아쉬움 속에서 기획을 시작했다. 파리에 있을 때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 인터뷰를 먼저 진행했는데 김동호 전 위원장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진작 만들어졌어야 한다고 하더라. 보통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기까지 3년 정도 걸리는데 이번에는 1년 만에 완성했다. 영화에 사계절이 다 담겼으면 좋았을 텐데 제작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가을이 담기지 못한 점이 좀 아쉽긴 하다.

- 김동호 전 위원장의 잘 알려지지 않은 개인사와 더불어 한국영화계의 변화까지 적절히 맞물려 다뤄진다.

= 영화를 찍으면서 세운 목표 중 하나가 부국제 설립 외의 김동호 전 위원장의 업적을 다루는 것이었다. 그 밖에 김동호 전 위원장이 문화공보부 재직 시절 독립기념관과 예술의전당, 국립현대미술관 부지를 각각 선정했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싶다고 하셔서 구성에 포함시켰다.

- 전반적으로 공간이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한다.

= 내 작품이 항상 그렇다. 가령 이번에도 팔당호, 고 이춘연 대표나 강수연 배우의 장지가 중요했고 김 전 위원장이 직접 꾸민 자택도 많은 영감을 줬다. 남양주종합촬영소의 판문점 세트도 김 전 위원장이 전쟁 세대였다는 걸 상징적으로 드러내면서 <공동경비구역 JSA>를 비롯한 한국영화에서 중요하게 등장했던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 있게 다루고자 했다. 공간과 사람이 잘 어우러지는 장면이 이번에도 가장 좋았다. 김 전 위원장의 인터뷰 장면 이후에 팔당 배경의 트래블링 숏이 오버랩되면서 들어가고 드론 촬영한 외부 숏과 김 전 위원장이 있는 내부 숏이 이어지면서 하나로 합쳐지는 그 세컷을 좋아한다. 과거와 현재, 외부와 내부를 잇는 가장 영화적인 장면이라고 느껴서다. 김 전 위원장이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는 장면도 창문이 스크린처럼 보여서 마음에 든다. 김동호 전 위원장이 칸영화제에서 각 유럽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초청해 부국제 시작의 조언을 구했던 식당이 있다. 가브로쉬(Gavroche)라는 곳인데 당시 이야기를 나누며 김 전 위원장이 엄청난 에너지를 얻었다고 하더라. 이곳을 배경으로도 찍어두긴 했지만 맥락상 잘 맞지 않아 결국 편집했다.

- 영화의 일부는 내레이션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 강수연 배우와 가장 친했던 예지원 배우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감독 입장에서 연기까지 특정해 부탁할 순 없는 노릇인데 감정이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잘 묻어나게 해주었다. 강수연 배우가 나오는 장면에서 “언니, 보고 싶어요”라고 한 건 예지원 배우의 애드리브다. 그래서 더 와닿았던 것 같다.

- 영어 제목은 <Wakling in the Movies>인데 한국어 제목은 <영화 청년, 동호>다. 제목의 의미와 함께 직역하지 않은 이유를 이야기해준다면.

= 김동호 전 위원장이 걸어다니는 영화 인생이나 마찬가지이지 않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고 또 부지런한 걸로 유명해서 애초에 컨셉으로 잡았다. 촬영감독에게도 위원장이 걷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많이 찍어달라고 했다. <Walking in the Movies>를 번역하려니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 고민하던 차에 이창동 감독님이 ‘위원장님은 청년의 정신으로 살고 계신다는 말’을 해주셨다. 그걸 반영해서 <영화 청년, 동호>로 짓게 됐다.

- 이후의 작품 계획은.

= 한국전쟁, 그리고 전쟁 세대의 후손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다. 그리고 극영화 시나리오도 하나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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