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연재 초반부터 오랜 인연을 암시한 네코마 고등학교는 카라스노 고등학교 배구부가 거쳐가야 할 숙명의 라이벌이 되어 봄철 대회에서 재회한다. 이전 연습 게임에서 패배한 카라스노는 그사이 더 발전한 팀워크로 공을 향해 질주한다. “힘들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오직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일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소년들의 세계는 현재에 전력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한 가치를 얻는다. 2012년부터 2020년 겨울까지 8년 반 동안 <하이큐!!>를 연재한 집영사의 <주간 소년 점프> 편집자를 서면으로 만났다.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이 지닌 희망을 들여다보기 위해 1대 편집자 혼다 히로유키, 2대 편집자 이케다 료타, 3대 편집자 아즈마 리키에게 질문을 건넸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결국 성장한다. 간단하지만 그 어떤 명제보다 중요한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오랜 시간 분투한 이들의 다정한 시선을 전한다.
- 8년간의 원작 만화 연재가 막을 내리고, TV 시리즈도 4기까지 완주했다. ‘쓰레기장의 결전’의 극장판 제작이 결정됐던 당시를 돌아본다면.
이케다 료타 2022년 8월 <하이큐!!> 이벤트에서 극장판 제작 결정을 발표했다. 이벤트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숨을 참고 있다가 소식을 듣자마자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때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전율을 잊을 수 없다. 카라스노와 네코마는 작중에서도 인연이 깊은 학교다. 두 학교의 첫 공식전인 쓰레기장의 결전을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니. 기대가 컸다.
혼다 히로유키 너무 기뻤다. 극장판은 일부 작품에게만 허용되는 귀한 무대다. 게다가 하나의 경기를 한편의 영화로 만드는 것도 <하이큐!!>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우리 만화를 극장까지 이끌어준 건 온전히 팬들 덕분이다.
아즈마 리키 역시 스포츠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은 유일무이한 경험이다. 영화 관람보다 경기 관전에 가까운, 극장 특유의 경험이다. 영화관에서 <하이큐!!> 팬들과 극장판을 다 함께 본 경험을 잊을 수 없다.
- 원작 만화 연재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극장판을 보았을 때 느낌은 또 달랐을 것 같다. 처음 완성판을 본 순간을 기억하나.
혼다 히로유키 두 가지 감정이 뒤섞였다. 마지막 TV시리즈인 <하이큐!!> 4기가 공개되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러다 미쓰나카 스스무 감독이 연출한 <하이큐!!>를 보았을 때 우리의 <하이큐!!>가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TV시리즈와는 다른, 영화로서 <하이큐!!>를 느낄 수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경기가 한순간에 빠르게 흘러간다. 그사이에 흥분, 감동 모든 감정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케다 료타 압권 그 자체다. 9X18m 사각형 안에서 캐릭터들이 공을 쫓기 위해 분투한다. 어디를 봐도 배구의 매력이 그대로 느껴진다. 또 실제 경기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세세한 주변 소리, 인물들의 숨소리 등 미쓰나카 감독과 제작사가 신경 쓴 지점들에 놀랐다. 극장의 큰 화면과 고음질로 체감하기 좋은 작품이다.
아즈마 리키 극장판을 보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 여운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방금 대단한 걸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극장판이 아니면 담기 어려운 움직임이나 경기 묘사가 스포츠의 초인성(超人性)에 다다른 듯했다. 많은 팬들이 N차 관람을 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하이큐!!>는 2012년부터 장장 8년 반 동안 연재됐다. 일본에는 기존에도 다양한 스포츠물이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데, <하이큐!!>가 지닌 차별점을 살리기 위해 후루다테 하루이치 작가와 어떤 논의를 거쳤나. 각 편집자의 담당 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내세운 전략 지점이 다를 것 같다.
혼다 히로유키 일본에는 눈부시게 훌륭한 스포츠 만화가 많다. 작품이 지닌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있으면 흉내내고 싶을 정도다. 그 매력을 따르면 우리의 작품도 멋진 것이 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그건 흉내내기에 불과하다. 다른 작품의 장점을 빌려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작품을 빈약하게 만든다. 따라서 배구라는 소재를 통해 후루다테 작가 고유의 재능을 끄집어내고 이 둘을 끝까지 믿는 것이 중요했다. 그 결과 <하이큐!!>의 오리지널리티가 완성됐다.
이케다 료타 원작의 힘은 후루다테 작가의 집념에서 시작한다. <주간 소년 점프>는 스포츠물을 포함한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연재하고 있다. 많은 작품 사이에서 후루다테 작가는 <하이큐!!>가 어느 독자층에게 어떤 즐거움을 줄지 명확하게 고민했다. 또 <하이큐!!>는 일본 중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을 주요하게 다룬다. 이 설정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면밀한 취재 과정도 거쳤다. <하이큐!!> 속 인물들의 감정, 스토리가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후 봄철 배구 대회와 컬래버레이션을 하거나 작중 등장하는 센다이시 체육관(현 가메이 아레나 센다이 체육관)에서 원화전을 여는 등 작품과 현실이 연결되는 일들이 주목받기도 했다.
아즈마 리키 내가 <하이큐!!>를 맡았을 때에는 엔딩 방식에 대해 한창 논의할 때였다. 하지만 우리가 스포츠 만화 중에서 어떤 위치에 서고 싶은지 특별히 고민하진 않았다. <하이큐!!>의 결말을 두고 <슬램덩크> 이후 이야기 같다는 논평을 받기도 했지만 <슬램덩크>와 차별을 두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저 스포츠나 동아리 활동에 대한 후루다테 작가의 입장이 오리지널리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공들였다.
- 이번 극장판에서는 카라스노 고등학교와 오랜 인연이 있는 네코마 고등학교와의 봄철 배구 대회를 다룬다. 네코마 학생들이 첫 등장하는 원작 3권, 4권에 담긴 에피소드를 전해준다면.
혼다 히로유키 당시 후루다테 작가가 얘기한 라이벌 구도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스포츠 만화의 라이벌은 일반적으로 쓰러뜨려야 할 강적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후루다테 작가는 라이벌들이 오롯이 대립하기보다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절차탁마한다고 생각다. 실제로 일본의 고등학교 배구부는 학교끼리 모여 그룹을 만들고 그 안에서 연습 시합을 하거나 합숙을 한다. 이 과정에서 친분을 쌓은 이들은 학교가 달라도 동료 같은 일체감을 갖는다. <하이큐!!>의 세계관도 이러한 고등학교 배구 문화와 선생님간의 라이벌관이 합쳐져 네코마 고등학교가 생겨났다. 이야기 안에 쿠로오와 켄마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서 비롯한다. 학년도 포지션도 다르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친구이고 스승이다.
- 연재 과정에서 후루다테 작가와 지향점이 다른 순간도 있었나. 그럴 땐 어떻게 논의했는지 궁금하다.
혼다 히로유키 정말 다양한 장면에 있었다. (웃음) 하지만 충분히 납득 가능한 논의였다. 작품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적극적으로 임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미야키 인터하이 예선에서 카라스노 고등학교가 패배한다는 것을 후루다테 작가에게 처음 들었을 때다. 나는 독자의 마음으로 가급적 승리를 이어나가면 좋겠다고 설득했고, 작가는 ‘승부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히나타가 깨우치기 위해서는 빨리 패배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는 인물들이 패배를 몸소 이해하면서도 이 경험 자체가 다음 승리를 위한 길이었다는 것을 알도록 구성했다. 후루다테 작가는 항상 독자의 솔직한 의견을 원한다. 내가 콘티를 읽고 “너무 재미있다”고 말해도 “그건 <하이큐!!>를 좋아하는 사람의 의견”이라며 “<하이큐>를 싫어하거나 관심 없는 사람의 관점으로 감상을 다시 알려달라”고 말하곤 했다. (웃음)
아즈마 리키 의견이 맞지 않는 적은 없었지만 후루다테 작가가 망설이는 순간 격려한 적은 있다. 후쿠로다니와 무지나자카 시합이나 히나타의 브라질 수행 편, 오이카와가 아르헨티나 대표가 되는 것 등 작가가 주저하는 순간마다 꼭 보고 싶은 장면이라고 응원했다.
- 어느덧 <하이큐!!>도 마침표를 찍었다. 8년 동안 각기 다른 시기를 거쳐온 편집자로서 후루다테 작가와 함께 호흡을 맞춘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면.
혼다 히로유키 나는 후루다테 작가와 동년배로 회사에 만화를 처음 갖고 왔을 때부터 알고 지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 하면 망설임 없이 후루다테 작가를 꼽는다. 옆에서 지켜본 그의 사고방식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고결하고 매력적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둘이서 술을 마신 장면만 생각난다. (웃음) 그만큼 원고 이외에는 함께 술만 마셨다.
이케다 료타 후루다테 작가는 작품 만드는 과정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는다. 언제나 지금을 진지하게 마주하려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타협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후루다테 작가와 맛있는 밥을 먹으면서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았다.
아즈마 리키 편집자로서 사회 초년생으로서 처음 작업한 창작자가 후루다테 작가다. 그래서 감사함밖에 없다. 뭐랄까, 젓가락 드는 방법부터 배운 느낌이랄까. 나는 편집자로서 많이 어설펐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실수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항상 웃는 얼굴로 따뜻하게 대해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네코마 전의 클라이맥스를 지켜 본 기억이 여전히 생생히 남아 있다. 원고를 가지러 갔을 때 31페이지나 되는 원고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면서 엄청 압도됐다. 후루다테 작가와 함께할 수 있어 정말이지 행복했다.
- 스포츠 만화의 인기는 해당 스포츠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실제로 <하이큐!!>의 인기에 따라 배구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는지 궁금하다.
이케다 료타 친척이나 친구들의 자녀가 <하이큐!!>를 보고 배구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또 작품이 세상에 나온 지 10년 이상 지났기 때문에 보이는 신기한 광경도 있다. 연재 당시만 해도 히나타와 같이 고등학교 배구부였던 사람이 현재 프로선수로 활동 중이다. 인터뷰에서 <하이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현실에 가닿는 만화의 힘을 체감한다.
아즈마 리키 <하이큐!!>가 처음 연재됐을 때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만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학생들 사이에서도 배구에 대한 이미지가 친숙해졌다. 실제로 고등학교 봄철 대회에 출전하는 거의 모든 팀의 주장이 <하이큐!!>를 인용했다. <하이큐!!>를 읽고 배구를 시작했다는 사람도,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하이큐!!>로 위로받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작품이 실제 선수들과 갖는 심리적 거리감이 무척 가깝다는 것을 느끼고 감동받았다.
- 마지막으로 극장판을 본 사람들이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받길 바라나.
혼다 히로유키 심플하다. 배구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느끼면 좋겠다. 작품 속에는 후루다테 작가와 극장판 스태프들이 생각하는 배구의 매력이 섬세하게 담겨 있다. 이중에서 어떤 이야기를 받아들였는지 나중에 관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이케다 료타 배구 경험이 없어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인물 사이의 관계성이나 캐릭터의 신념이 드러나는 대사, 스포츠의 재미, 청춘 가득한 동아리 활동의 활기 등 즐길 요소가 다양한다. N차 관람해도 매번 다른 재미와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관객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대로 즐기길 바란다. 다만 “점수를 따는 데 지름길은 없다”는 히나타의 대사처럼 자기 삶에 반영할 수 있는 좋은 메시지를 포착하면 좋겠다.
아즈마 리키 꼭 배구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위해 단련한 신체적·심리적 근육은 언제나 아름답다. 츠키시마의 말처럼 동아리 활동은 그저 이력서의 한줄을 위한 활동일지 모른다. 하지만 전력을 다하는 행위 그 자체는 인생에 큰 의미를 준다. 배구를 향해 질주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관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떠올리면 좋겠다. 그것을 좋아하는 그 자체를 자랑스러워하길.
내 눈길을 사로잡은 장면
혼다 히로유키 먼저 영화 첫머리에서 쓰레기장의 결전을 기다리는 어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실제 이 작품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팬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또 시합이 시작되고 나서 첫 플레이도 좋았다. 팬들에게 익숙한 BGM을 배경으로 드러나는 풀 서브는 <하이큐!!>가 돌아왔다고 선언하는 느낌이었다. 마음속으로 너무 떨렸다. 마지막으로 라스트 플레이.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을 위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극장판에서만 다룰 수 있는 도전적 장면이었다. 이견 없는 명장면이다.
이케다 료타 히나타와 켄마, 츠키시마와 쿠로오의 다툼이 그려지는 장면이 자꾸 생각난다. 원작 만화에서 네코마는 2권 마지막 부분에 나와 33권에서 처음으로 전국 대회에서 카라스노와 공식 경기를 갖는다. 그때까지 두 고등학교는 연습 시합, 합동 합숙을 하며 관계를 쌓아올린다. 라이벌이자 친구인 기묘한 관계의 두 학교는 궁극적으로 싸움으로 나아간다. 십대 청소년의 열정과 활기를 느낄 수 있는 고교 부활동의 집대성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역시나 라스트 플레이. 압권이다.
아즈마 리키 3세트의 쿠로오가 “핫하!” 하고 외치는 플레이 장면이 있다. 스포츠에 몰입했을 때 자신의 몸을 고도로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리 피로할지라도 반응의 정확도가 높아지는 감각이 작품 속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경험을 스포츠 애니메이션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