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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 탐방기
2002-06-14

왕국의 문을 여니, 백발의 아이가 웃고 있더라.

지브리 스튜디오는 <천공의 성 라퓨타>로 시작해,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추억은 방울방울> 등 무수한 수작들의 모태가 되어왔다. 메이저 스튜디오 시스템을 잘 견디지 못하던 고집쟁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다카하다 이사오와 함께 1985년에 설립한 이곳은 재패니메이션의 산실이 되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국내 개봉을 앞두고 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의 꿈이 영근 지브리 박물관을 찾았다.편집자

‘세계를 움직이는 재패니메이션의 산실’, 이라고 하기엔 지브리 스튜디오는 작고 아담했다. 도쿄 교외의 고가네이시 주택가에 자리한 이 3층의 목조 건축물은, 누군가 ‘여기가 바로 거기’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릴 만큼, 별난 구석이 없었다. 대부분 2층인 주변 주택들보다 조금 높고, 조금 넓을 뿐. 유난스러운 게 있다면 흰색 벽을 타고오르는 담쟁이덩굴과 건물을 둘러싼 키 큰 나무들이다. 가로 50cm가 넘지 않을 만큼 자그마한 스튜디오 간판도 나무에 둘러싸여 주의를 기울여 주위를 둘러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개인 주택 크기만한 제2, 제3 스튜디오 또한 소담했다. 집은 집주인의 취향과 삶의 태도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했던가. 문득, 이 건물이 미야자키의 영화세계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의 친화, 인간과 자연의 조화, 그리고 인간에 대한 낙관으로 표현되는 민중주의 등이 그 건물에서 읽혀졌다.

이 스튜디오뿐만이 아니다. 건물 설계에서 자잘한 내부 소품까지, 그가 직접 진두지휘해 완성한 지브리 박물관, 작업실 겸 아틀리에인 그의 개인사무실 ‘니바리에’ 역시 스튜디오의 건축 철학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었다. 2층 건물인 니바리에 외벽은 온통 진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건물보다 더 높은 우람한 나무가 그가 인터뷰를 하거나 손님을 맞는 홀의 커다란 유리창을 커튼처럼 뒤덮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자연친화가 관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그야말로 타고난 ‘취향’ 같은 게 아닐까, 그는 시골로 낙향해 밭가는 농부가 될 수 있을지언정 의지적으로 자연보호를 위해 행동하는 환경운동가는 될 수 없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그의 일상의 언저리를 둘러보며 멋대로 해본다.

아이들의 벗인 할아버지

‘살아 있는 거장을 만나러 간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만나러, 그리고 지브리 스튜디오를 방문하러 도쿄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내심 그런 생각을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렇게 ‘큰 이름’이었다. 물론 그럴 만한 근거는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그의 애니메이션을 너무 심각하게만 이해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도쿄에 머무는 3일간 번뜻번뜻 스치고 지나갔다. 비유하건대 이런 얘기다. 좋은 동화는 우주적 진리를 아주 간단한 이야기에 담아 전한다. 그런데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 건 그 이야기이지, 거대한 진리가 아니다. 진리를 염탐하는 건 어른들이다. (모든 작품은 아니지만)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에도 이런 논리가 해당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어른들 모르는 사이 그와 아이들은 ‘직접’ 만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야자키가 진정으로 말을 건네고 싶어하는 상대도 바로 그 아이들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가장 마지막에 남는 것은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자는 마음이다. 그저, 그것뿐이다. 아는 아이들 5,6명이 즐거워하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 2년 전 그는 <씨네21>과의 서면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의 천국인 지브리 박물관에 가면, 이 말에 조금도 거짓이 섞여 있지 않음을 절감할 수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하야오의 통로다. 그는 정말로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한다. 이런 그의 바람은 나이가 들어 점점 더 절박해지는 것 같다. 또한 “1만평의 대지를 구입해 아이들이 마음껏 활개칠 수 있는 100채 규모의 동네를 만들고 그 가운데 보육원을 짓는 게 나와 미야자키의 남은 꿈”이라고, 프로듀서 스즈키가 말하기도 했다. ‘그의 나와바리’에서 만난 미야자키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풍경 안에 편안히 들어앉아 ‘다음엔 아이들에게 무슨 얘기를 들려줄까’ 하고 골똘히 궁리하는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이야기를 ‘제대로’ 해보려고 지브리 스튜디오를 세웠다. 그에게 걸림돌이 됐던 건 거대 메이저의 시스템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60년대. 그가 애니메이터로 일했던 도에이영화사는 TV시리즈물을 만들어 성공하기 시작했다. 몇년 뒤 도에이의 직원은 500명이 되었고 작업분량은 많아졌고 생산은 규격화되었다. 작업은 완벽하게 틀지워진 위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런 조건 속에서 그는 원하는 대로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와 같은 절망을 느꼈던 또 한 사람의 애니메이터가 역시 도에이에서 <태양의 왕자 호루스 대모험>을 만들던 다카하다 이사오. 이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다카하다는 애초 제작 예정기간인 8개월을 훨씬 넘겨 3년을 끌었고 그 바람에 제작비는 7천만엔에서 1억3천만엔으로 치솟았다. 스탭들의 노력으로 힘들게 영화를 완성했지만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도에이의 압박이 어땠을지, 그가 느꼈을 염증이 어땠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스튜디오를 탈출하기까지는 좀더 시간이 걸린다. 그들에게 호기가 되어준 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미야자키 하야오 연출, 다카하다 이사오 제작)의 대대적인 흥행이었다. <…나우시카>의 성공에 힘입어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다 이사오는 1985년, 출판사 도쿠마쇼덴이 출자한 500만원을 자본금 삼아 지브리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지브리의 입지를 확고히 해준 건 미야자키가 감독하고 다카하다 이사오가 제작한 <천공의 성 라퓨타>의 성공이었다. 이어 널리 알려진 대로 두 사람은 제작과 감독을 번갈아가며 잇단 성공작을 내놓았다. ‘지브리’(ghibli)는 사하라 사막에 부는 뜨거운 바람의 이름. 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 정찰 비행기들이 이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그 뜻대로 지브리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바람을 불러일으키길 바랐을까? 어쨌든, 현실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지브리의 작품들은 도에이를 통해 배급된다. 도에이가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얼마나 목말라할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 관계에서 지브리가 우위를 점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지금 일본에서 전국 관객 2450만명(<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동원할 수 있는 감독은 미야자키가 유일하다. 이같은 역사의 진행 경로는 선뜻 조지 루카스를 떠올리게 한다. <청춘낙서>의 대대적인 성공을 기반으로 루카스는 혐오하던 할리우드를 (정신적, 지리적으로) 벗어나 샌프란시스코에 루카스필름을 설립,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들어 메이저들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나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창작자의 지독한 욕망, 그것없이 영화 미학이 어떻게 진보할 수 있었겠는가.

지브리는 처음부터 TV시리즈물을 만들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대신 작가 개인의 미학적 야심을 최대한 실현시킬 수 있는 ‘작가주의의 산실’을 지향했다. 물론 그 작가는 미야자키와 다카하다다. 두 사람이 없는 지브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더구나 미야자키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작업한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다. 재능있는 한 사람의 생각이 공동작업으로 구체화될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라는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의 얘기는 지브리의 존재 방식 그리고 존립 기반을 간결하게 요약한다.

작가의 의도를 충실하게 살리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과 함께 지브리가 지금껏 고집해온 또 다른 창작 원칙 하나는 ‘애니메이션은 손으로’이다. 출판부, 사업부를 포함한 전체 직원 150명 가운데 60명이 작화실에 속한 인적구성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지브리도 <원령공주> 때부터 작업에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제작일지 1996년 1월16일치에 실린 일화 하나. “CG부가 간단한 CG를 만들어 보이자 미야자키 감독은 ‘굉장하다, CG부의 새벽이다’라고 크게 흥분했다. 이에 지금까지 미야자키로부터 ‘늦는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등의 얘기를 들었던 CG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무렵부터 CG에 대한 저항감은 사라졌지만, 지브리는 채색이나 데이터의 보존, 손으로 그리기가 불가능한 극히 일부 장면에서만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동작과 동작을 연결하는 프레임들을 포함해 그림 자체를 컴퓨터로 그리는 일은 절대로 없다. 손으로 그린 바탕그림을 스캔받아 컴퓨터로 채색을 하는 정도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경우 약 10만장이 이렇게 ‘손수’ 그려졌다. 애니메이션의 참맛은 손끝에서 나온다라는 것이 40여년간 애니메이션을 그려온 ‘장인’ 미야자키의 철학이다.

두 얼굴의 사나이

“10살 아이가 지브리 스튜디오에 들어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하면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구상했다.” 그의 아틀리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미야자키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프로듀서 스즈키를 보며 유바바를 떠올렸다고 했다. 유바바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주인공 센이 일하게 되는 온천장의 주인할멈. 악질 주인인 유바바는 그 외모에 걸맞게 종업원들을 마구 닦달한다. 유바바에겐 똑같이 생겼으나 다른 성품을 지닌 쌍둥이 언니가 있다. 유바바의 언니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던 말없는 귀신 가오나시를 받아들이고, 센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깨우쳐준다.

미야자키는 유바바의 캐릭터를 스즈키에게서 끌어왔다고 했지만, “내게서 나온 건 유바바의 큰 머리”라고 눙쳤지만, 정작 유바바를 닮은 건 미야자키 하야오 같다. 유바바 ‘자매’를 닮았다고 해야 더 옳겠지만 말이다. 미야자키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지브리에서 그는 스탭들의 창조력과 정신세계을 고양시키는 ‘영혼의 아버지’이자, 생산을 독촉하는 ‘악질 공장장’이다. 공장장으로써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지브리의 제작일지 몇 구절. “원화를 그리는 젊은 스탭이 지나치게 손이 늦은데 화가 난 미야자키 감독이 그를 회의실에 불러…”, “머지않아 작화 감독의 보좌 한 사람을 기용해야 하는데, 죄다 거절당한다. 미야자키가 무섭다는 게 업계에서는 전설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또 지브리 박물관에는 ‘지각의 제왕 Y씨’가 하야오에게 칼 몇대를 맞은 채 서 있는 낙서가 그 증거인 양 ‘보존’되어 있다.

물론 이건 ‘농담’으로 여길 만한 미야자키의 아주 작은 그림자다. 되레 스탭들의 푸념은 그를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 발딛고 선 일상인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도 마감기일에 쫓겨 후배들을 다그치지 않으면 안 되는 한 회사의 대장. 이러한 사실이 어쩐지 생경하게 느껴졌다.

다 함께 다이어트 작전에 돌입하고, 다 함께 개개 스탭 가족의 대소사를 염려하거나 축하하고, ‘지진이 났으니 영화를 완성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헛공상에 빠진 미야자키를 생뚱맞게 쳐다보며, 그리고 무엇보다 다 함께 모여 영화의 기획 방향을 몇 시간씩 토론하며 같은 꿈을 꿔온 지브리의 스탭들은 올 여름 신작 <고양이의 보은>을 내놓기 위해 독한 산고를 겪고 있다. ‘아이들의 왕’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렇게 험난해 보였다. 도쿄=이유란 fbird@hani.co.kr / 사진제공 웍 스튜디오 / 디자인 이윤진 yjklimt@hani.co.kr

사진설명

1-2. 주택가에 자리한 지브리 스튜디오는 건물이 아니라 무성한 나무 때문에 도드라져 보였다. 실제로 스튜디오가 세워진 뒤 이 일대는 더 푸르러졌다고. 지브리의 제 2스튜디오 옆에는 고압선이 흐르는 높은 철탑이 세워져 있는데, 그 탓에 땅값이 쌌다고 한다.

3. 스튜디오 옥상의 전원

4. 미야자키 하야오의 개인 사무실이 있는 제 3스튜디오. 파스텔톤의 예쁜 벽화는 미야자키의 아이디어다.

5. 1층에 자리잡은 작화실 내부. 그림을 컴퓨터로 스캔받아 채색작업을 하고 있다.

6. 올 여름 개봉할 지브리의 신작 <고양이의 보은> 포스터. 한 여고생이 베푼 은혜를 갚기위해 고양이가 소녀를 고양이나라로 데리고 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7. 센과치히로의 행방불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런 영화

이사를 간다는 사실에 풀이 죽은 10살 소녀 치히로는 새집으로 가던 중 엄마 아빠와 함께 음산한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 버려진 놀이공원 처럼 보이는 그곳의 한 식당에 차려진 음식을 마구 먹어댄 엄마 아빠는 돼지로 변하고 치히로는 엄마 아빠를 구하기 위해 귀신들의 온천장 주인할멈 유바바를 찾아가 일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유바바에게 이름의 일부를 빼앗겨 센이 된 치히로는 그곳에서 위기에 처한 치히로를 구해준 미남 소년 하쿠, 수줍고 말없는 ‘왕따’ 귀신 가오나시, 팔이 여섯 달린 가마할아범, 밥으로 별사탕을 먹으며 석탄을 나르는 숯검댕이이 등을 만난다. 이들과의 만남, 그리고 뜻하지 않은 상황들을 겪으며 치히로는 조금씩 철이 나고, 결국은 엄마 아빠를 구해내 이곳을 벗어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 탐방기

▶ 미야자키 하야오 & 스즈키 도시오 인터뷰

▶ 지브리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