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간 안방극장을 들뜨게 할 월드컵이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예년과 달리 심야나 새벽에 잠을 설쳐가며 봐야 하는 고생도 없다. 물론 경기장에 직접 가서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최고이지만, 한정된 경기장 수용인원과 만만치 않은 액수의 입장권을 생각하면 느긋이 TV 앞에 자리잡는 것이 실속있는 방법이다.
뭐니뭐니해도 TV중계가 지닌 최고 매력은 경기 내용보다 더 현란한 ‘추임새’와 ‘발림’을 펼치는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입담이다. 마치 횟집을 갔을 때 주요리인 회 외에 각종 전채와 매운탕 등이 더 입맛을 사로잡는 것처럼, 축구중계의 해설은 경기에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각 방송사는 이번 월드컵에 거액을 들여 영입한 스타 해설자와 아나운서를 내세웠다. 이번에 방송 3사에서 해설을 맡은 차범근, 허정무, 김주성, 신문선 등은 선수와 감독으로 쟁쟁한 명성을 떨쳤거나 아니면 해설자로 이전부터 연예인 못지않은 명성을 누린 주인공들이다.
어느 때보다 입심 경쟁이 치열할 이번 월드컵 ‘중계전쟁’에 스포츠 중계 보기를 밥먹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 바라는 것이 있다. 우선, 제발 이번 월드컵에선 눈앞에서 펼쳐지는 경기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싶다. 축구중계를 보다보면 때론 해설이 경기를 보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청자가 중계를 보면서 궁금한 것은 ‘저 팀이 왜 오늘은 상대의 오른쪽을 공략하는지, 이에 맞서 상대는 어떤 수비 전략으로 나왔는지’ 등등 눈앞에 펼쳐지는 경기상황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많은 축구해설은 정작 설명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말이 없다. 선수 체내의 젖산 농도가 어떻다든가, 스포츠 마케팅이 어떻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경기가 소강상태를 이루거나 하프타임에 해도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화면에서는 밀고 밀리며 한창 긴박하게 상황이 전개되는데, 해설자는 자신의 알고 있는 지식의 부피만을 자랑하는 데 여념이 없다면 이는 해설이 아닌 ‘현학적인 자아도취’일 뿐이다.
반대로 스포츠 캐스터의 보조 역할을 해설로 착각하는 모습도 보고 싶지 않다. 선수가 공을 잡으면 “저 선수는 소속이 어디이고, 연봉이 얼마이다”를 해설의 전부로 알거나, 논리적인 설명보다는 “안타깝네요.” “저렇게 하니까 안 되죠”라는 감정적인 수사를 최고로 여기는 모습은 ‘축구분석의 프로페셔널’에게 시청자가 기대하는 모습은 아니다. 잘되는 점은 왜 잘되는지, 안 되는 부분은 왜 안 되는지 시청자가 답답해하는 부분을 명쾌하게 풀어줘야 하는데, 시청자보다 더 흥분하고 열을 내면서도 왜 그렇게 흥분하는지에 대해서는 역시 설명이 없다.
과거회고적인, 자기과시적인 모습도 보고 싶지 않다. 선수나 감독 시절의 경험은 해설에 적절히 가미됐을 때 보는 재미를 증폭시키는 실감나는 조미료 역할을 한다. 하지만 조미료는 맛을 강조하는 데 그쳐야지, 지나치게 사용하면 오히려 경기의 참맛을 즐기는 데 장애가 된다. “제가 선수 때는…” 또는 “제가 감독을 할 때는 이렇게 했는데…”가 너무 자주 등장하면 시청자의 머리에는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저렇게 잘 아는 사람이 현역 때는 왜 그렇게 못했을까?’
경기에 대한 분석보다 승패결과나 득점에 대한 예측에 주력하는 점쟁이 역할을 해설로 착각하는 모습, 특정 감독이나 선수에 대한 거북한 인신공격도 해설자의 고유권한이라고 생각하는 독선적인 모습, 모든 상황을 자신이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아전인수격으로 우기는 모습도 역시 보고 싶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스포츠 중계의 핵심은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경기이지, 스피커로 들려오는 해설자의 입담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정도를 지키는 해설’이다. ‘1고수 2명창’이라고 해서 고수가 소리꾼 대신 부채 들고 소리를 하지는 않는다. 고수는 고수의 위치에서 소리꾼의 신명을 돋울 때 최고의 명성을 얻는다. 김재범/스포츠투데이 기자 oldfield@sports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