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머스 앤더슨의 전 작품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제인 셀러는 <펀치 드렁크 러브>를 둘러싼 의심스런 눈초리와 수없이 마주쳤다고 기억한다. “폴 토머스 앤더슨이 1시간30분짜리 영화를 만든다구? 근데 그게 로맨틱코미디란 말이지? 주인공이 애덤 샌들러야?”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 등 어둡고 격렬한 애증의 연대기를 즐겨 다뤘던 폴 토머스 앤더슨은 그러나, 그의 관심 영역과 재능의 스펙트럼이 그 이상임을 증명해 보였다. 사랑에 관한 동화적인 소품 <펀치 드렁크 러브>로 그를 둘러싼 선입견을 녹다운시킨 셈이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분신은 여전히 결함투성이고 애정 결핍이다. 그리고 가족은 여전히 그의 굴레다. 그렇지만 그는 이제 사랑으로 새로운 희망을 말하려 한다. 주인공 배리 이건은 노총각이다. 7명이나 되는 누이들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그는 여자와 변변히 데이트도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다. 비행 마일리지를 경품으로 준다는 푸딩을 사모으는 것이 유일한 낙. 말상대를 찾아 폰섹스를 시도했다가 하필이면 악덕 업체를 만나 공갈협박에 시달리게 된다. 그때 레나라는 이름의 여자가 나타나고, 배리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오래 전부터 당신을 좋아해왔다고, 당신과 키스하고 싶다고 말하는 여자 덕에 배리는 세상 앞에 당당히 설 용기를 얻는다.
애덤 샌들러와 에밀리 왓슨이 수줍고 서툰 연인으로 열연하는 <펀치 드렁크 러브>는 그들이 사랑에 빠지고 그로 인해 변해가는 과정을 시종 리드미컬하게 쫓는다. 무지개빛 파도가 화면 가득 몇번인가 일렁일 때, 아이처럼 천진한 목소리가 ‘He needs me’라고 노래할 때, 저절로 몽환적이고 로맨틱한 감정의 파도에 몸을 싣게 된다. 폴 토머스 앤더슨은 격정으로 휘몰아치는 그의 필모그래피 속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그렇게 인상적인 쉼표 하나를 찍었다.
미국 감독으로 칸의 초대를 수락하는 데 고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__초대를 받아들이는 데 무슨 고민이 필요하겠는가. 칸에 오는 것은 감독에게는 엄청난 특혜이자 영광이다. 너무나 바라던 일이었다.
__ (애덤 샌들러) 처음 칸에 왔는데 마치 예술의 성전에 와 있는 기분이다. 너무 자랑스럽고 기쁘고 어젯밤에 아주 푹 잘 잤다.
<펀치 드렁크 러브>라는 제목의 뜻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웃음을 참으며) 미국말로 ‘펀치’는 한방 맞는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뜻이다.
이전 영화에 비하면 한결 로맨틱해졌다.
__처음 구상할 때 푸딩 같은 느낌의 영화를 떠올렸다. 또 영화의 출발점에는 에밀리 왓슨과 같이 일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 이번에는 일반 영화들처럼 1시간30분에 맞추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로맨틱한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다.
__ (에밀리 왓슨) 내가 맡은 캐릭터는 아주 쉽게 사랑에 빠져버린다. 이 역을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 더이상 영화에서 울고 죽어가는 역할을 맡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현실의 내가 그대로 있으면 되는 역할이었다.
코미디 배우 애덤 샌들러와 어떻게 같이 일할 생각을 갖게 됐나.
__애덤은 계속 사람을 웃게 만든다. 너무나 훌륭한 연기자다. 걷는 모습이나 얼굴 표정, 귀모양조차 너무 웃긴다. 아마 벌거벗은 모습도 웃길 거다.
주인공은 늘 혼자다. 그 설정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__내가 워낙 슈퍼마켓에 혼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폰섹스도 즐긴다. (웃음)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되는 영화는.
__를 가장 섹시한 영화로 생각한다. (웃음)
좀전에 폰섹스를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영화를 보면, 폰섹스 때문에 봉변을 당한다.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었나.
__그런 의도는 없었다. 단지 주인공이 놓인 억눌린 상황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주인공은 자란 환경 때문에 표현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제대로 표출을 못하는 인물이다.
__ (애덤 샌들러) 이 남자가 폰섹스를 시도한 것도 단지 외부를 향해 자신을 열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소통의 어려움이 표현된 것으로 생각된다.
폰섹스라는 것이 결국 사회 억압에 짓눌린 개인을 드러내는 장치로 보인다. 결국 소통의 어려움을 다룬 전작 <매그놀리아>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이 아닌가.
__<매그놀리아>와 같은 주제를 다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뭘 정확히 말하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다.
(프로듀서에게) 당신은 <부기 나이트>와 <매그놀리아>의 프로듀서다. 이번에는 감독에게 영화를 짧게 만들라고 강요하기라도 했나.
__폴은 <부기 나이트> 이후에 짧은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고는, 시나리오만 180쪽에 달하는 <매그놀리아>를 가지고 온 사람이다. 나는 감독에게 뭘 요구하거나 컨트롤하려 들지 않는다.
이번 영화에선 사운드를 사용한 방식이 독특하다.
__존 브라이언이 음악을 담당했다. 사운드 계획은 초반부터 촘촘히 세웠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사운드가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촬영현장에서 들리는 소음들, 기차소리, 공장에서 나오는 소리, 새소리 등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런 모든 요소들을 모아서 결국은 코미디뮤지컬 효과를 내고 싶었다.
고독이 영화의 주제로 보인다. 주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동화 같은 방식이다.
__이 영화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 놓인 영화다. 고독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외로움이 밀려오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영화를 만들면, 여러 사람들 속에서 함께 일할 수 있으니까.▶ 칸영화제 5월26일 폐막, 황금종려상에 <피아니스트>
▶ 칸 이모저모 & 칸에서 온 기억할만한 말들
▶ 제 55회 칸 영화제 수상작(자)들(1)
▶ 제 55회 칸 영화제 수상작(자)들(2) - 로만 폴란스키(황금종려상)
▶ 제 55회 칸 영화제 수상작(자)들(3) - 아키 카우리스마키(심사위원 대상)
▶ 제 55회 칸 영화제 수상작(자)들(4) - 폴 토머스 앤더슨(감독상)
▶ 사진으로 보는 칸의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