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화선>은 그의 98번째 작품이다. 장승업의 삶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이 프레스코화에서 임권택 감독의 자화상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화타이틀부터 임권택 감독은 전 작품을 통해 보여지고 감독 자신이 주장하는 한국적인 비전을 숨기지 않는다. 또 예술가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그가 취해야 할 자세가 어떤지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담겨져 있다.
술 취함과 섹스는 종종 이해받지 못하거나 자주 주변부적이거나 선동적인 것으로 이해되거나, 또 항상 혁신적이면서 새로운 축을 형성했던 예술세계의 원동력이다. 예술은 서민적이거나 쾌락적이어야 했다. 술과 여자가 없이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19세기 오원의 위치는 한 세기 뒤에 임권택이 차지하는 위치에서 멀지 않다.
오원은 스타일에서의 독창성과 세련미와 적당히 영합하면서도 광폭한 기운을 드러내는 그의 그림에서의 표현성으로 모든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 임권택은 오원의 소박한 후계자 중 한 사람이다. 가장 단순한 장면을 찍기 위해서 감독 역시 아름답고 젊은 여인이 부어주는 술을 필요로 했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오원이 그랬듯이 임권택의 연출은 한국영화 역사에서 한획을 긋는다. 임권택은 논의의 여지가 없이 두 미학 사이에 존재한다. 이것이 아마도 그의 연출이 이곳에서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와, 다른 한편으로는 왜 현대성을 원하는 관객이 매번 그의 영화에 여전히 기대감을 갖게 되는지를 설명해준다.
임권택 감독은 전혀 아카데믹한 감독이 아니다. 우리는 그 나이 또래의 어떤 프랑스 감독이 그 같은 탐욕을 가지고 이 영화의 중요한 순간을 차지하는 정사장면을 묘사할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다. 또 이 정사장면들을 역사적인 장면들과 교차시킨 것은 대단한 용기다. 임권택의 이 작품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거대한 규모의 시대극이 유발시키는, 짓누르는 무게감을 거의 의식할 수 없다. 그러나 감독이 이런 대작을 만들면서 간직할 줄 알았던 자유로움을 일단 인정하고 난 뒤 봤을 때, 임권택의 스타일이 그렇다고 급진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장면장면마다 감독은 확고하고 일관성 있는 감독으로 실력을 드러낸다. 외설꾼 또는 색광의 탈을 쓰고 감독은 자신의 연출 수완을 감추기도 하고, 몇몇 단조로운 장면으로 자신의 솜씨를 은폐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늙어가면서 가끔 우리를 감동시키기도 하는 ‘불멸의 서민적이고 취기어린’ 예술가를 보게 된다.
필립 아주리, <리베라시옹> 2002년 5월27일치 기사 중에서
▶ 임권택을 바라보는 다섯개의 시선
▶ 미셸 프로동의 특별기고
▶ <르몽드> 장 프랑수아 로제
▶ <리베라시옹> 필립 아주리
▶ 샤를 테송의 <춘향뎐>론
▶ 데이빗 제임스의 ‘임권택: 한국 영화와 불교’
▶ 사토 다다오의 ‘한국 영화와 임권택’
▶ 임권택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