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작가로서 임권택이 걸어온 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특수한 역사 사회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2차대전 이래로 제3세계 국가에서 예술영화가 개척되온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받아들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식민시대 이전 자국의 고유 문화를 영화에 끌어오는 것이었다. 임권택 감독의 경우 후자에 속한다. 박정희 정권이 집권했던 1960년대와 70년대 검열시대에 임권택은 소규모 스튜디오에서 기술자에 가깝게 상업적 영화들만을 만들었다. 그 후 박정희 정권이 물러난 뒤 1980년대 ‘민중’시대가 도래했을 때는 이미 그의 나이가 50이 넘어버린 뒤여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불었던 ‘작은영화운동’에 가담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임권택 감독이 택한 길이 바로 현대 한국을 식민시대 이전의 민족문화를 통해 고찰하는 것이었다.
임권택의 영화세계는 ‘결핍’과 ‘복원’이라는 모티브로 설명된다. 그는 식민시대 이전 한국의 고유문화를 탐구함으로써 ‘잃어버린’ 것을 ‘되살려내는’ 일에 골몰한다. 잃어버린 것은 바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 임권택은 한국이라는 모국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식민시대 이전, 즉 유린되기 이전 한국문화를 답사하는 것이다. 한국 고전 문화를 탐구함과 동시에, 한국문화의 주요 코드인 여성과 자연풍경은 임권택 영화의 주요 코드가 된다. 임권택이 1980년대 초반과 후반에 만든 두 편의 불교영화 <만다라>와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산 속의 금욕생활과 속세 안의 어울림 중 무엇을 택해야 하나 하는 동일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각각의 영화에서 주인공 두 승려 중 한 승려는 산 속에 남아 참선 수행을 계속하며 다른 한 승려는 속세로 떠난다. 정일성 촬영감독이 그려내는 수려한 산 풍경이 승려의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가운데, 두 편의 영화에서 승려의 속세행을 촉발하는 것은 모두 성적 욕망이다.
임권택 감독의 불교영화는 선불교에 대한 휴머니즘적 비판을 담고 있어, 선불교의 교리와 긴장관계를 이룬다. 그것도 감동을 부르지만, 임권택 불교영화의 매력은 불교에 대한 비판보다는 불교를 한국 고유의 문화로서 전시하는 데서 기인한다. 휴머니즘적인 사회의식의 집약체인 동시에 매우 이국적이면서 참으로 에로틱한, 즉 ‘동양화된’(orientalized) 어떤 것이 임권택 감독의 불교영화에서는 한국적 문화로서 빛을 발한다.
이 글은 데이비드 E. 제임스와 김경현이 공동으로 편집해 2002년 미국 웨인 스테이트 출판사에서 나온 책 에 수록된 데이비드 E. 제임스의 논문 ‘임권택: 한국 영화와 불교’을 발췌, 요약한 것이다. 데이비드 E. 제임스는 미국 USC 이론과 교수로, 아시아 영화가 주요관심사다. USC에서 임권택영화제를 기획하고 우리나라 영상원에서 객원교수를 지낸 경력도 있는 제임스 교수는 제자이자 동료인 김경현 교수와 함께 2002년 임권택 연구서적을 펴냈다.
▶ 임권택을 바라보는 다섯개의 시선
▶ 미셸 프로동의 특별기고
▶ <르몽드> 장 프랑수아 로제
▶ <리베라시옹> 필립 아주리
▶ 샤를 테송의 <춘향뎐>론
▶ 데이빗 제임스의 ‘임권택: 한국 영화와 불교’
▶ 사토 다다오의 ‘한국 영화와 임권택’
▶ 임권택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