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햐흐로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전례없는 분산(공동이라 부르기 쑥스러운) 개최라는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올림픽 이후 이렇다 할 국제적인 이벤트가 없었던 상황이라서 온 국민의 관심은 오직 월드컵에만 쏠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월드컵이 가까워오면서 한국 대표팀이 예상을 뛰어넘는 평가전 결과를 보여준 이후, 한동안 불지 않을 것 같아 보였던 월드컵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문제는 이런 세계적인 이벤트로 인해 영화산업이 전반적으로 위축된다는 사실. CGV가 고객 설문조사를 토대로 월드컵 기간에 관객이 30% 정도 줄 것이라고 예측했으며 월드컵 기간에 개봉될 영화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소식은, 영화계에 대한 월드컵의 여파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월드컵이 열리기 이전에는 월드컵을 기회로 삼아 한몫 잡아보려는 영화들이 개봉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주성치의 <소림축구>와 영국판 <교도소 월드컵>으로 불린 <그들만의 월드컵>이다. 그중 주성치의 스타 파워에 힘입은 <소림축구>는 예상한 만큼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한 반면, 다소 생소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그들만의 월드컵>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간판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열성적인 붉은 악마라면 할리우드식 SFX를 동양적으로 소화해 만화 같은 축구시합을 그려낸 <소림축구>보다는, 축구경기를 사실적이면서도 흥미롭게 그려낸 <그들만의 월드컵>을 더 인정해줄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과거 영국 프로리그에서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던 비니 존스가 그 영화의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 때문이다.배우로는 물론이고 축구선수로서도 별로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니 존스는, 생각보다 많은 영화를 통해서 우리 관객에게 소개된 인물이다. 첫 영화데뷔작인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에서 말없이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드는 빅 크리스 역으로 등장해 주목받은 것으로 시작해, 에서도 말이 없는(제일 마지막에 딱 한마디의 말을 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자동차 절도범을 등장했던 것. 그렇게 할리우드에서 신고전을 치른 뒤 <록 스탁…>의 감독인 가이 리치가 할리우드에서 만든 <스내치>에도 출연했는데, 별반 중요한 역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내치>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를 인상깊게 본 이들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그에게 <스워드 피쉬>에 출연을 제의한 존 트래볼타였다. 이렇게 주로 인상적인 조연으로 영화계에 성공적으로 입성한 그가 본국인 영국으로 돌아와 처음 주연한 영화가 바로 <Mean Machine>이라는 원제를 가진 <그들만의 월드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준 약간은 쿨한 모습만 보고 그를 100%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 무엇보다 1986년부터 시작되어 1998년까지 계속된 프로 축구선수로서의 그의 경력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프로 데뷔 3년째 되던 해부터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그는, 소속 구단을 우승시키거나 상위리그로 입성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축구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영국 프로 축구 최고의 스타가 되었기 때문. 주목할 것은 그런 인기 뒤에는 역시 그의 다소 딱딱하고 폭력적인 이미지가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런 자신의 이미지를 잘 관리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경기중에 상대편 스타플레이어의 성기를 움켜잡아버린 1987년의 ‘황당한’ 사건은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 관리전략(?)을 잘 보여준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게 스타 플레이어로서 대중적인 인기를 한몸에 받기 시작한 시점에서, 그는 연예계에 대한 자신의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예계 진출 의사를 밝혔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려 노력했던 것. 그런 노력의 첫 단계로 그는 우선 딱딱하고 폭력적 이미지 위에 이성적인 면을 덧붙이기 위해 무려 6년간 <Sun>에 칼럼을 기고했다. 그리고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 <앨링턴>에 단역으로 출연함으로써, 서서히 ‘배우’로서의 비니 존스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노력은 에 출연한 그의 모습을 가이 리치 감독이 인상적으로 본 것이 계기가 되어, <록 스탁…>에서 빅 크리스 역을 맡게 됨으로써 결실을 맺었던 것. 그렇게 성공적으로 연예계에 입성한 그는 TV와 라디오에서 자신만의 쇼를 진행하는 등 다방면에서 자신의 끼를 드러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에도 강호동이나 강병규 같은 스포츠스타 출신의 연예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니 존스의 성공기는 지켜보는 이들, 특히 영국의 축구팬들에게는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는 듯하다. 인터넷의 그의 팬사이트들에 가보면, 축구선수 비니 존스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영화배우 비니 존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변신에 대한 그런 팬들의 성원에 대해 그는 얼마 전 <나쁜 녀석의 고백>이란 자서전을 펴내 보답했다. 세상은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이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그의 자서전이 힘차게 외치고 있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평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사진설명
1. 비니 존스 공식 홈페이지.
2. 청년기 축구선수로 막 이름을 날릴 무렵의 비니 존스.
3. 할리우드에 와서 두 번째로 찍은 영화 <스내치>에서의 모습.
4. 비니 존스는 영국 최고의 프로 축구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5. 처녀작인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비니 존스.
6. 비니 존스의 최근작 <그들만의 월드컵>.
7. 비니 존스의 자서전 <나쁜 녀석의 고백>.
비니 존스 공식 홈페이지 http://www.vinniejones.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