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쯤 전에 문을 닫아버린 동네 비디오가게의 처분 비디오를 가슴아픈 심정으로 열개 이상이나 사두었던 나는, 사실 그 비디오 뭉텅이를 방구석에 버려둔 채 지금까지 한개도 보지 않고 있었다. ‘쟤들은 영원히 내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안일하게 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델리카트슨>을 집어드는 데도 오랜 반성과 망설임이 필요하였으니, 아, 역시 나 같은 이에게 소유란 과분하고도 위험한 것이었나.
비디오 케이스는 딱딱하게 굳어 몇초간 용을 쓴 뒤에야 탁 소리를 내며 벌어졌다. 그러나 그 안에서 오랫동안 빛을 보길 기다리던 비디오는… 정말로 난데없는, <외계에서 온 우뢰매>였다!! 비디오를 판 건 주인아저씨가 아니라 임시로 장사하러 온 아저씨였고 게다가 사간 다음날도 아닌 한달이 넘은 시점에서 <외계에서 온 우뢰매>를 프랑스영화로 바꿔달라고 한들 우스워지는 건 나뿐일 게 확실했다.
그래서 나는 <…우뢰매>를 봤다. 생각해보니 그건 한때 내가 정말로 보고 싶어하던 영화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를 졸라 백화점 꼭대기 극장엘 갔다가 ‘매진’이라는 생소한 단어 앞에 힘없이 돌아섰던 아쉬움은 ‘우뢰매 바’인가 하는 하드로 대체될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에 TV에서 방영할 때 이미 내 마음은 식은 상태였다. 과거에 나의 손길을 피해갔던 <…우뢰매>는 16년 만에 부메랑처럼 내게로 돌아왔다. 결국 이번에도 졸다가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했지만, 뭐 어떠랴. 이제 <외계에서 온 우뢰매>는 영원히 나의 것인데 말이다. 하하. 손원평/ 자유기고가 thumbnail@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