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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MBTI vs 사주’

기획 단계에서 재미있을 거라 믿었던 아이디어가 막상 구체적 결과물로 만들어졌을 때 이도 저도 아니었던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하지만 지난 수년 사이 적어도 10대에서 40대 사이에서 보편적 스몰 토크 주제로 자리 잡은 ‘MBTI’(성격유형지표)를 본격적으로 파고들어본다면 의미까지는 몰라도 재미는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티빙 오리지널 <MBTI vs 사주>는 출연자 150명에게 자신의 사회적 가면을 상징하는 종이봉투를 씌운 다음 한자리에 모아 여러 가지 상황에 반응하게 만드는 대규모 실험 다큐멘터리를 지향한다. 그런데 사주는 MBTI만큼 온갖 상황에 재미 삼아 응용되는 틀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축이 기울고, 맛도 없으면서 너무 많이 올라간 고명 같은 키워드 ‘MZ세대’가 자꾸 강조되는 바람에 방향성은 한층 더 흐트러진다. MZ세대가 사주에 빠진 이유는 “스펙 경쟁에 내몰리다 보면 자아가 증발하므로 자신에 대해 알고 싶은 절박한 요구 때문“이라거나, 스튜디오에 음악을 튼 다음 “춤을 출 유형은 E(외향형)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전문가 멘트에선 어떤 전문성도 찾을 수 없다. 슬픈 영상을 보여준 뒤 울지 않는 사람은 ‘극T(사고형)’라고 진단하거나 약속 시간을 엄수하는 사람 중 사주의 ‘정관’ 보유자가 많았다는 식의 실험은 엄정하지도 신선하지도 않다. 서로의 MBTI와 사주를 모른 채 종이봉투를 쓰고 진행되는 짧은 소개팅 역시 토요일 오후 강남역 스타벅스 옆 테이블에서 이루어지는 어색한 대화를 엿듣는 것보다도 지루하다. 결국 <MBTI vs 사주>의 근본적인 문제는 특별히 재미있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출연자들을 모은 다음 사주와 MBTI에 끼워맞춰 캐릭터와 서사를 부여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물론 MBTI가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해석(당)하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과 함께 급부상했음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CHECK POINT

“친구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T와 F(감정형)의 반응 차이”, “J(인식형)와 F가 함께 여행을 간다면?” 같은 게시물은 지겹지만 사람들이 일상에서 MBTI를 가지고 노는 익숙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MBTI vs 사주>에서는 사주의 ‘식상생재’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출연자에게 갑자기 주인이 자리를 비운 붕어빵 노점을 맡겨버린다. 이렇게 비현실적 상황에 어떻게 이입할 수 있을까? 큰 틀에서 어긋난 기획을 수습하려다 보면 더해지는 것은 무리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