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었다. <당신께>는 같은 제목으로 독자들에게 보내던 뉴스레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편의 글이 한통의 편지가 되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공들여 쓴 글이다. 그의 글은 술술 읽히면서도 왠지 쓸쓸하다가 웃기고 힘이 나곤 한다. 책을 펼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페이지가 슬금슬금 넘어가는 바람에 열심히 오랫동안 만든 음식을 한입에 홀랑 먹어버린 것만 같았다. 괜히 감자튀김 봉투를 뒤집고 손가락을 한번 빨게 되는 기분이다. 항상 그랬지만 유독 이번에 더 그렇게 느낀 것은 왜일까. 정확한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전자책으로 읽었던 것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새로 산 아이패드에서 전자책으로 보는 <당신께>는 놀라웠다. 두쪽을 모아 읽으니 작은 크기의 책을 펼친 것과 비슷해서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화면의 해상도나 터치에 반응하는 것도 내가 알던 것보다 자연스러웠다. 한편의 글이 보통 두어 페이지 정도였기 때문에 편지 한통을 한 화면에 볼 수 있는 것이 좋았고, 마지막에 남기는 유머러스한 인장이 화면의 끝에 잘 정렬되어 완결성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아, 이래서 태블릿PC를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억눌렀던 도서 구입 욕구가 조금 차올라서 이것저것 결제를 했다.
몇권의 책을 구입해서 이래저래 들여다보고 나서 알게 된 것은 전자책에 PDF와 EPUB가 있다는 것. PDF는 문서 파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원본 책의 서식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디지털화가 되어 글씨 배치를 바꿀 순 없지만 책 위에 마음대로 줄을 긋거나 글씨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PUB는 글씨 크기나 서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동안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전자책 구매 페이지 위의 구분이 뚜렷하게 보인다. 교과서나 논문이라면(실제로 논문을 구매할 일은 없지만) PDF 형식도 좋겠지만 역시 직접 읽는다면 EPUB가 좋겠다.
하지만 전자책에 홀딱 빠져버렸던 처음과는 다르게 지금은 살짝 열기가 식어버렸다. 첫 체험 이후로 상대적으로 조악하게 편집된 책을 연달아 보고 있다보니 아쉬움이 크다. ‘자간을 좀 벌리고 싶은데 이런 건 조절이 안되나’ 싶기도 하고, ‘굳이 이런 모양으로 전자책을 낸다면 종이책을 스캔한 거랑 뭐가 다르지’ 하는 책들도 있었다. 역시 새로운 틀에 무엇인가를 담는 것은 또 다른 방식의 창작과 제작 방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께>를 보면서 느낀 어떤 형식적인 아름다움도(내용도 아름다웠습니다!) 누군가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오지은 작가와는 인디 신에서 비슷한 시기에 음악을 발표하고 활동해왔다. 이제 음반은 끝났어 하던 시기에 용감하게 자체 제작 앨범을 내 직접 판매하며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디지털 세상으로의 변화 속에서 음악을 해오면서 시대의 변화에 나름 맞추어가면서 애써왔던 시간도 있었다. 작가로 활동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곤 했었는데 같은 연재처(<씨네21>입니다. 하하)에서 연재를 하게 되어 뿌듯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나 역시 ‘노래가 끝났지만’의 연재를 마무리하게 되면서 그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기쁘다.
<씨네21> 연재는 나에게 분에 넘치는 기회였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의 글을 실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연재를 해왔던 것은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글이나 노래나 통하는 바가 없지는 않겠지 하고 나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점이 더 많았고, 연재 내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모자란 내용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틀을 갖추어 세상에 나올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귀한 자리를 기꺼이 내어준 <씨네21>과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NONE> - 오지은
모든 것은 지나가 갖고 있고 싶은 것들
비루한 나를 남겨두고 모두 지나가네
아주 가끔 세상이 명료하게 보일 때가 있지
비루한 나의 눈에도 아주 잠시뿐인
눈을 뜨고 오늘 하루도 힘들고 산다는 것은
무얼까 나는 이제 할 말이 없어 아름다움
속에서도 무정함 속에서도 나는 이제
허무함을 노래해 피고 질 것을 노래해
열심히 삶을 노래해 죽 노래를 해
아주 가끔 세상이 살 만하게 보일 때가 있지
비루한 나의 눈에도 아주 잠시뿐인
눈을 뜨고 오늘 하루도 무사했어 살아 있는
건 무얼까 나는 이제 할 말이 없어 아름다움
속에서도 무정함 속에서도 나는 이제
눈을 뜨고 오늘 하루도 무사했어 살아 있는
건 무얼까 나는 이제 할 말이 없어 아름다움
속에서도 무정함 속에서도 나는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