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은 마포구 성산2동이다. 강변북로쪽으로 한강을 따라 걷다보면 망원동 유수지에서 난지천 공원 사이로 물길이 이어지는데, 산책길을 따라 올라오면 마포구청역 앞에서 홍제천과 불광천으로 나뉜다. 정확히 말하면 홍제천과 불광천이 만나서 한강으로 흘러가는 것이겠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커버에 나오는 망초 수풀이 그 앞에 있다. 거기서 왼쪽으로 가면 불광천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홍제천이다. 성산2동은 그 사이에 위치한 동네다.
이곳에 처음 온 것은 밴드를 결성하고 처음 섭외된 ‘월드 DJ 페스티벌’(아직도 하고 있나?)에 서기 위해서였다. 일행과 함께 마포구청역에 모여서 난지공원으로 갔는데 그것이 이 동네에 처음으로 온 순간이다. 밴드의 첫 번째 패션지 화보 촬영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이제는 완공이 된 월드컵 대교의 교각만이 외로이 서 있던 시절, 그곳의 중간 계단에서 평생 입어볼 일이 없을 옷들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비가 왔었고 반바지에 발에 맞지 않는 번쩍이는 운동화를 착용해야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게 처음 방문한 난지 한강공원은 이후에 음악 페스티벌의 단골 장소가 되면서 자주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성산동에서 일만 한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아이도 키웠다. 홍제천과 불광천을 따라 아이를 안고 산책하곤 했었다. 때로는 한강쪽으로 걸어가기도 하고 더러는 반대편으로 가보기도 했다. 칭얼거리며 잠투정을 하던 아이도 홍은동쯤 지날 때면 노곤해져서 잠이 들곤 했다. 돌아오고 나서는 나 역시 흐물흐물해졌지만. 자전거를 타고 갔을 때는 조금 나았다. 사천교에서 길을 건너 내려와 연남동 구석에 있던 작은 카페 왕창상회에서 아기 띠를 풀지도 못하고 커피를 마셨다. 카페는 자리를 한번 옮겼고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조금 더 큰 뒤에는 월드컵공원을 자주 갔다. 경기장 근처의 광장에서 자전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기도 했고, 평화의 공원쪽 놀이터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흙을 파기도 했다. 우리 집은 언덕 중간에 있어서 어린이집을 갈 때면 종종 목마를 하고 걸어야 했고, 소아과는 주로 시영아파트 상가쪽으로 갔다. 서교동으로 이사 오기 전에 잠시 시영아파트에서 살기도 했다. 오래된 아파트에는 나무가 많고 봄에는 꽃가루가 흩날리곤 했다. 장마철에 베란다 배수관이 막혀 침실에 물이 흘러내릴 때도, 에어컨이 없어서 창을 열고 여름을 보내면서도 좋았던 풍경들 몇 가지는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SNS에 내 기억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그림을 보게 되었다. 늘 다니던 홍제천의 교각과 산책로가 보이고, 익숙한 담벼락과 골목들이 그곳에 있었다. 마침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생각과 감상을 담은 노래를 만들고 있던 차였는데, 괜히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미처 제때 누르지 못했던 셔터를 누군가 눌러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좋았던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그만큼 힘든 일은 더 많았고, 돌아보면 정신없는 와중에 찍은 몇 안되는 흔들린 사진만 남아 있었는데 흐릿하고 모호했던 추억의 일부가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괜한 반가움에 그림을 그린 반지수 작가님을 팔로했다. 그리고 곡이 완성되고 난 뒤에 앨범 커버 작업을 하고자 연락을 드렸다.
나는 노래를 만들 때 구체적인 그림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로 속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기도 하거니와 너무 직접적으로 특정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바로 그 모습을 담을 수 있다면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작가님도 지금은 다른 곳에서 살고 계시다고 한다. 하지만 한때 같은 동네에 살았던 이웃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참 즐거웠다. 동네의 어떤 곳이 어떤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를 업고 걸었던 홍제천이 이 노래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곳인지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 나도 알지 못했던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더 잘 알고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쩌면 이번에 반지수 작가님의 그림을 보면서 느꼈던 마음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가 누군가에게는 잊고 지내던 바로 그 순간을 찾아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노래를 만들면서 조금은 그랬던 것 같다.
<너를 업고> - 브로콜리너마저
너를 업고 동네 길을 걷는다
너는 잠깐 잠이 들었나 하고 돌아보면
한 바퀴 도는 사이에
너는 다 큰 아이가 되었네
달콤했던 꿈은 어디로 갔나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꿈나라를 건너가는 너
어떤 것도 너를 막지 못하지
나는 바람이 되어 너를 날려보낼게
너를 업고 동네 길을 걷는다
나도 잠깐 잠이 들었나
나는 다 큰 아이가 되었네
포근했던 등은 어디로 갔나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꿈나라를 건너가는 너
어떤 것도 너를 막지 못하지
나는 바람이 되어 너를 날려보낼게
내가 그렇게 날아온 것 처럼
너를 업고 노래를 부른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기를
너는 다 큰 아이가 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