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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 리뷰 - 올리비에 세그레
2002-05-31

늙은 쾌락주의자들을 위한 찬가

<죽어도 좋아>는 두 노인에 관한 영화다. 여자는 배꼽까지 늘어지는 가슴을 가졌고, 남자는 이빨 하나에 대머리다. 이 둘의 나이를 합하면 150에 육박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이제까지 보아온 연인들 중에 가장 멋진 아담과 이브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는 늙어가는 동안에 만났고, 결합했다”라는 사실주의 톤의 자막이 나오는데, 여기서 ‘결합하다’라는 말은 사물의 진정한 결합, 즉 성경의 의미와 섹스의 의미와 동물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두 노인이 섹스에 탐닉하는 장면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들은 늙고 추한 색광이 아니다. 그저 ‘늙은 감각의 제국’에 속해 있는 태초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빛나는 사랑을 하고 있다. 그들은 아주 가끔씩 정숙하다. 그건 남자가 여자에게 글을 가르치고, 여자가 남자에게 민요를 가르칠 때다. 그 노래는 이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영화의 감동적인 모티브를 이룬다. 영화의 이미지에 리듬을 주고, 로맨스톤에 회오리 같은 움직임을 가져다준다.

<죽어도 좋아>는 한국감독 박진표의 첫 장편이자, 첫 픽션영화이다. 감독은 이미 <사랑>이라는 TV다큐멘터리에서 이 커플을 촬영한 바 있다. 이번에는 그들의 만남을 시적이지만 극사실주의적인 이야기로 꾸며나간다. 그리고 그들을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즉 비전문배우로서 자기 자신의 실제 역할을 구현하는 것이다. 감독은 최소한의 숏과 저자본으로 관객이 결코 관음주의자가 되지 않게 하고, 사생활 침입의 공모자가 되지 않게 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것과 느끼지 않는 것을 넘어선 사랑의 행위와 유대관계를 갖도록 해준다. 이 영화의 정사신들은 꾸며진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눈앞에서 활짝 피어나는 것은 아주 강한 허구적인 무게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더럽혀지는 것이 아니라 정화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관객 각자가 머릿속에 그리기를 거부하고자 하는 하나의 스펙터클(나이 든 부모의 사랑행위를 보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단순화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 박진표가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랑의 모습은 유유자적하지 않다. 사랑이라는 것은 가장 숭고하고, 섬세하고, 최고 우위에 놓인 인간 행위이다. 그의 영화는 에로틱한 빛을 발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찬사이다. 두 노인은 서로 애무를 하고 오럴섹스를 하고 삽입을 하고 틀니를 낀 입으로 키스를 한다. 그들은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즉 죽어가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비결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섹스를 하고, 또 하고, 거의 매일, 그리고 가끔씩은 하루에도 여러 번씩 한다. 그들은 나이 든 벌거숭이 아이들처럼 보이고, 상상 속에나 존재할 법한 앙상하고 늙은 짐승처럼 보인다. 피부는 땜질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골이 패어 있고, 전희에는 생기가 없고, 섹스 행위에는 말이 많다. 그렇다면 퇴직과 양로원, 요실금 만세라고 외쳐야 할 것인가? 아니다. 늙은 돼지들(쾌락주의자들이란 뜻. 불어로 ‘돼지’에 ‘색골’이란 의미도 있음) 만세, 라고 외쳐야 할 것이다. (<리베라시옹> 5월20일치 기사)

사진설명

<죽어도 좋아>의 박진표 감독이 <카이에 뒤 시네마>와 인터뷰하는 모습

▶ 제55회 칸의 한국영화들, 열띤 취재공세

▶ 전세계 주요 언론들의 경쟁부문 상영작들에 대한 별점

▶ <죽어도 좋아> 리뷰 - 올리비에 세그레

▶ 영화평론가 정성일, 칸으로부터의 두번째 편지(1)

▶ 영화평론가 정성일, 칸으로부터의 두번째 편지(2)

▶ 영화평론가 정성일, 칸으로부터의 두번째 편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