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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블록으로 먼저 보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4, 5, 6
2002-05-30

장난감이 아니다, 예술인 게다

세상에는 참 희한한 방법으로 엄청난 가치를 창출해낸 사례들이 많이 있다. 누구나 무료로 다운받아 쓸 수 있는 Linux라는 OS를 CD에 구워서 몇 가지 설명서와 함께 박스에 담아 파는 황당한 사업으로 일약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회사로 주목받은 Red Hat이나, 약간의 탄산가스를 넣은 설탕물을 ‘콜라’라는 이름으로 팔아 천문학적인 이익을 남기는 코카콜라 같은 회사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런 경우 대부분은 남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도를 과감하게 할 수 있는 창의적인 기업가와 그 시도를 자연스럽게 뒷받침해주는 이른바 ‘운대’가 맞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한 벽돌모양의 플라스틱 장남감 하나로, 지난해 무려 1조6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긁어모으고 그중에서 660억원을 이익으로 남긴 레고사도 그런 전형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1932년 덴마크의 작은 마을에서 한 목수가 우연히 만들어낸 벽돌 모양의 나무 장남감에서 시작된 레고는, 지난 70년간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인구가 한 사람당 적어도 52개씩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양만큼의 레고 블록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 집에 레고 한 세트 정도 없는 아이들은 없었던 것 같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도 두돌이 지난 아들 녀석이 가지고 노는 레고 ‘집놀이 세트’의 부속들이 여기저기 나굴고 있으니, 52개라는 말이 그리 과장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흔하디 흔하고 너무나 뻔해 보여서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간단한 장난감으로 그런 떼돈을 벌 수 있었을까 의아해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조차 일순간 숨을 죽일 때가 있으니, 바로 레고로 만들어진 거의 ‘예술품’에 가까운 작품을 마주쳤을 때다. 단순한 사각형 블록인 레고가 엄청난 성공을 일궈낼 수 있었던 이유가, 다름 아닌 인간의 원초적인 창의력을 극대화시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그런 ‘예술품’들이 잘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2>의 미국 개봉을 즈음하여 레고의 그런 위력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웹사이트 하나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주인공은 후지타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인이 만들어놓은 이른바 ‘레고 <스타워즈> 삼부작’ 사이트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최신작인 <에피소드1>이나 <에피소드2>를 다루지도 않고 있는 이 사이트가 주목을 끈 이유는, 레고 블록들을 이용해서 <스타워즈> 에피소드 4, 5, 6의 중요 장면들을 그대로 재현한 사진들을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각 에피소드별로 60여개씩 공개되어 있는 그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탄성이 저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도저히 레고 블록으로 그 장면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아서도 그렇지만, 사람 모양의 레고 블록들로 만들어진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너무 귀엽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후지타라는 일본인이 이 180여개의 사진을 찍기 위해 1992년부터 무려 155주 동안 혼자 작업했다는 사실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약 2500시간을 쏟아부어 1996년에야 사진들이 완성될 수 있었고, 1999년이 되어서야 사진들을 정리해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일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후지타는, 자신의 상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몇몇 등장인물들의 얼굴 모양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오리지널 레고 블록을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등장인물이나 우주선과 같은 메커닉들보다 레고로 표현하기 어려운 눈밭과 같은 배경을 위해서는 직접 눈을 구해다가 찍었을 정도다.

이렇게 상상력에 기반한 수공업적(?)인 <스타워즈> 레고 버전의 등장과는 상관없이, 진짜 레고사도 지속적으로 <스타워즈>를 모티브로 삼은 레고-<스타워즈> 시리즈를 발매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그렇게 새로운 레고-<스타워즈>를 발매할 때마다 레고사가 재미있는 애니메이션들을 홈페이지의 ‘Screening room’이라는 코너에 올리는 것으로 아주 유명한데, 가장 최근에는 라는 제목으로 <에피소드1>의 어린 아나킨 레고 블록이 <에피소드2>의 청년 아나킨으로, 그리고 결국 <에피소드3>의 다스 베이더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주물로 떠져나오는 잘 만들어진 기성품 <스타워즈> 레고보다, 촌스럽고 투박하지만 상상력을 극대화해 만들어진 후지타의 작품이 훨씬 더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후지타의 약간 빛바랜 사진 한장한장에서 묻어나오는 땀과 창의력은, 대량생산 기반의 기성품들과는 절대로 비교될 수 없는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사진설명

1. 레고사의 <스타워즈> 시리즈 페이지.

2. <스타워즈 에피소드4>의 주요 장면을 레고로 만들어놓은 모습.

3. <스타워즈 에피소드5>의 주요 장면을 레고로 만들어놓은 모습.

4. 림4~4_3: <스타워즈 에피소드6>의 주요 장면을 레고로 만들어놓은 모습.

레고로 만든 <스타워즈> 3부작 페이지 http://www5b.biglobe.ne.jp/~mbsf

레고 <스타워즈> 공식 홈페이지 http://www.lego.com/starw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