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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상냥함은 어디로…
2002-05-30

비디오카페

아주머니께서는 뭔가에 단단히 화가 나 계신 것 같았다. 수화기에 대고 조용조용 이야기하는 목소리에는 분노와 답답함이 최대한 압축된 채 꽉꽉 눌려져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높은 액수의 연체료를 외상으로 달아놓고 여러 차례 비디오와 만화를 빌려간 손님과의 통화였다. 그녀는 가게 전체에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가 울려퍼질 정도로 꼼꼼히 몇월 며칠 몇시(!)에 어떤 것을 빌려갔으며 며칠 뒤인 몇월 며칠 몇시에 연체료를 물지 않은 채 무엇을 빌려갔는지 낱낱이 체크하며 낭독하고 계셨다.

물론 상대방의 입장은 단호했다. 자기는 단연코 연체료를 냈다는 거였다. 장시간의 동어반복적인 통화와 가게 안의 손님처리를 아슬아슬하게 병행하고 계시던 아주머니는 기어이 화를 버럭 내시고야 말았다. “아니, 그럼 제가 지금 돈 받아내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기 컴퓨터에 이렇게 뻔히 기록이 되어 있는데!”

갑자기 몰려든 손님들이 카운터 앞에서 머뭇거리는 동안 그녀의 얼굴도 차츰 빨개져갔다. 가까스로 “화를 내는 동시에 고객처리, 스티커 배포, 웃는 낯으로 목례하기”라는 멀티태스킹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녀는 결국 갑자기 가라앉은 짧은 한마디로 그 길고긴 통화를 끝냈다. “저희 아르바이트생이 뭔가 착오를 했나봅니다. 그럼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처음 가게를 열 때 사람들에게 떡과 작은 선인장 화분을 나눠주던 화사한 표정은 바람도 불지 않는 그 작은 공간 안에서 풍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thumnail@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