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ie Hall
1977년, 감독 우디 앨런
출연 다이앤 키튼
<EBS> 6월1일(토) 밤 10시
남자가 묻는다. “데려다줄까요?” “왜요? 차 있어요?”라고 여자가 말한다. “아뇨, 택시를 탈 건데요.” 여자가 말하길 “아, 전 차가 있어요.” 여기에 남자는 “차가 있다구요? 참나, 이해를 못하겠네. 만약 차가 있다면 왜 차에 대해 물었죠?” <애니 홀>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을 건다. 서로에게, 혹은 혼잣말로 중얼중얼 이야기한다. 영화는 평이한 로맨틱코미디로 보일 수도 있다. 사랑싸움을 일삼는 남녀가 나오고, 스크루볼코미디의 흔적이 배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식적으로 볼 때 단순한 코미디라고 보긴 어렵다. 인물들은 뭔가 이야기가 풀리지 않으면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건네기도 한다. 뭐, 좋은 해답은 없을까요, 라는 투로. <애니 홀>은 우디 앨런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으뜸으로 중요하고, 그의 영화세계를 정의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뉴욕에서 생활하는 코미디언이자 작가 앨비 싱어는 테니스를 치다 애니를 만난다. 앨비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다. 가수가 꿈인 애니 역시 앨비가 싫지 않은 눈치.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서투르게 연애를 시작하지만 곧 혼란에 빠진다. 서로의 단점들, 그리고 성에 대한 문제에 대해 논쟁을 벌이곤 한다. 앨비의 신경증적인 면과 애니의 산만한 성격이 마찰을 빚곤 하는 것. 애니는 자신의 못 이룬 꿈을 위해 그의 곁을 떠나갈 생각을 갖게 된다.
우디 앨런의 초기작은 패러디의 천국이었다. <돈을 갖고 튀어라>와 <바나나 공화국> 등의 영화에서 감독 겸 주연으로 등장한 우디 앨런은 범죄물과 정치코미디의 영역을 비롯해 여러 장르영화를 인용하고 뒤섞었다. 그런데 <애니 홀>을 기점으로 변화했다. 우디 앨런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좀더 감독 자신의 자의식을 뚜렷하게 반영했고, 영화 속 배경도 고착되었다. 과거와 낯선 땅, 그리고 판타지의 영역에서 부유하던 우디 앨런은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삶을 그대로 영화에 끌어들였다. 여기에 TV코미디와 음악, 문학 등의 문화적 자양분이 골고루 스며들면서 그의 영화는 이전 시기보다 고급스러워졌고 윤택해졌다. 무엇보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수려한 풍경을 스케치하고 카메라로 비춰 보이면서 인물들의 대화를 끌어가는 방식은 우디 앨런의 고유한 연출 스타일로 확립되었다.
<애니 홀은> 순수하게, ‘자아발견’에 관한 영화다. “여기서 여성이라는 존재는 일종의 관찰자적 존재”라고 어느 평자는 언급했다. 우디 앨런이 연기한 앨비 싱어는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거울에 비춰 보인다. 앨비 싱어와 애니 홀은 사소한 문제에서 좀더 포괄적인 주제까지 다양한 대화를 나눈다. 침대에서 남녀가 섹스를 할 때, 여성의 혼은 슬그머니 침대를 빠져나가 관계를 갖는 이들을 지켜본다. 남자는 “왜 난 언제나 당신 몸밖에 가질 수 밖에 없지?”라고 한탄한다. 영화는 장르영화나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로 가는 대신, 앨비 싱어라는 남성의 시점에서 전개되고 마무리된다. <애니 홀>은 극영화가 닿을 수 있는 한계선까지 성큼 발을 딛으면서 빠른 속도로 극이 전개된다. 이후 우디 앨런 연출작의 ‘데모’ 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영화 속 형식실험은 다양하고 재기가 넘친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