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비디오대여점들은 밤 12시 넘어서까지 영업을 한다. 동네 전체가 잠이 든 시간, 모두가 영업을 끝내고 돌아간 상가 주변에도 오로지 환하게 불이 켜진 비디오대여점은 뒤늦게 귀가하는 사람들의 참새방앗간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무서울 게 없지만, 이 일을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밤 늦게 대여점을 혼자 지킨다는 게 여간 겁나는 일이 아니었다. 혹시 권총이나 칼을 든 강도가 들어오지는 않을까,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귀신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너무나 컸다. 결과적으로 8년 동안 내가 우려하던 일은 한번도 없었지만, 의외의 강적은 다름아닌 ‘술 취한 사람’이다.
우리 동네에 ‘주사’가 심하기로 유명한 사람이 한명 있다. 이 아저씨는 1년에 한번씩은 꼭 술에 만취한 채 우리 대여점에 들른다. 그렇다고 그가 1년에 단 한번만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다. 음식점에서 호프집에서 거리에서 그의 만취한 모습은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다 아는 이야기이겠지만, 술 취한 사람들의 특징은 ‘목소리가 커지고, 했던 말 또 하고, 내가 누군데, 내가 누구와 친한데 식의 허풍이 심해지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 아저씨한테 추가되는 특징은 나에 대한 원한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개업 뒤 며칠이 안 되었을 즈음, 밤 늦게 그 아저씨가 대여점에 들어와서는 그야말로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 뭐 직접 상대할 수도 없고 해서 경찰에 연락해 경찰차가 몇대 출동해서 그를 끌고 갔는데, 그한텐 그 사건이 큰 상처였나보다. 그 아저씨는 아직까지도 1년에 한번씩은 만취한 상태로 우리 대여점에 들어와 8년 전의 사건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주정을 부리다 간다. 내가 없어도 아르바이트에게 ‘주인여자가 말이야…’로 시작하는 한탄을 하고 간다. 그가 올 때마다 겁주는 단 한마디…. “경찰서에 신고하겠어요.” 그러면 그는 대답한다. “비디오, 빌리면 될 것 아냐.” 그러나 아직까지 그는 단 한번도 우리 대여점에서 비디오를 빌린 적이 없다.
이주현/ 영화마을 종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