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도 귀신이 무서운 것은 왜일까. 이제 화장실에서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묻는 귀신을 만나면 도톰한 4겹을 달라고 해야겠다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늦은 새벽 갑자기 복도에 켜지는 센서등 때문에 쪼그라드는 심장은 주체할 수가 없다. 지난 1월, 파일럿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심야괴담회>가 정규 편성된 것도 이처럼 공포에 반응하고, 나아가 유튜브나 온라인 게시판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음산한 스튜디오에 둘러앉아 주고받는 괴담의 묘미는 스펙터클이나 치밀한 서사보다도 긴장감 유지와 상상력 자극에서 나온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제보받은 괴담을 들려주는 패널들의 연기와 분위기 장악력이다. ‘스토리텔러’라 불리는 이들의 대사 처리, 시선, 동작, 호흡, 완급 조절에 따라 공포의 강도가 치솟기도 하고 김이 팍 새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심야괴담회>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귀신이 아닌 심의일 것이다. “방송은 미신 또는 비과학적 생활 태도를 조장하여서는 아니되며 사주, 점술, 관상, 수상 등을 다룰 때는 이것이 인생을 예측하는 보편적인 방법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하여야”(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41조) 한다. 그래서 온갖 공을 들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던 제작진은 수시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라는 자막을 넣고, 과몰입하던 패널들은 문득 입을 모아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최근 방송에서 소개된 건설 현장 괴담 ‘여덟 번째 트럭’은 더 나아가 괴담을 현실 문제와 연결지었다는 면에서 흥미롭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트럭 운전사의 귀신을 본 청년의 사연에 이어, 노동자 77명이 사망한 뒤 세워진 경부고속도로 순직자 위령탑이 언급되고 최근 5년간 산업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가 4700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지적됐다. <PD수첩>에 몸담았던 임채원 PD는 “괴담의 희생양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이다. 괴담을 통해 사회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적 있다. 아슬아슬한 실험이겠지만 성공을 빈다.
VIEWPOINT
누구보다 괴물에 진심인데
폐가나 저수지에서 귀신을 접한 뒤 앓아누웠다는 제보에는 말라리아모기에 물린 것이라고, 집에서 귀신을 봤다는 사연에는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었을 수도 있다고 싱글벙글 설명하는 ‘괴심파괴자’의 정체는 공학박사이자 <한국 괴물 백과>를 쓴 곽재식 작가다. 그가 얼마 전 한 출판사와 계약한 <유령 잡는 화학자>(가제)는 “우리가 초자연현상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현상 뒤에 있는 화학의 세계”를 다루는 이야기라니, 어디선가 황제성의 울분에 찬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 좀 좋은 추억으로 남기면 안됩니까?”(그런데, 무슨 좋은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