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를 낀 별장. 형편이 크게 차이나는 두쌍의 부부가 주말여행을 왔다. 여자들은 학교 때 친구고 남자들은 사업상 아는 사이다. 엄마와 산책하던 아이는 우물이 딸린 폐가 앞에서 녹슨 못을 주웠다가 잔소리를 듣고 길가에 도로 버렸다. 사인이 뭐가 되었든, 분위기는 분명 누군가 죽을 판이다. 하지만 사건은 별장 바깥에서 일어났다. 검은돈을 수송하던 차량이 도로 옆으로 굴러떨어져 운전자가 사망하고 수십억원의 현금 다발은 잠시 주인을 잃었다. 새벽에 별장을 나와서 호수로 걸어들어가던 여자. 정서연(조여정)은 그 돈을 가로챌 결심을 한다. KBS2 드라마 <99억의 여자> 이야기다.
“너 같은 년은 소싯적에 사고를 아주 크게 쳤든가 앞으로 치든가 둘 중 하나여.” “표정에 미스터리가 있어요.” 방문 청소를 다니는 서연이 가는 곳마다 듣던 이야기다. 대체 어떤 얼굴이기에 이렇게들 한 마디씩 말을 얹을까? 수차례 정면 클로즈업으로 잡히는 서연의 얼굴엔 무슨 소리를 들어도 항의하지 않는 사람의 무기력뿐.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피처로 삼은 결혼에서 다시 학대를 겪은 서연은 바꾸지 못하는 상황에 순응하던 가정폭력 피해자다. 그리고 돈을 만난 서연의 얼굴이 경계를 넘는다. 기대와 흥분으로 번득이는 눈빛. 확신으로 고양된 표정이 짜릿하다. 수상한 우물은 돈을 보관하는 창고가 되고, 악담을 퍼붓던 노파는 돈세탁 조력자가 된다. 욕심을 내는 여자를 단죄하는 이야기라면 시청을 때려치울까 했다. 돈은 그녀의 것이고, 이를 지키기 위해 여자는 투쟁한다.